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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남까지 두루 감싸는 ‘우리’ 말

등록 2007-10-14 16:12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
난이도 수준- 중2~고1

1. ‘국어’와 ‘우리말’
2. ‘표준어’는 과연 표준적인가

교실 밖에서 국어 이야기를 하는 첫 시간이다. 어차피 교과서 덮어놓고 답답한 교실 밖으로 나왔으니, 한껏 자유롭게 생각하고 토론해보자.

‘국어’가 과연 뭐냐, 이게 오늘 주제다. 아마 교실 안에서는 이런 얘길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국어는 국어지, 뭐긴 뭐냐’ 할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태국사람이 쓰는 말은 태국어, 독일사람이 쓰는 말은 독일어다. 그렇다면 한국사람들이 쓰는 말은 ‘한국어’가 돼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간단하게 ‘한어’라고 하든지. ‘영국어’를 줄여서 ‘영어’라고 하듯이 말이다.

‘국어’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國語’라고 써서 일본사람들한테 보여주면 그들은 무조건 일본어를 떠올린다. 대만 사람들한테도 ‘국어’는 자기네 말을 뜻한다. ‘국어’는 이 세 나라에서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국어’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된 건 일제 식민지 시대다. 당시 ‘국어’는 일본어를 뜻했다. 하지만 이젠 일본에서도 이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에 일제 잔재를 걷어낸다며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꿨다. 하지만 ‘국어’는 아직 그대로다. ‘국사’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들을 몽땅 없애버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쓰더라도 알고 쓰자는 것이다.


‘국어’ ‘국사’ ‘국민’의 뒤에는 ‘국가’가 버티고 있다. 생각해보자. 사람 나고 나라 났지, 나라 나고 사람 나지 않았다. ‘국어’에서는 개인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내셔널리즘(국가주의·민족주의)의 냄새가 난다. 내셔널리즘은 개인들을 ‘국민’이나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린다. 그러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은근슬쩍 가려버린다. 군국주의 일본이나 나치 독일이 그랬듯이, 내셔널리즘이 강해지면 전쟁과 침략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 꼭지의 제목에 ‘국어’를 넣은 까닭은, 어쨌거나 아직까지는 공식 교과과정에 들어 있는 과목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국어’를 글자 그대로 풀면 ‘나라말’이다. 어느 나라? ‘우리나라’. ‘국어’는 ‘우리나라말’, 줄이면 ‘우리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사랑하는 내 동생, 늘 나를 염려해주시는 할머니는 당연히 ‘우리’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유관순 누나,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간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다. 그런데 우리 동네 식당에서 일하는 조선족 아줌마는? 아버지 고향의 농사꾼 총각한데 시집온 베트남 아가씨는? 뒷마을 염색공장에서 일하는 파키스탄 아저씨는? 이들은 ‘우리’인가 아닌가?

‘우리’는 ‘울타리’의 ‘울’하고 뿌리가 같다. 내가 사는 울타리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 ‘우리’다. 그 바깥에 있는 사람은 다 ‘남’이다. ‘우리’는 ‘남’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우리것이 최고라는 우월주의, 남을 밀어내는 배타주의가 스며들기 쉽다.

그래도 나는 이 말을 계속 쓸 것이다. 단, 여기서 ‘우리’에는 또 다른 우리를 낳아줄 베트남 아가씨, 우리에게 맛있는 밥을 날라다 주는 조선족 아줌마, 우리가 입는 옷을 때깔 곱게 만들어주는 파키스탄 아저씨가 다 들어간다.

그동안 ‘남’으로 생각해온 수많은 사람들을 두루 에워싸는, 넓디넓은 ‘우리’를 꿈꿔보자. ‘우리’가 커지고 넓어진다는 건 곧 ‘나’가 커지고 넓어진다는 뜻이다. ‘작은 나’에서 ‘큰 나’가 되는 것이다.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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