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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놀이는 ‘자유’에서 나온다

등록 2007-09-02 16:08수정 2007-09-02 16:19

“이 징한 놈의 세상, 한 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 뿐….”(영화 <왕의 남자> 대사). 놀이는 일상을 뛰어넘으려 하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때때로 예술 작품들이 일상을 포함한 인생 전체를 한판의 놀이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사진은 고등학생들이 축제에서 중세 유럽 복장을 하고 공연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이 징한 놈의 세상, 한 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 뿐….”(영화 <왕의 남자> 대사). 놀이는 일상을 뛰어넘으려 하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때때로 예술 작품들이 일상을 포함한 인생 전체를 한판의 놀이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사진은 고등학생들이 축제에서 중세 유럽 복장을 하고 공연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권희정 교사의 삶,사유,논술 / [난이도 = 고등]

봄부터 기다려온 가을꽃이 만개하려 한다. 자치활동의 꽃, 학교 축제가 코 앞이다. 개학 직후부터 학교가 분주하고 학생들의 움직임도 경쾌해졌다. 작품을 다듬고 공간을 꾸미며, 대동제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기다리는 마음에서부터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다.

1년 중 단 하루, 그 짧은 시간은 학창 시절에 긋는 굵은 획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그저’ 보면서 웃고 먹고 펼친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놀 것이 많아 감동할 것이 적다고 했던가. 하지만 자발적인 놀이판에서 진짜 재미가 나온다. 스스로 놀아 볼 절호의 기회이다.

그 하루, 마음속 즐거움이 안광으로 배어 나오는 어린 얼굴들을 보고 있자면 호이징하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은 삶을 놀이하면서 산다.” 그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를 인간의 본성으로까지 격상시켰다. 놀이는 ‘자유’에서 나온다. 도덕적 의무나 외부적 강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좋아서) 빠져든다. 종교적 체험이나 시적 상상, 운동 경기, 심지어는 수수께끼 놀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놀이와 공부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정작 ‘잘 놀지도’ 못한다. 놀이는 진짜가 아니라 ‘하는 척’ 하는 행위다.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일부러 부부인 척 한다. 연극이나 무용 또는 고대의 원시 축제도 마찬가지다.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울고 웃고 황홀해 한다. 현실적 이익이 없는데도 영혼의 즐거움에 나를 맡긴다. 놀이는 몰두와 헌신을 배우는 과정이다.

놀이는 ‘일상적인’ 생활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벗어나는 ‘일시적인’ 활동이다. 놀이는 제한된 장소와 일정한 시간 안에서 규칙에 따라 벌어진다. 바둑을 두는 어른들이나 올림픽에 참가한 운동선수들, 민속놀이 한마당도 모두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법정의 재판이나 종교 의식도 그렇다. 놀이는 울타리가 쳐진 고립된 공간, 그 안에서 질서에 따르며 질서를 창조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놀이는 아름다워지는 경향이 있다. 질서 잡힌 형식을 창조하려는 충동이 예술의 출발점이지 않은가. “놀이가 곧 문명의 기초”라는 호이징하의 말에 동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내 끝나버릴 놀이, 하루 만에 접을 축제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이 걱정되기도 한다.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는 우리들 머릿속에서는 축제에 드는 시간과 열정이 자동으로 계산된다. “공부해야 되서 싫어요.” 실제로, 학생들 중에는 축제에 참가하지 않는 동아리를 일부러 찾는 경우도 꽤 많다.

그러나 놀이는 그 이전과 이후를 다른 세상으로 만든다. 땀 흘리며 등산을 하고 난 후의 기쁨과 수학 문제를 풀고 난 후의 뿌듯함은 자아 효능감을 높여 준다. 운동과 공부를 놀이처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2002년 월드컵도 지나칠 수 없다. 공동체 기능을 상실한 현대 도시 공간에서 ‘나 같은 우리’를 보았을 때의 감동은 실로 벅찼다. 인간은 개인의 자유뿐 아니라 관계의 연대성도 함께 갈구한다. 아무리 짧은 축제라도 새로 만들어진 정신적 창조물이 남는다. 그 마음의 보석을 문제집 열 권에 비하겠는가.

