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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변하지 않는 것의 위대함

등록 2007-09-02 15:55수정 2007-09-02 16:22

고전의 전통을 묵묵히 지켜낸 세잔의 그림은 소박함이 곧 위대함이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과일과 수건과 우유통’
고전의 전통을 묵묵히 지켜낸 세잔의 그림은 소박함이 곧 위대함이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과일과 수건과 우유통’
정지원시인의 교과서미술기행 / [난이도 = 고등]

폴 세잔의 ‘과일과 수건과 우유통’과 ‘생트빅투아르 산’

연둣빛 풋사과를 건네며 너에게 묻는다.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인가?” 세잔의 그림 속 사과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한 믿음을 약속했다. 결코 어떤 순간에도 변하지 않을 진실을. 그 순간 내가 건넨 사과는 동지애였고 너는 그것을 네 뜨거운 심장에 품었다.

사과가 익어가는 9월이 오면 나는 세잔을 떠올리며 움츠렸던 어깨를 편다. 마티스가 그랬던가. “수많은 평론가들이 내 그림을 마구 난도질해 댈 때마다 절망에서 버티게 해 준 힘은 오직 세잔의 그림이었다. 세잔만이 나의 유일한 스승이다.”라고.


세잔의 꿈은 소박하면서도 거대했다. 그는 평생 그림만 그리며 살다가 죽는 소박한 꿈과 고전주의자가 되는 거대한 포부를 동시에 이루려했고, 마침내 삶으로 증거해냈다. 그가 바라본 고전주의는 기교와 형식을 뛰어넘어 본질에 충실한 원칙적이고 담대한 불변의 법칙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했다. 세잔이 살던 시대는 19세기 인상파의 시대였다. 물론 인상파도 처음에는 비주류로 탄압을 받기는 했지만, 세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쇠고집으로 외딴 길을 걸으며 사서 칼 맞을 짓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잔은 스스로 선택한 길을 독하고 질기게 수도자처럼 고행하듯 살다가 죽어갔으니, 그의 고전이 새 시대를 여는 마티스나 브라크, 피카소 같은 현대적인 작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모든 진실은 본질에서 나오고 그 본질은 어느 시대나 벅찬 감동으로 닫힌 문을 열어젖힌다. 그 빛을 제일 먼저 느끼는 자들이 바로 예술가다. 그래서 세잔은 오늘도 힘든 무명시절을 견뎌내는 많은 화가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그래, 세잔도 죽어라 싸웠는데….’

세잔의 평생 지향점인 고전주의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그가 가장 믿었던 친구 에밀 졸라였다.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 때 ‘나는 고발한다’라는 명문장을 써서 양심적 지식인을 대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런 그가 친구인 세잔에게 했던 잔인한 행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졸라는 ‘작품’이라는 소설을 통해 누가 봐도 세잔이 주인공이란 걸 알 수 있게 ‘끌로드’라는 인물을 만들어 놓는다. 끌로드는 능력도 없으면서 자기가 위대하다고 착각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마는 인물이다. 그 주변의 친구로는 ‘모네’도 나온다.

이 소설을 계기로 졸라가 세잔에게 품고 있던 경멸과 적의는 원색적으로 드러나고 그들의 우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세잔은 깊은 상처를 입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세잔은 본격적으로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한 열망을 작품에 쏟아붓는다. 10년 후, 졸라는 유명해진 모네에게는 화해를 신청하지만, 세잔에게는 <피가로>지를 통해 ‘실패한 화가’라는 저주를 퍼붓는다. 졸라는 무척 눈치와 발이 빠른 야심가다. 지식인의 시대 고발적 역할이 부각되는 상황에 편승해서 잽싸게 차를 바꿔 탔을 뿐, 그에게 작가적 인간성과 예술가적 안목은 없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가장 위대한 예술가를 함부로 능멸한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

‘과일이 있는 정물’은 수평선이 지닌 무한한 넓이감과 자유로운 배치를 통한 공간감,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색채와 빛의 조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식적인 정물화의 개념을 뛰어넘는다. 이 단순한 아름다움은 늘 하나의 중심점을 향해 달려간다. 그래서 세잔의 사과는 영원성을 획득한다. 그는 사과를 인성과 동일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느꼈다. 즉, 사물과 화가의 관계가 일치될 때까지 상대에게 완전히 투영되는 것, 그럴 때 자연이 우리에게 허용한 것들을 제대로 꿰뚫어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세잔은 사과 하나를 그리기 위해 100번을 연습했다.


‘생트빅투아르 산’
‘생트빅투아르 산’
‘생트빅투아르 산’은 세잔에겐 어머니 같은 대상이었다. 언제든 달려가 품에 안길 수 있고 유일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변함없는 산. 세잔의 상처를 제일 먼저 보듬어 준 곳도 이 산이다. 산의 기운이 상처투성이 세잔에게 와서 붓을 쥐어 준다. 세잔은 성실한 농사꾼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리고 또 그린다. 그러면서 차츰 평온하고 웅장한 형태의 생동감 넘치는 산을 20년 동안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창조해낸다. 단순한 묘사가 아닌 마음에서 새롭게 재현되는 색채들이 시적인 간결함으로 완성되어간다. 이 그림들은 훗날 입체파의 탄생을 예고하는 모델이 된다.


정지원시인
정지원시인
고전의 가치는 시대를 뛰어넘는 영원한 위대함에 있다. 평생을 걸어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며 생트빅투아루산을 그리다 죽어간 세잔. 그는 자신의 진실과 견고한 믿음을 확신했기에 마침내 승리했다. 고전은 불변하는 진실의 힘을 담아내고 있어서 가장 진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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