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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시각장애인의 교육 소외 “세상은 왜 눈감고 있나요?”

등록 2007-08-19 14:52

수능이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요즘, 민호와 창동이는 기숙사에 남아 한 등급이라도 올리기 위한 공부에 여념이 없다. 둘은 중학교 입학 때부터 함께 해 온 친구다.
수능이 90여일 앞으로 다가온 요즘, 민호와 창동이는 기숙사에 남아 한 등급이라도 올리기 위한 공부에 여념이 없다. 둘은 중학교 입학 때부터 함께 해 온 친구다.
국립맹학교 창동·민호의 ‘대입준비 분투기’

“뚜 뚜 뚜…” 지난 14일 서울시 용산의 국립맹학교 정문에 다다르자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경고음 같은 소리에 눈보다 귀가 먼저 트였다. 정문 왼쪽 경비실 벽면에 있는 ‘시각장애인용 안내 장치’라는 호출기 소리였다. 시각 장애를 가진 방문자가 일반 가정의 초인종처럼 생긴 버튼을 누르면 안내자가 나와 도움을 준다.

약속을 잡은 이 학교 3학년 류창동(18)군한테 전화를 걸어 도착을 알린 지 5분쯤 지났을까. 올려다 봐야 할만큼 훤칠한 남학생이 성큼성큼 걸어나와 본관의 현관문을 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걸음이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앞서 안내하는 모습이 시각장애인이 맞나 싶었다.

“창동이는 ‘전맹’이고요, 저는 ‘저시력’이예요. 누나 까만색 옷 입은 것도 다 보여요.” 마중을 나온 것은 이민호(18)군이었다. 빛과 어둠만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심한 시각 장애를 가진 ‘전맹’ 학생들만 입학하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보통 글씨의 1.5배 정도 큰 글씨면 읽을 수 있는 ‘저시력’ 학생들도 맹학교에 많이 입학하고 있다.


이 군이 안내한 곳은 이 학교 기숙사 105호. 깨끗하게 정리된 방안에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다. “왜 오전으로 잡으셨어요. 아침부터 청소하느라고 땀 뺐어요.” 이군이 컴퓨터 앞에 앉으며 투덜거리자 인상 좋은 류군이 키득거렸다. 두 학생은 90여일 앞으로 닥친 수능시험 준비를 위해 기숙사에 남았다. 대학에 가려고 고등학교도 인문계로 진학했다. 서울맹학교에는 전국 12개 맹학교 중 유일하게 인문계반이 개설돼 2004년부터 운영돼 왔다.

“에어컨만 있으면 뭐해요. 그것 말고는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요.” 냉방시설이 완비된 공간에서 공부해 좋겠다는 말에 이군이 펄쩍 뛰었다. “독서실도 없고 보충수업도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선생님들도 중학교나 실업계에서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받는 수업의 질을 기대하기 힘들죠.” 인문계 교사 배치는 상급기관의 소관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선생님들한테도 서운한 게 많은 눈치였다.

“우리는 모의고사 성적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요.” 서운함은 봇물처럼 터졌다. 모의고사를 점역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에 비해 한 달 이상 늦게 본다. 지난 6월7일에 친 학력평가시험도 맹학교 학생들은 7월5일에 봤다. 성적표는 없다. 선생님들이 점수만 불러준다. 그럼 인터넷에서 등급표를 찾아 대강 자기 실력을 파악하고 만다.

교과서는 1종뿐이고 문제집도 1~2년전 것

인문계 교사 배치 안돼 수업부실 ‘불만’도

점자번역탓 모의고사는 한달이나 늦게 봐

“교육평가원은 왜 점자시험지 안만드나요?”


확대독서기를 이용해 외국어 영역 문제를 보는 민호.
확대독서기를 이용해 외국어 영역 문제를 보는 민호.
점역은 글자만 점자화 하는 게 아니라 도표나 사진 등의 시각물을 시각 장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작업도 포함된다. 그래도 류군은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의지에 의문을 표시했다. “우리도 같은 수험생인데 우리를 위한 인력은 왜 배치를 안 하는 거예요?” 평가원은 모의고사 문제지를 배포만 할 뿐이다. 점역하고 점자프린트 하는 일은 맹학교 교사들의 몫이다. 수능시험 때도 맹학교에서 교사들이 파견돼 같은 일을 한다.

이들의 ‘열공’ 의지를 꺾는 일은 이밖에도 많다. “교과서는 점자로 다 나왔는데 문제집은 2004년, 2005년 판을 봐야 해요. 다른 애들은 수시로 업그레이드 되는 교재로 공부하는데 우리가 당해낼 수가 없죠.” 시각 장애 학생들이 보는 문제집은 몇몇 복지관에서 점역해 제공한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라 점역되는 문제집도 적고 오래된 것이 많다. 각 출판사가 펴낸 교과서만 8종에 이르는데 시각 장애 학생들이 보는 점자 교과서는 ‘국검정 교과서’ 한 종 뿐이다. “메가스터디 강의를 주로 듣는데, 점역하려고 파일을 달라고 했어요. 저작권 문제 때문에 못 주겠대요. 우리도 같은 돈 내고 듣는데 억울해요.” 류군에게는 귀로 듣는 것보다 손으로 읽는 게 학습에 도움이 된다. 필기를 하면 기억에 오래 남는 것과 같은 이치다.