그런데 그리 좋은 것이라면, 일 년 내내 하는 것은 어떨까. “1년 열두 달 한가위만 같아라.” 조상들이 평소의 궁핍함에서 벗어나 추석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면서 가졌던 소망이 떠오른다. 축제에서만큼은 먹을 것이 넘쳐 나고, 환상과 꿈을 표출해도 나무라지 않으며, 춤과 음악으로 무한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축제의 진정한 가치는 역설적이게도 ‘시간의 단절성’에서 나온다. 매일 벌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잠시나마 금기가 해제되고 일탈이 허용되는 것이다. 중세인들은 ‘바보축제’에서 계급을 바꾸고 질서를 비웃는 풍자를 즐겼다. 이 기간 동안 하류층이 상류층 옷을 입고, 평민들은 귀족 행세를 한다. 또한, 광대옷을 입은 남자 배우가 제단 위에서 소시지를 먹으면 관중들이 환호한다. 이 소시지는 대변을 상징한다. ‘평등’을 만끽하면서 공동체를 느끼고, 견고한 가치관을 뒤집으며 숨막혔던 질서를 흐뜨려 놓는다.

베니스의 카니발 등에서 볼 수 있는 가면 축제는 어떤가. 현실의 자신을 부정하고, 상상의 자기를 창조한다. 본래 모습을 가림으로써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창조적 파괴다. 프로레슬러들이 쓰는 가면이나 붉은 악마의 바디 페인팅은 그 흔적들이다. 없었던 것을 만든 게 아니라 본래 숨어 있다 드러난 마음의 욕구들이다. ‘축제하는 인간(Homo festivus)’은 곧 ‘환상하는 인간(Homo fantasia)’이다.

그래서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바보들의 축제>에서 축제를 인간의 본성으로까지 승격시켰다. 그에 의하면 “축제는 억압되고 간과되었던 감정 표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기회”이다. 모처럼 쉬는 날, 피로에 지친 직장인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축제에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자. 온 몸에 진흙을 바르면서 내동댕이쳐지고(보령 머드 축제), 황소들 사이를 목숨 걸고 뛰어다니거나(지중해의 소몰이 축제), 서로 뒤엉켜서 토마토를 던져대는 모습(스페인)은 이성을 잃은 광기에 가깝다. 기꺼이 ‘의도된 파괴’를 즐기면서 무한한 자유를 얻으려 한다. 축제는 놀이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유희이다.

그래서일까. 엄숙한 문화에서는 축제가 위험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규칙이 헝클어질수록 질서의 가치도 소중해진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사람이 삶의 소중함을 각인하듯, 난장트기와 혼란스러움은 일상의 가치를 새롭게 한다. 카오스적 진행으로 코스모스를 지향하는 이중성이 흥미롭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다시 현실이다. 학교 축제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교칙 위반’을 시도한다. 머리를 풀고, 화장을 하고, 악세서리를 하기도 한다. 교정에서 남자 친구와 산책하고, 목청껏 소리 지르며 소란스럽게 전시회를 홍보한다. 그리고 관객들을 모으기 위해 작품이나 공연의 내실보다 이른바 ‘이벤트’에 더 많은 정성을 쏟기도 한다. 그러니 사탕과 퀴즈, 타로카드로 이웃 동아리와 경쟁을 할 수밖에.

진정한 축제는 삶의 고민에서 끌어올린 진정성의 표출이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마음껏 일탈하지도, 온 정성을 다하지도 못한다. 똑같은 현상을 두고 어른들은 과하다 하고 학생들은 미흡하다 한다. 어쩌면 축제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어정쩡함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피곤한 축제가 될 것인가, 마음의 충족감을 채울 것인가. 내가 쏟은 열정과 노력만큼 익어갈 가을의 문턱이다.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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