지난 11일 강원도 정선 사북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한국고용정보원 ‘디딤돌’ 봉사단의 도움을 받아 직업흥미검사를 받고 있다.
폐광촌 학교 찾아 나선 진로교육 봉사단
“선생님!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설명서에는 이렇게 하라고 나와 있는데요.” 과학실에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의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로봇 제작 시범을 보이는 도우미 교사의 설명이 더딘지 설명서를 보고 혼자 조립에 나선 아이들은 손을 들고 진행을 재촉한다.
초록색 도마뱀 조립에 혼이 빠진 아이들 사이를 누비는 도우미 교사들의 손과 발이 바쁘다. 다리와 몸통이 조립되고 모터를 달자, 초록도마뱀이 어슬렁 어슬렁 몸을 움직인다. 숨죽이던 아이들이 시끌시끌 로봇 제작 성공을 자축했다.
11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말로만 듣던 로봇공학자로서 가능성을 키웠다. 이날 프로그램은 한국고용정보원 사회봉사단 ‘디딤돌’(단장 김영훤)이 마련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소외된 지역 학생들한테 미래 설계를 지원하는 진로탐색교육의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 ‘찾아가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 첫 방문지가 강원도 폐광지역의 학교들이었다.
사북중학교는 1967년에 개교했다. 한때는 30개학급에 전교생 1500명 규모의 큰 학교였다. 사북여중이 5개 학급으로 분리돼 나가기도 했다. 1987년 석탄산업합리화사업으로 탄광이 축소되기 전의 일이다. 동원 사북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2005년 114명이었던 학생이 97명으로 줄었다. 이날 직업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은 2학년 재학생 전부인 29명이었다.
봉사단이 10일 찾아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의 도계여중은 사정이 좀 나았다. 한 학년에 2학급씩 18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1970년 첫 입학생은 182명. 올해는 60명이 입학했다. 40여년이 흐르는 사이 학생수가 1/3로 줄었다. 석탄산업의 활황으로 5만을 헤아리던 인구가 현재 1만8천으로 감소한 것과 비례한다.
학교는 작아졌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씩씩했다. 하고 싶은 일이 뚜렷했고, 하려는 일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다. 이 학교 정혜수(15)양은 “꿈이 너무 많아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정양은 캐릭터 디자이너나 브랜드 매니저 등 독특하고 개성있는 직업을 갖고 싶어 했다.
경호원·웹디자이너…되고픈 건 많지만
특기적성교육도 컴퓨터가 고작인 학교
미래 설계 기회마저 뺏긴 아이들
“모자란 건 꿈보다 사회적 지원이에요”
어릴 때부터 한문을 좋아했던 박미영(15)양은 한문교사가 꿈이다. “서울로 가는 것보다 강원대 사범대 한문교육과로 가는 게 나한테 맞을 것 같다”고 했다. 사북중 조영기(14)군은 경호원이 되려고 특공무술을 배우고 있다.
용인대 경호학과 진학이 목표다. 사회봉사단으로 참여한 한국고용정보원 윤지영 책임연구원은 “임금을 가장 많이 받는 직업을 묻는 질문에 ‘조선사’라고 대답한 친구가 있었다”며 “직업에 관해 관심도 없고 정보도 부족하리라 예상했었는데 도시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며 놀라워 했다.
외려 아이들한테 부족한 것은 ‘외부의’ 관심이었다. 혼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 도계여중 이지은(15)양의 꿈은 현지 관광가이드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어도 더 공부하고 싶고 일본에도 가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된다.
근처 여성회관에서 일본어 수업을 개설한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여태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그는 “걸리버가 강원도의 산을 다 깎고 서울의 63빌딩과 사람들을 쓸어모아 강원도에 퍼 날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선(15)양도 디자인고등학교에 진학해 웹디자이너라는 꿈을 키우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 사북중 김준형(14)군은 외고에 진학하고 싶어했다.
이런 꿈을 이뤄주기에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힘이 모자란다. 진로탐색의 기회를 주기 버겁다. ‘방과 후 학교’로 특기적성교육이 실시되고 있지만 산간 벽지로 자원해 찾아오는 외부강사가 없어 수업을 열기가 쉽지 않다.
도계여중 김보미(15)양은 “1학년 때는 골프도 하고 컴퓨터에 바이올린까지 배웠지만 지난해에는 컴퓨터만 남고 올해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교과 보충 수업만 한다”고 했다.
사북중도 다르지 않다. 컴퓨터반, 미술반, 레슬링반이 전부다. 지난해만 해도 태백의 한 교회 목사의 부인이 유학을 갔다 왔다는 소리를 듣고 교사들이 직접 섭외해 아이들의 영어 특기적성수업을 개설했지만 올해는 지속시킬 수 없었다.