“건물이나 시설은 훌륭하죠. 근데 교육적 혜택은 거의 없어요. 팬티엄Ⅳ에 도스가 깔린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나마 ‘낫다’는 국립맹학교에 다니는 류군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지방에서, 또는 사립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또 다른 시각 장애 수험생의 처지는 어떨까?

류군은 성균관대 역사교육과가 목표다.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군은 서울시립대 행정학과와 공주대 특수교육이나 역사교육과를 놓고 고민 중이다. 장애인 특별전형을 실시하는 대학이 78개 대학. 대학의 문이 넓어진 만큼 장애 학생들의 꿈도 넓어졌다. “처지를 탓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데 그래도 기본적인 건 갖춰져 있어야 되는 거 아니예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증명하는 일은 아이들만의 몫이 아니다.


장애인 대입도전 ‘보이지 않는 벽’ 겹겹

특별전형 늘었지만 까다로운 절차 여전

장애유형 따라 수능 시험시간 더 늘려야


대학별 장애인 특별전형 기준
대학별 장애인 특별전형 기준

장애 학생들을 향한 대학의 문은 넓어졌지만 문턱은 여전히 높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칠 때부터 장애인 특별전형을 통한 합격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넘어야 하는 산이 너무 많다. 비장애 수험생과 장애 수험생의 차이를 메꿀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전무한 형편이다.

2006년 교육부 통계를 보면 특수학교를 졸업한 고등부 학생 2,000명 중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795명. 취업을 선택한 487명 보다 2배 가량 많다. 서울 국립맹학교 김인희 교사는 “맹학교만 해도 진학담당교사를 두는 데가 많다”며 “진학교사협의회를 구성해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지원할 만큼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장애 학생들은 수능 시험 당일 ‘시험특별관리대상자’로 분류돼 따로 시험을 치른다. 시험특별관리대상자로 선정된 학생들은 장애유형에 따라 시험을 치르는 데 필요한 장비들을 지원받을 수 있다. 시험 시간도 따로 지정된다. 시각 장애 학생 가운데 시력을 완전히 잃은 전맹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의 1.5배, 저시력 학생들은 1.2배 정도 긴 시간이 배정된다.

그러나 이런 기준이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장애인대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소장은 “1.2배, 1.5배 하는 건 과거 일본이 적용하던 기준을 그대로 들여와 쓰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장애 학생들에 대한 실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확대독서기를 쓰는 저시력 학생들은 시험지를 일일이 손으로 움직여야 하는데다 모니터에 나타난 확대 문자를 따라 읽는 것이 눈에 피로를 주기 때문에 독해 속도가 점자를 읽는 것보다 느리다.

1.5배를 받는 전맹 학생들도 시간이 모자란다. 문자가 많은 언어영역이나 외국어영역의 경우 40문제 이상 푸는 학생들이 드물다. 김 교사는 “학생들은 문제를 몰라서 틀린다기보다 풀 수 없어서 틀릴 수밖에 없는 게 다반사”라며 “아이들은 장애 유형에 따라 다른 지원이 필요한데 교육행정이 못 따라가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장애인 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는 상당수의 대학이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능 시험장에서의 세심한 지원이 더욱 아쉽다. 대학 진학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상위권 대학을 목표하는 학생들도 많다. 좋은 성적이 필요한 이유다. 올해부터 장애 학생을 뽑는 교대가 10개 대학으로 늘었지만 대개 수능 전영역 3등급 이상을 받아야만 합격이 가능하다. 한 문제가 아쉬운 건 장애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특별전형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절차가 까다로워 응시하는 장애 학생들이 불편을 겪는 것도 문제다. 많은 학교가 응시 원서를 접수하기 전에 학교를 방문해 따로 ‘심사’받기를 요구한다. 지원자격에 아예 ‘특별교육대상자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함을 명시해 놓고 있다. 장애 학생들은 불편한 몸으로 멀리 있는 응시 예정 대학을 방문해 미리 면접을 치르고 응시 기회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장애 유형과 실력에 맞는 대학과 전형을 찾는 ‘입시 상담’을 해주는 데도 거의 없다. 특수교육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특수교육대상자 선정과 배치 등 초중등교육에 대한 지원만 이뤄지고 있다. 전국에 설치된 특수교육지원센터는 181곳이지만 전담인력은 그 수에도 못미치는 161명이다. 장애 학생의 대학 진학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입시 관련 상담을 맡을 여력이 없다.

