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설을 주장해 종교재판을 받은 갈릴레이는 만년에 유배생활을 겪으면서도 저술·연구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림은 〈세계를 이끄는 사람들-갈릴레이〉(교원)에 실린 삽화.
우리말 논술 - 통합논술 교과서 / ⑫ 진리란 무엇인가
관련 논제 해결하기 [난이도-고등]
<논제 1>
(가), (나) 두 제시문에는 사물이나 현상을 인식하는 비슷한 관점이 나타나 있다. 각 주장의 공통점을 중심으로 이들의 관점을 설명하시오. (400±50자)
<논제 2>
과학적 진리에 대해서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엄정한 결론’이라고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과학적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는 객관적이고 타당한 증거 이외에도 결론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제시문 (다), (라), (마)에 나타난 요인을 정리하고, 이런 요인들이 과학적 결론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서술하시오.(700±50자. 제시문에 나타나지 않은 사례를 한 가지 이상 포함시킬 것.)
(가) 정상적인 두 관찰자가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대상이나 동일한 장면을 접하게 될 때, 그들은 동일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이 정상적인 시신경을 타고 각 관찰자의 뇌에 전달되었을 때, 과연 두 관찰자가 동일한 시각 경험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관찰자의 시각 경험은 광선의 형태로 들어온 정보에 따라서 결정되지도 않고, 관찰자의 망막에 맺힌 상에 따라서 결정되지도 않는다. 두 관찰자의 망막에 맺힌 상이 사실상 같다 하더라도 그들이 필연적으로 동일한 시각 경험을 갖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을 윗면이 보이는 계단 그림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아랫면이 보이는 계단그림이기도 하다. 처음에 윗면으로 봤다가 다시 아랫면이 보이는 계단그림으로도 보게 되면, 이 그림은 수시로 위에서 본 계단, 아래에서 본 계단으로 바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동일한 그림을 보고 있고, 망막에 맺힌 상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망막에 맺힌 상이 아닌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이 그림은 다른 그림으로 바뀌어 보이는 것이다. 관찰자의 망막에 맺힌 상에 대한 해석은 그들이 속한 문화에 따라 상대적이며, 오로지 그 상에 따라서 시각 경험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이다. -우기동 외 <인간과 철학> 중 발췌. (나) 강물 소리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나의 거처는 산중에 있었는데, 바로 문 앞에 큰 시내가 있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큰 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마냥 전차와 기마, 대포와 북소리를 듣게 되어, 그것이 이미 귀에 젖어 버렸다. 나는 옛날에, 문을 닫고 누운 채 그 소리를 구분해 본 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오는 바람 같은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청아한 까닭이며,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흥분한 까닭이며, 뭇 개구리들이 다투어 우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교만한 까닭이며, 수많은 축(筑)의 격한 가락인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노한 까닭이다. 그리고 우르릉 쾅쾅 하는 천둥과 벼락같은 소리는 듣는 사람이 놀란 까닭이고,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운치 있는 성격인 까닭이고, 거문고가 궁우(宮羽)에 맞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슬픈 까닭이고,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다만 자기 흉중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지원 <열하일기> 중 발췌 (다) 오랫동안 진리로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던 어떤 이론이 새로운 연구 결과에 의해 진리로서의 지위가 위협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보통 그 연구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거부하는 것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갈릴레이가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를 주장하자 실험을 천시하던 그 당시의 다른 과학자들은 망원경이라는 도구를 통해 얻는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사회를 이끌어 나가다시피 하던 교회 역시 갈릴레이의 주장이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그 권위에 도전하던 행위로 간주하였다. 이처럼 신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를 이루며 또 신학의 세계관이 팽배해 있던 시대에 갈릴레이의 주장은 단순히 태양중심설이라는 하나의 이론을 내세운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 즉, 갈릴레이는 종교의 권위와 다르게 과학도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였으며, 실험을 통하여 이론을 증명하는 과학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고등학교 <과학>(지학사) 15쪽 (라) 독일의 천문학자인 케플러가 처음으로 저술한 책은 1596년에 출간된 ‘우주의 신비’였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쓰기에는 매우 당돌한 이 책의 주제는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이었고, 그 내용은 우주에는 수학적인 조화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왜 우주에는 오로지 여섯 개의 행성만이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상당히 특이한 질문을 제기하였고 그것은 바로 우주에는 5개의 정다면체(플라톤의 정다면체)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즉, 세상에는 오로지 5개의 정다면체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행성들 사이의 공간은 오로지 다섯 곳이어야 하고, 그것이 행성들의 숫자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케플러는 우주와 수학을 긴밀하게 연관시키던 신플라톤주의자였기 때문에 우주는 조화롭고 단순한 수학적 법칙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모형을 이용하여 나타낸 행성의 위치는 당시 최고의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의 관측 사실과 완전히 어긋난다는 사실 때문에 케플러는 이 모형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략) 케플러는 처음에 행성들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다는 몹시 기분 상해했다. 신플라톤주의자였던 그는 우주의 수학적 조화를 강하게 믿었으며, 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타원이라는 결과에 무척 불만족스러워했다. -고등학교 <과학사>(교육인적자원부) 74~76쪽 (마)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개국 3년 뒤인 1395년에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를 만들도록 하였다. 이 천문도에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별 1467개를 대리석에 새겨 넣었다. 