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배신당한 내신

등록 2007-12-02 16:40

배신당한 내신
배신당한 내신
커버스토리 / 2008 대입 ‘내신 확대’ 한다더니…

“내신 공부 열심히 해봐도 내신 100%로 갈 수 있는 데는 거의 없어요. 수시전형에서도 논술, 구술면접 등 꼭 같이 보는 게 있잖아요. 비중도 높구요. 수능 등급이 높으면 내신 5, 6등급 받아도 수능만 100% 반영하는 우선선발 전형으로 대학갈 수 있는데,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요.”

수시 전형에 응시하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이한나(18)양의 말이다. 3년 내내 치열한 내신 경쟁을 뚫고 1등급에 이르는 성적을 받았지만 입시철이 되자 그런 노력을 해온 처지가 문득 ‘초라해진다’고 했다. 한나양 뿐일까? ’내신 확대’라는 새 대입제도를 믿고 좋은 내신 성적을 받기 위해 고교 3년 동안 전쟁을 치러왔지만, 대학들의 모집요강을 보고 허탈해 하는 수험생들이 너무 많다. ’내신 확대’가 완전히 실종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대학에서 ’내신’의 위치는 초라하기만 하다.

지난 11월27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발표한 199개교의 정시 모집 요강을 살펴보면 ‘주요’ 사립대로 꼽히는 7개 대학(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의 평균 내신 실질 반영률은 22.15%(인문계열 기준)이다. 2003년 대입 정시 전형계획의 7개 대학 평균 실질 반영률 6.53%에 견줘 보면 외형적으로 3배 가량 오른 수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내신의 지위는 끝없이 ‘추락’해 버렸다.

내신등급간 점수차 0.2~0.5점…수능은 18점
“4등급 기준 계산땐 실질 반영률 2%도 안돼”


■ 수능의 등급간 점수차는 18점, 내신은 0.2점=대학들이 내신 ‘푸대접’에 쓰는 대표적인 방법은 등급간 점수차를 크게 벌리는 일이다. 등급간 점수차는 대학들이 등급을 평가요소로 활용하기 위해 각 등급마다 일정한 점수를 부여하면서 생겨난다. 이는 저마다 다른 등급 조합을 갖고 있는 수험생들의 우열을 가리는 데 쓰인다.

그런데 대학이 수능과 내신에 부여한 등급간 점수의 차이가 너무 차이가 난다. 서강대는 수능 언어영역 1등급과 2등급의 점수차가 18점이다. 반면 국어 교과 1등급과 2등급 차이는 0.2점에 불과하다. 내신에 쏟은 노력은 수능에 쏟은 노력에 비해 딱 90배 평가절하된다.

다른 대학들도 내신 등급간 점수차는 0.5점을 넘지 않는다. 이화여대가 유일하게 4점으로 벌려놨지만 총점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그 비중이 1/10로 줄어든다. 내신을 1등급이라도 더 올리려고 고군분투했던 수험생들의 3년은 대학의 전형 과정에서 너덜너덜한 휴짓조각이 돼 버렸다.

부산시 대학진학지도위원 권혁재 교사는 “수능 우선선발이라는 제도로 50%를 먼저 뽑았으면 일반전형에서 적어도 2:1 비중은 돼야 공교육 정상화를 목적으로 했던 2008 새입시제도 도입 취지에 걸맞는다고 본다”며 “일반전형에서도 이렇게 내신 비중을 줄여 뽑는다면 결국 특목고와 일부 고교 출신의 학생만을 뽑기 위한 전형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 9등급짜리 한과목 쯤이야=대학들은 또 내신 반영 교과목을 줄이는 방법을 통해 내신의 영향력을 축소한다. 전과목에서 골고루 높은 등급을 받은 학생과 몇과목만 잘한 학생이 똑같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연세대는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교과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3과목을 골라 모두 12과목을 반영한다. 일반고 학생들이 고교 3년동안 해당 교과에 대해 배우는 과목들이 25과목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매 학기 매 시험을 ‘수능’처럼 치를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중간고사 한번 ‘망친’ 뒤에 전학을 결심하고 자퇴를 고려하는 등 고통을 겪어야 했던 수험생들의 고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이투스 유성룡 입시정보실장은 “대학들은 각 과목의 이수단위도 고려하지 않는다”며 “과목수도 줄고 이수단위도 반영이 안되면 학생부에 꼼꼼하게 기록된 내신 성적이 의미가 없다”고 했다.

■ 진짜 내신 실질 반영률은 2%?=7개 대학들이 내세우고 있는 명목 내신 반영률은 40%를 웃돈다. 그러나 원점수에서 기본점수를 뺀 실질 반영률은 20%를 간신히 넘는다. 그나마도 대학에 실제 지원하는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하면, 진짜 실질 반영률은 훨씬 줄어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권혁재 교사는 “대개 내신 2~3등급은 나와야 주요 대학에 원서를 쓴다고 가정하면 반영비율은 기껏해야 2%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유성룡 실장이 작성한 ‘서울 주요 대학 2008 정시 내신 등급별 점수표’에서 4등급을 기준으로 실질반영률을 계산해보면, 고려대가 0.53%, 연세대가 1.5% 정도로 크게 낮아진다. 실제로 이들 대학 정시 전형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우선선발’이 아니더라도 ‘수능’만으로 경쟁을 하는 셈이다.

서울 인헌고 정영배 교사는 “대학이 입시 전에 했던 약속이 다 깨져 버렸고 공교육의 신뢰도 바닥에 떨어졌다”며 “억울해 하는 3학년 아이들도 그렇고 2학년 아이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럴 바에야 왜 새 대입제도를 도입했는가’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는 얘기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