장애인대학생지원네트워크는 대학 진학을 원하는 장애 학생들에게 입시 상담과 더불어 시험특별관리대상자 지정 등과 같은 일에 도움을 주고 있다. 김 소장은 “활발하게 운영되진 않지만 입시철이 되면 하루 10건 이상의 상담이 들어 온다”고 했다.

☎ 장애인 대학 진학 상담전화 0505)399-4959.


“불편한 손 맞춰 피아노 배우고 싶은데… 대학생활 첫 학기 가슴엔 ‘멍자국’ 만”

뇌병변·정신지체 안고 07학번 새내기 된 김예지씨


어머니 안현자(49)씨와 여섯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김예지(19)양.
어머니 안현자(49)씨와 여섯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김예지(19)양.

“대학생이 되더니 예지가 거짓말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좋더라구요.” 경기도 평택의 한국재활복지대학 멀티미디어음악과 07학번 김예지(19)씨의 어머니 안현자(49)씨는 얼마 전 딸을 대학에 보낸 뒤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사정은 이렇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한테 피아노 연습을 많이 했냐고 묻자 그가 머뭇머뭇 ‘그렇다고’ 둘러대더라는 것이다. “우리 예지 같은 장애를 가진 애들은 꾀부릴 줄 몰라요. 하라는 거 다 하고 눈속임 할 줄도 모르지요.” 엄마가 계속 캐묻자 딸은 연습 많이 못했다는 사실을 결국 인정했다. 그래도 안씨는 엄마 품을 떠난 딸이 ‘사회’를 만나 ‘적응’을 해 가는 것 같아 좋았다고 했다. 그게 대학에 보내고 얻은 ‘득’이랄 수 있을까.

예지는 생후 80일께 갑작스런 뇌출혈로 뇌의 1/4이 죽었다. 4살에 지체장애 3급을 판정받았다. 현재는 뇌병변 및 정신지체 1급이다. 왼팔과 왼다리는 움직이는 게 어렵다. 그래도 남들 다섯 손가락 부럽지 않은 구실을 하는 왼손 중지가 있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예지한테 왼손 중지의 ‘발견’은 구원과도 같았다.

“오른손으로만 연주할 때는 엄마도 말렸어요.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왼손 중지까지 연주에 쓸 수 있게 됐어요.” 왼손으로 화음을 맞춰 연주하니 제법 그럴싸했다. 대학 진학을 마음 먹고 베토벤의 곡을 10개월 간 연습했다. 그리고 당당한 07학번 새내기가 됐다.

하지만 한 학기를 마친 지금, 엄마의 가슴에 든 멍자욱이 크다.

“학기 말에 학과장 교수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예지가 한 수업에 한번도 출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예지가 교수님과 면담으로 한 과목을 더 수강하기로 한 사실을 잊었던 탓이었다. 예지는 그 전에 엄마와 짠 시간표 대로만 수업을 들었다. “자폐 성향이 약간 있는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만 하거든요. 시간표에 있는 과목이면 절대로 빠지지 않아요.” 단 한번도 출석하지 않은 학생을 불러 진작에 사정을 들어 보지 않은 담당교수가 야속했다고 한다.

예지는 대학 생활의 아쉬움에 대해 말을 뗐다. “저는 피아노 치는 게 좋은데 이론 수업은 너무 힘들어요.” ‘뮤직 비즈니스’라는 수업은 낙제점을 받았다.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뇌기능이 제한적이다 보니, 일반 대학생과 똑같은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주일에 4시간 정도 밖에 없는 전공 실습 수업도 아쉬움이 많다.

“교수님이 제 손가락에 맞게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돼서 가슴이 아팠어요.” 대학에 입학 하기 전에 예지를 지도해 준 선생님은 왼손 연주가 적은 곡을 선택해 손가락 하나로 연주할 수 있게 편곡해 줬다. 자신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공간에서 외로움을 느낀 예지는 ‘마음이 아팠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2학기 개강을 기다리고 있는 예지는 걱정이 많다. 교수님이 잘 가르쳐 줄지도 걱정이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걱정이다. 1학기에 사귄 친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 안씨는 “예지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표현이 솔직해서 특히 이성친구들한테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아요.

열린 마음으로 좀 대해주면 좋겠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학이 문만 넓혀 놓고 눈에 보이는 시설들만 갖춰 놓았을 뿐 보이지 않는 지원에는 여전히 인색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안씨 역시 2학기를 맞는 마음이 썩 좋지 않다. “학습도우미를 신청해 놓았으니 생활이 좀 나아지겠지요.”

예지는 8월29일 연주회를 앞두고 있다. 올 초에 미국에서도 연주회를 했고 5월에도 무대에 올랐다. “감정을 넣어서, 음악에 취해서 쳐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요.” 피아노 연주자로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음악학도’ 예지가 남긴 말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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