하단에 있는 설명문에 의하면 고구려 때 있었던 천문도가 전쟁 틈에 강물에 빠져 없어졌는데, 그 탁본을 지니고 있던 사람이 바치니, 그것을 바탕으로 세월이 지나 달라진 별의 위치를 새로이 측정해 고쳐 잡아 대리석에 새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새 왕조의 등장과 함께 그동안 잊혀졌던 고구려의 천문도가 새롭게 부활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제왕의 학문으로서 천문학을 내세워 새로 세운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태조의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 과학은 이렇게 시대적인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세종대왕 시기의 찬란한 과학 기술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이 때의 과학기술은 천문학은 물론이고 수학과 도량형, 지리학, 의약학, 농학 등의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전통 과학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 천문역법의 성과는 즉위 후 5년(1423년)에 정인지, 정초, 김담, 이순지 등에게 명하여 역법의 종합적인 정비를 명한 이후 20여 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고등학교 <과학사>(교육인적자원부), 52~53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을 윗면이 보이는 계단 그림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아랫면이 보이는 계단그림이기도 하다. 처음에 윗면으로 봤다가 다시 아랫면이 보이는 계단그림으로도 보게 되면, 이 그림은 수시로 위에서 본 계단, 아래에서 본 계단으로 바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동일한 그림을 보고 있고, 망막에 맺힌 상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망막에 맺힌 상이 아닌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이 그림은 다른 그림으로 바뀌어 보이는 것이다. 관찰자의 망막에 맺힌 상에 대한 해석은 그들이 속한 문화에 따라 상대적이며, 오로지 그 상에 따라서 시각 경험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이다. -우기동 외 <인간과 철학> 중 발췌. (나) 강물 소리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나의 거처는 산중에 있었는데, 바로 문 앞에 큰 시내가 있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큰 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마냥 전차와 기마, 대포와 북소리를 듣게 되어, 그것이 이미 귀에 젖어 버렸다. 나는 옛날에, 문을 닫고 누운 채 그 소리를 구분해 본 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오는 바람 같은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청아한 까닭이며,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흥분한 까닭이며, 뭇 개구리들이 다투어 우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교만한 까닭이며, 수많은 축(筑)의 격한 가락인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노한 까닭이다. 그리고 우르릉 쾅쾅 하는 천둥과 벼락같은 소리는 듣는 사람이 놀란 까닭이고,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운치 있는 성격인 까닭이고, 거문고가 궁우(宮羽)에 맞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슬픈 까닭이고,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다만 자기 흉중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지원 <열하일기> 중 발췌 (다) 오랫동안 진리로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던 어떤 이론이 새로운 연구 결과에 의해 진리로서의 지위가 위협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보통 그 연구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거부하는 것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갈릴레이가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를 주장하자 실험을 천시하던 그 당시의 다른 과학자들은 망원경이라는 도구를 통해 얻는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사회를 이끌어 나가다시피 하던 교회 역시 갈릴레이의 주장이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그 권위에 도전하던 행위로 간주하였다. 이처럼 신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를 이루며 또 신학의 세계관이 팽배해 있던 시대에 갈릴레이의 주장은 단순히 태양중심설이라는 하나의 이론을 내세운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 즉, 갈릴레이는 종교의 권위와 다르게 과학도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였으며, 실험을 통하여 이론을 증명하는 과학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고등학교 <과학>(지학사) 15쪽 (라) 독일의 천문학자인 케플러가 처음으로 저술한 책은 1596년에 출간된 ‘우주의 신비’였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쓰기에는 매우 당돌한 이 책의 주제는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이었고, 그 내용은 우주에는 수학적인 조화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왜 우주에는 오로지 여섯 개의 행성만이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상당히 특이한 질문을 제기하였고 그것은 바로 우주에는 5개의 정다면체(플라톤의 정다면체)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즉, 세상에는 오로지 5개의 정다면체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행성들 사이의 공간은 오로지 다섯 곳이어야 하고, 그것이 행성들의 숫자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케플러는 우주와 수학을 긴밀하게 연관시키던 신플라톤주의자였기 때문에 우주는 조화롭고 단순한 수학적 법칙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모형을 이용하여 나타낸 행성의 위치는 당시 최고의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의 관측 사실과 완전히 어긋난다는 사실 때문에 케플러는 이 모형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략) 케플러는 처음에 행성들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다는 몹시 기분 상해했다. 신플라톤주의자였던 그는 우주의 수학적 조화를 강하게 믿었으며, 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타원이라는 결과에 무척 불만족스러워했다. -고등학교 <과학사>(교육인적자원부) 74~76쪽 (마)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개국 3년 뒤인 1395년에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를 만들도록 하였다. 이 천문도에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별 1467개를 대리석에 새겨 넣었다. 하단에 있는 설명문에 의하면 고구려 때 있었던 천문도가 전쟁 틈에 강물에 빠져 없어졌는데, 그 탁본을 지니고 있던 사람이 바치니, 그것을 바탕으로 세월이 지나 달라진 별의 위치를 새로이 측정해 고쳐 잡아 대리석에 새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새 왕조의 등장과 함께 그동안 잊혀졌던 고구려의 천문도가 새롭게 부활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제왕의 학문으로서 천문학을 내세워 새로 세운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태조의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 과학은 이렇게 시대적인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세종대왕 시기의 찬란한 과학 기술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이 때의 과학기술은 천문학은 물론이고 수학과 도량형, 지리학, 의약학, 농학 등의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전통 과학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 천문역법의 성과는 즉위 후 5년(1423년)에 정인지, 정초, 김담, 이순지 등에게 명하여 역법의 종합적인 정비를 명한 이후 20여 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고등학교 <과학사>(교육인적자원부), 5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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