이 학교 유충수 교사는 “워낙 외진 곳이다 보니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외부 강사가 오려고 하지 않는다”며 “지난 번에 교육청에서 파견된 원어민 강사도 온 지 두 달만에 떠나버렸다”고 했다.
‘찾아가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실시한 직업흥미검사의 결과표를 받아 들고 아이들은 신이 났다. 사북중 윤근식(14)군은 “화학실험 하는 게 좋았는데 ‘탐구형’이 나왔다”며 “탐구형이 갈 수 있는 과학연구분야에 화학자도 있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경호원이 되고 싶은 손우진(14)군은 봉사단이 가르쳐 준 워크넷(www.work.go.kr) 주소를 노트에 받아 적었다.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스스로에게 정말 맞는지, 이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온라인 상담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산간 아이들의 꿈도 크다. 단지 부족한 것은 사회적 지원이다. 그래도 그 아이들의 꿈은 자꾸만 자란다.
꿈을 잊은 그대,누르세요! ☎ 1588-1919 직업을 가르치는 학교 ‘잡스쿨’
청소년의 60%는 ‘꿈이 없다’고 말한다. 대학만이 유일한 진로가 돼 버린 현실의 ‘슬픔’이다. 2001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의 고교생 1만1천여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반이 넘는 학생의 희망직업은 17개에 집중돼 있었다. 전체 1만2천여개 직업 가운데 학생들이 희망하는 직업은 100개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진로교육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기업 · 대학 전문가 실습·상담 참여학생 3년새 10배로 늘어… 이런 현실에서 한국고용정보원이 실시하는 ‘청소년 직업체험학습프로그램(잡스쿨)’이 지니는 의미는 적지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이 개발·운영해온 잡스쿨은 말 그대로 ‘직업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다. 2004년 개발에 참여했던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김동규 책임연구원은 “당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었다”며 “이공계 관련 직업을 학생들에게 직접 체험하게 해 사회진출을 유도하려고 시작했다”고 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인터넷쇼핑몰 창업이나 패션디자인,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직업체험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잡스쿨의 특징은 진로교육 분야의 ‘산학협력’에 있다. 대학과 기업이 통합적으로 직업에 대한 체험정보를 제공한다. 지난해만 해도 고려대와 한국폴리텍대 등 130개 대학과 르노삼성, 포스코 등 143개 기업이 참여했다. 잡스쿨의 교사는 대학 교수나 산업체 직원들이다. 유전공학 직업체험프로그램을 예로 들어보자. 학생들은 먼저 ㈜인비트로플랜트라는 생명공학 벤처기업을 방문한다. 시중에 팔리는 ‘시험관식물’을 직접 만들어본다. 워터젤리가 담긴 시험관에 난을 심고 배양액을 넣는 과정을 체험한다. 같은 날 대학에 가 전공 강의를 듣는다. 성균관대 생명유전공학과 교수가 해당 학문을 소개한다. 기회가 닿으면 대학생들이 하는 실험에도 참여한다. 기업과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실습’은 학생들의 호응이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다. 잡스쿨 성공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청소년 가운데 체험을 통한 진로교육을 해본 학생은 8.2%에 불과하다. 지난 2004년 시행 첫 해 서울·경기 지역 25개교 1020명이 참여한 이후 지난해 참여 학생은 연인원 1만명을 넘어섰다. 3년새 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을 보면 잡스쿨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처음에는 대학과 기업체는 물론 참여학교를 섭외하는 일도 고용정보원 담당자의 몫이었다. 이제는 참여를 희망하는 대학과 기업에서 먼저 연락을 해온다. 김 연구원은 “시행 초에 학교를 직접 찾아다니다 보면 진로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적극 협조하는 일이 많았다”며 “교육 현장에는 진로교육에 대한 수요가 있고 교사가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는 구실이 잡스쿨의 몫”이라고 했다. 물론 한계는 있다. 이틀 일정으로 진행되는 체험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경험은 제한적이다. 좀더 넉넉한 시간을 두고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려 해도 학부모들의 눈치를 봐야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 외에는 모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교과활동 이외의 진로교육을 운영하는 학교가 32.8%에 그친다는 교육부 통계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올해부터 잡스쿨의 실무적인 운영은 각 지역의 고용지원센터가 담당한다. 전국 모든 시군구에 설치돼 있으며 1588-1919로 연락하면, 해당 지역센터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잡스쿨 프로그램은 고용지원센터 내 청소년취업지원실에서 이뤄진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학교나 기관은 고용지원센터에 문의한 뒤, 청소년 워크넷(http://youth.work.go.kr) 게시판에서 신청하면 된다. ‘소년의집’이나 ‘샘터학교’ 등 청소년보호기관도 해당된다. 단체 신청만이 가능하며 정원은 40명이다.
