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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과학발전에 윤리의 역할은?

등록 2008-01-27 16:27수정 2008-01-27 16:33

우리말 논술
통합논술 교과서 / (34) 과학지상주의는 옳지 않은가?

관련 논제 해결하기 / [난이도 수준-고2~고3]

<논제> 제시문 (가), (나)를 참고해 오늘날 과학 기술과 인간 삶의 관계 및 과학 기술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1000±100자)

(가) 인간은 기술과 본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베르그송(H. Bergson)이 말했듯이 인간은 단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혜의 동물)가 아니라 호모 파베르(homo faber, 제조의 동물)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반드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간 조건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매우 연약하면서도 강한 존재이다. 우리는 동물과 같은 신체적 강함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대신 기술을 발명할 수 있었기에 동물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 나아가 기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성에서 벗어나 환경을 변형,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인류의 문명은 기술 없이 상상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기술을 힘 중의 하나로 분류하였다. 의학은 치유의 힘이고, 건축술은 집의 힘이며, 전투술은 전쟁의 힘이다. 그런데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비롯된 이 기술들은 상반되는 성격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가령 의술은 병과 건강의 힘이 동시에 될 수 있다. 가장 좋은 의사는 또한 가장 훌륭한 독살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와 독살가는 모두 신체구성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의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상반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모든 기술에 적용될 수 있다. 전투술은 공격에 쓰일 수도 있지만 방어를 위해 쓰일 수도 있다. 유전공학은 우생학을 위해 쓰일 수도 불치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 핵폭탄 역시 대규모로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고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낭만적인 우주여행은 또 어떠한가? 별만을 생각하면 그것은 과학적 쾌거라고 하겠지만 우주탐사는 무엇보다 전략적·군사적 이해관계를 담고 있다. 이처럼 모든 기술의 힘이 두 가지 방식으로 쓰일 수 있는 이상, 그것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말해야 옳지 않을까?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기술은 가치의 문제에는 연관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만 관계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윤리란 사실에 가치와 규범이 첨가되는 순간부터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에만 관계하는 것에 대해선 윤리적 평가를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물의 행동을 보고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술과학에 대해 윤리적인 가치를 적용하는 것은 과학의 정의에 어긋나는 것인가? 예를 들어 어떤 과학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재정적 후원자가 필요할 때 그 후원자가 윤리나 종교 혹은 그 외 이유로 과학자들에게 특별한 요구를 해온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다. 과학연구는 엄격한 실험과 논증을 바탕으로 성립되므로 모든 검열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며 이러한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과학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기술의 중립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자연현상을 기술할 때 개인적 취향이나 가치관에 따라 결론을 취사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과학으로부터 얻은 지식 그 자체가 가치에 관한 판단이나 결정을 좌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 연구의 결과는 그 지식이 일부에게 불이익을 준다거나 혹은 일부에게 이익을 안겨준다거나 하는 것과 상관없는 엄격한 객관적 논리의 산물이다. 칸트(I. Kant)는 “기술이란 그것의 결과가 현명하거나 좋거나, 그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결과에 이르기 위해 내가 사용해야 할 수단들이다”라고 <도덕형이상학>에서 강조한 바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자신의 환자를 낫게 하기 위해 의사가 따라야 할 규정과 독살자가 그 환자를 확실히 죽이기 위해 사용한 규정은 그 자체로는 같은 가치를 지닌다. 칸트는 이 규정을 ‘기술적’이라고 정의한다.

이 도덕적 중립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범주적 정언명법에 일치하는 행위가 부가되어야 한다. 이 정언명법 중 목적 자체의 정식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시한다. “인간은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수단으로서만 사용될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고 일체의 그의 행위에 있어서 언제나 목적 자체로서 간주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인격 안에 있는 인간을 훼손하고 결단내고, 아니면 죽이게끔 처리할 수는 없다.” 즉, 인간을 대상으로 한 행위는 아무 조건 없이 도덕적 의무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정언명법에 따라 의사와 독살자는 구분될 수 있다. 의사는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고 독살자는 금기된 것을 유린했다.

하지만 이 논리를 따르자면 도덕적 판단과 기술적 판단은 구별되는 것이고 ‘의지’라는 개념과 무관한 기술은 도덕 밖에 위치하므로 인간의 의지가 잘못된 것이지 기술 자체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기술은 그 자체로 어떤 나쁜 의도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모든 영역에서 기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윤리가 과학 문제에 있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과학발전의 진행단계와 보급, 응용 과정에서 어떤 발언권을 지닐 수 있을까?

과학사를 살펴볼 때 과학적 연구는 윤리적 관심과 동떨어진 채 독립적으로 연구,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술의 가치중립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종교적·윤리적 검열은 얼마 동안 진리의 배포를 연기할 뿐이지 윤리나 종교가 과학의 발전 그 자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말하자면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이 같은 윤리적 검열은 비효율적일 뿐이므로 과학기술의 발전에 윤리적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더라도 물을 정화하는 기술과 새로운 무기를 발명하는 기술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최근에 와서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대해 회의를 표시하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고 있으며 윤리적 필요성에 대한 요구 역시 증대하고 있다. 프랑스 현상학자 미셸 앙리(Michel Henry)는 <야만>에서 “모든 관계에서 자유로우며 모든 조리 있고 목적 있는 전체에서 벗어난 채, 기술은 그저 앞으로 전진한다. 국제 유성로켓처럼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디로 그리고 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기술은 앞으로 전진한다.”는 표현을 통해 과학기술 발전의 맹목적성을 고발했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과학자들은 과학의 최종 목적과 윤리는 과학자들 스스로가 구축할 수 없는 것이므로 외부로부터 제공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요청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유전공학을 둘러싼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윤리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이 윤리위원회는 현재 진행 중인 연구의 의미를 윤리적 잣대로 고찰 감시하면서 과학자들에게 그들의 연구가 봉착하게 될 윤리적 문제들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감시가 철저하다 해도 윤리위원들이 과학자들의 연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그들의 연구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들이 모든 과학실험을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조언을 참작하지 않는 과학자들의 모임이나 실험은 항상 존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실험의 결과에 대한 어떤 강구책도 마련할 수 없으므로 윤리적 제지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최영주 편,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3> 17~21쪽

(나) 과학은 오랫동안 객관적인 형태의 지식으로서 인간 사회의 외부에 존재하면서 사회의 발전을 촉진한다고 믿어졌다. 따라서 과학의 권위는 확고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베트남전에서 사용된 대량 살상 무기, 산업화가 초래한 환경 오염에 대한 사회적 비판 의식이 팽배해지기 시작하였다. 과학 기술이 합리적이기는 커녕 국가 권력과 자본의 지배 수단이라고 보고, 과학 기술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 기술에 대한 엄밀한 비판 분석의 필요성과 과학 연구 활동을 보호할 필요성을 모두 인식하여, 1970년대 초 미국과 영국의 대학들은 ‘과학 기술과 사회(STS)‘ 프로그램들을 교과 과정에 넣었다.

과학 기술의 여러 측면들을 연구하는 학제적 STS 프로그램과 함께 과학에 대한 새로운 사회학적 분석도 나타났다. 즉, 과학 지식은 보편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상호 작용의 결과물, 즉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인공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과학이란 실험과 관찰, 그리고 관찰된 현상에 대한 해석과 의미 부여의 과정인데, 과학적 해석이 사회적 협상을 통해 선택되고 안정화되므로 과학 기술은 사회적 과정을 초월해서 구성될 수 없다. 관찰된 사실은 이론 중립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으며, 어떤 이론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관찰과 해석은 실제로는 구분되지 않는 동일한 과정의 두 가지 국면에 불과하다고 본다. 자연 법칙의 보편성은 자연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과학자의 설명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속성이며, 과학 지식의 타당성은 불변의 기준에 의해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 사이의 암묵적 타협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정치·사회·문화적 영향을 받게 된다.

과학 철학자들은 과학 지식이 자연계에 대한 절대적인 지식이며, 사회 문화적 영향과 무관하다는 과거의 시각도 오류이지만, 사회적 요인이 개입된다고 해서 과학이 실재하는 자연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도 옳지 않다고 말한다. 과학은 사회적 이해 관계와 자연의 물리적 속성 두 가지에 의해 구성된다고 보는 것이 균형 잡힌 시각일 것이다.

과학 지식을 특정 시대의 사회적 협상을 통해 선택·구성되는 것으로 보는 새로운 통찰은 서양 근대 과학이 인류에게 유일한 진리이자 발전의 길이라고 신봉했던 단일적, 권위주의적인 과학 질서로부터 인류의 다양한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21세기의 다원적, 민주주의적인 질서로의 이행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근대 과학 기술은 근대 서구의 부르주아 백인 남성 문화의 자연 정복적인 세계관에서 배태된 것이므로 21세기의 다른 상황에 처한 인류는 변한 환경에 맞는 더 바람직한 대안적 과학 기술을 선택·구성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서구 과학 기술의 문화적, 성적 편향성을 비판·지양하는 대안 과학 기술들로 생태주의 과학 기술과 페미니스트 과학 기술들이 모색되고 있다.

-고등학교 <과학사> 263~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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