“직업심리검사는 전문가와 직접하세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진로지도는 그렇게 많지 않다. 초등학교 때야 손잡고 체험학습이라도 할 수 있지만, 또래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이도 힘들어진다. 이 때 부모들이 직업심리검사를 통해 자녀의 진로탐색을 지원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온라인은 오류 가능성 높아 무료로 해주는 곳 많아 직업심리검사는 크게 직업흥미검사, 직업적성검사, 직업성격검사로 나눌 수 있다. 흥미와 적성과 성격이 미래 진로와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것이다. 흥미는 좋아하는 것, 적성은 잘 하는 것, 성격은 내게 맞는 것을 의미한다. 직업성격검사는 최근 보편화된 MBTI, 애니어그램 등의 검사도구와 다르지 않다. 청소년을 위한 성격검사로 MMPI도 있다. 흥미는 달라질 수 있고 적성은 개발될 수 있지만 성격은 변하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에 직업을 선택할 때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이랑 책임연구원은 “그 세 영역이 교차하는 부분에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성미에 맞는 직업에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직업가치관검사를 활용하는 사례도 많다. 직업가치관검사는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이 어떤 가치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가에 대한 검사다. 이 네가지 검사를 활용하면 자기 진로를 80%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신중하고 진지한 태도로 검사에 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검사결과를 해석하는 게 더 중요하다. 검사결과를 읽을 때 가장 유의해야 하는 점은 ‘점수’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적성검사는 능력을 측정하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는 게 긍정적일 수 있다. 반면 흥미나 성격, 가치관 등의 검사는 점수가 갖는 설명력이 없다. 학교 시험처럼 100점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전과목 두루 100점을 맞는 게 이상적이지도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제공하는 직업흥미검사의 경우 67점을 넘으면 ‘최상’에 해당하는 흥미도를 갖고 있으며, 50점만 넘어도 ‘중상’의 흥미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67점을 넘는 학생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67점만 넘어도 그 분야에 대단한 관심을 가졌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일정수준 이상의 흥미도는 학생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높은 점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직업능력개발원 이영대 연구위원은 “모든 유형이 모두 높게 나오거나 낮게 나오는 것 모두 문제가 된다”며 “무슨 일을 하든 재미가 없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는 한 가지 진로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검사결과의 해석이 어렵기 때문에 직업심리검사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오프라인 검사는 대개 검사결과를 전문가가 해석해주고 아이와 상담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시도 교육청에 설치된 상담실이나 청소년위원회 산하 청소년상담실을 이용하면 누구나 무료로 심리검사와 진로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온라인 검사는 아이들의 답안 작성에 편향성이 나타나는 등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상담교사와 눈을 맞춘 정서적 공감의 상태에서 진실하고 실효성 있는 진로지도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고용 정보원 디딤돌 봉사단 ‘찾아가는 직업교육’ 첫걸음 “여학교는 처음이라 많이 설레네요.” 한국고용정보원 사회봉사단 ‘디딤돌’의 김영훤 단장은 도계여중 학생들 앞에 서기 직전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다른 봉사단원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회봉사단이 출범하고 난 뒤 처음 방문한 학교였고,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우리를 좋아할까, 아이들의 진로 선택에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움직이는 9명 봉사단원의 움직임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봉사단원은 한국고용정보원 내 진로지도팀과 진로교육팀, 직업연구센터 등 청소년 진로교육 관련 부서 직원들로 구성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청소년 대상의 진로교육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2004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는 ‘청소년 직업체험프로그램(잡스쿨)’으로 경험을 쌓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산간 도서 벽지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찾아가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진로와 직업에 대한 체험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지만, 소외 지역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김 단장은 “벽지 학생들은 직업체험을 하러 도시로 나오는 게 큰 부담”이라며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간단한 프로그램이지만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고 했다. 이번 제1차 활동은 10일부터 3일 동안 강원도의 폐광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첫날 삼척시의 도계여중을 시작으로 둘째날은 정선군 사북중, 셋째날 태백시 철암중을 차례로 방문했다. 학생들은 직업흥미검사를 보고 즉석에서 출력된 검사결과표 해석에 대한 간단한 상담을 받는다. 다양한 직업을 재미있는 문제로 알아보는 ‘직업퀴즈’와 움직이는 도마뱀 로봇을 제작하는 ‘직업체험’도 이루어진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찾아가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규수 단원은 “학교 다니기 싫다고 했던 아이들이 로봇을 만들고 나더니 이공계로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며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좀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더 많은 아이들을 찾아 다닐 것"이라고 했다. 삼척·사북=글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직업흥미검사를 받고있는 사북 중학교 학생들
꿈을 잊은 그대,누르세요! ☎ 1588-1919 직업을 가르치는 학교 ‘잡스쿨’
잡스쿨 참여학생들은 대학과 기업에서 새로운 직업을 체험하고 진로설계에 대한 눈을 뜬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 영등포 대영고 학생들이 경기도 안성의 한국폴리텍여자대학 패션디자인과에서 옷 프린팅 실습을 하는 모습. 한국고용정보원 제공.
청소년의 60%는 ‘꿈이 없다’고 말한다. 대학만이 유일한 진로가 돼 버린 현실의 ‘슬픔’이다. 2001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의 고교생 1만1천여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반이 넘는 학생의 희망직업은 17개에 집중돼 있었다. 전체 1만2천여개 직업 가운데 학생들이 희망하는 직업은 100개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진로교육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기업 · 대학 전문가 실습·상담 참여학생 3년새 10배로 늘어… 이런 현실에서 한국고용정보원이 실시하는 ‘청소년 직업체험학습프로그램(잡스쿨)’이 지니는 의미는 적지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이 개발·운영해온 잡스쿨은 말 그대로 ‘직업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다. 2004년 개발에 참여했던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김동규 책임연구원은 “당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었다”며 “이공계 관련 직업을 학생들에게 직접 체험하게 해 사회진출을 유도하려고 시작했다”고 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인터넷쇼핑몰 창업이나 패션디자인,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직업체험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잡스쿨에서 체험할 수 있는 직업의 세계
잡스쿨의 특징은 진로교육 분야의 ‘산학협력’에 있다. 대학과 기업이 통합적으로 직업에 대한 체험정보를 제공한다. 지난해만 해도 고려대와 한국폴리텍대 등 130개 대학과 르노삼성, 포스코 등 143개 기업이 참여했다. 잡스쿨의 교사는 대학 교수나 산업체 직원들이다. 유전공학 직업체험프로그램을 예로 들어보자. 학생들은 먼저 ㈜인비트로플랜트라는 생명공학 벤처기업을 방문한다. 시중에 팔리는 ‘시험관식물’을 직접 만들어본다. 워터젤리가 담긴 시험관에 난을 심고 배양액을 넣는 과정을 체험한다. 같은 날 대학에 가 전공 강의를 듣는다. 성균관대 생명유전공학과 교수가 해당 학문을 소개한다. 기회가 닿으면 대학생들이 하는 실험에도 참여한다. 기업과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실습’은 학생들의 호응이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다. 잡스쿨 성공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청소년 가운데 체험을 통한 진로교육을 해본 학생은 8.2%에 불과하다. 지난 2004년 시행 첫 해 서울·경기 지역 25개교 1020명이 참여한 이후 지난해 참여 학생은 연인원 1만명을 넘어섰다. 3년새 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을 보면 잡스쿨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처음에는 대학과 기업체는 물론 참여학교를 섭외하는 일도 고용정보원 담당자의 몫이었다. 이제는 참여를 희망하는 대학과 기업에서 먼저 연락을 해온다. 김 연구원은 “시행 초에 학교를 직접 찾아다니다 보면 진로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적극 협조하는 일이 많았다”며 “교육 현장에는 진로교육에 대한 수요가 있고 교사가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는 구실이 잡스쿨의 몫”이라고 했다. 물론 한계는 있다. 이틀 일정으로 진행되는 체험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경험은 제한적이다. 좀더 넉넉한 시간을 두고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려 해도 학부모들의 눈치를 봐야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 외에는 모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교과활동 이외의 진로교육을 운영하는 학교가 32.8%에 그친다는 교육부 통계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올해부터 잡스쿨의 실무적인 운영은 각 지역의 고용지원센터가 담당한다. 전국 모든 시군구에 설치돼 있으며 1588-1919로 연락하면, 해당 지역센터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잡스쿨 프로그램은 고용지원센터 내 청소년취업지원실에서 이뤄진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학교나 기관은 고용지원센터에 문의한 뒤, 청소년 워크넷(http://youth.work.go.kr) 게시판에서 신청하면 된다. ‘소년의집’이나 ‘샘터학교’ 등 청소년보호기관도 해당된다. 단체 신청만이 가능하며 정원은 40명이다.
전국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연락처
“직업심리검사는 전문가와 직접하세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진로지도는 그렇게 많지 않다. 초등학교 때야 손잡고 체험학습이라도 할 수 있지만, 또래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이도 힘들어진다. 이 때 부모들이 직업심리검사를 통해 자녀의 진로탐색을 지원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온라인은 오류 가능성 높아 무료로 해주는 곳 많아 직업심리검사는 크게 직업흥미검사, 직업적성검사, 직업성격검사로 나눌 수 있다. 흥미와 적성과 성격이 미래 진로와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것이다. 흥미는 좋아하는 것, 적성은 잘 하는 것, 성격은 내게 맞는 것을 의미한다. 직업성격검사는 최근 보편화된 MBTI, 애니어그램 등의 검사도구와 다르지 않다. 청소년을 위한 성격검사로 MMPI도 있다. 흥미는 달라질 수 있고 적성은 개발될 수 있지만 성격은 변하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에 직업을 선택할 때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이랑 책임연구원은 “그 세 영역이 교차하는 부분에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성미에 맞는 직업에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직업가치관검사를 활용하는 사례도 많다. 직업가치관검사는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이 어떤 가치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가에 대한 검사다. 이 네가지 검사를 활용하면 자기 진로를 80%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신중하고 진지한 태도로 검사에 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검사결과를 해석하는 게 더 중요하다. 검사결과를 읽을 때 가장 유의해야 하는 점은 ‘점수’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적성검사는 능력을 측정하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는 게 긍정적일 수 있다. 반면 흥미나 성격, 가치관 등의 검사는 점수가 갖는 설명력이 없다. 학교 시험처럼 100점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전과목 두루 100점을 맞는 게 이상적이지도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제공하는 직업흥미검사의 경우 67점을 넘으면 ‘최상’에 해당하는 흥미도를 갖고 있으며, 50점만 넘어도 ‘중상’의 흥미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67점을 넘는 학생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67점만 넘어도 그 분야에 대단한 관심을 가졌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일정수준 이상의 흥미도는 학생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높은 점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직업능력개발원 이영대 연구위원은 “모든 유형이 모두 높게 나오거나 낮게 나오는 것 모두 문제가 된다”며 “무슨 일을 하든 재미가 없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는 한 가지 진로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검사결과의 해석이 어렵기 때문에 직업심리검사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오프라인 검사는 대개 검사결과를 전문가가 해석해주고 아이와 상담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시도 교육청에 설치된 상담실이나 청소년위원회 산하 청소년상담실을 이용하면 누구나 무료로 심리검사와 진로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온라인 검사는 아이들의 답안 작성에 편향성이 나타나는 등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상담교사와 눈을 맞춘 정서적 공감의 상태에서 진실하고 실효성 있는 진로지도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고용 정보원 디딤돌 봉사단 ‘찾아가는 직업교육’ 첫걸음 “여학교는 처음이라 많이 설레네요.” 한국고용정보원 사회봉사단 ‘디딤돌’의 김영훤 단장은 도계여중 학생들 앞에 서기 직전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다른 봉사단원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회봉사단이 출범하고 난 뒤 처음 방문한 학교였고,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우리를 좋아할까, 아이들의 진로 선택에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움직이는 9명 봉사단원의 움직임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봉사단원은 한국고용정보원 내 진로지도팀과 진로교육팀, 직업연구센터 등 청소년 진로교육 관련 부서 직원들로 구성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청소년 대상의 진로교육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2004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는 ‘청소년 직업체험프로그램(잡스쿨)’으로 경험을 쌓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산간 도서 벽지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찾아가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진로와 직업에 대한 체험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지만, 소외 지역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김 단장은 “벽지 학생들은 직업체험을 하러 도시로 나오는 게 큰 부담”이라며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간단한 프로그램이지만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고 했다. 이번 제1차 활동은 10일부터 3일 동안 강원도의 폐광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첫날 삼척시의 도계여중을 시작으로 둘째날은 정선군 사북중, 셋째날 태백시 철암중을 차례로 방문했다. 학생들은 직업흥미검사를 보고 즉석에서 출력된 검사결과표 해석에 대한 간단한 상담을 받는다. 다양한 직업을 재미있는 문제로 알아보는 ‘직업퀴즈’와 움직이는 도마뱀 로봇을 제작하는 ‘직업체험’도 이루어진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찾아가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규수 단원은 “학교 다니기 싫다고 했던 아이들이 로봇을 만들고 나더니 이공계로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며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좀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더 많은 아이들을 찾아 다닐 것"이라고 했다. 삼척·사북=글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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