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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외고 ‘변칙 입시’ 백태

등록 2008-02-03 17:34

‘외국어 인재 양성’이라는 외규의 설립취지는 편법으로 운영되는 입학전형에서부터 무산된다. 사진은 서울권 한 외고의 2007학년도 신입생 선발 시험에서 구술 면접평가를 치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응시생들.
‘외국어 인재 양성’이라는 외규의 설립취지는 편법으로 운영되는 입학전형에서부터 무산된다. 사진은 서울권 한 외고의 2007학년도 신입생 선발 시험에서 구술 면접평가를 치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응시생들.
문제. 다음은 지난해 서울권에 있는 한 외고가 치른 입학시험 방식입니다. 이 학교가 채택한 전형방법으로 옳은 것을 고르시오.

<감독관이 1번 수험생에게 시험지를 나눠준다. 5분 뒤 2번 수험생에게 시험지를 나눠준다. 1번 수험생이 시험지를 받은 지 20분이 지나자 기다리고 있던 감독관이 다가와 시험 종료를 알리고 시험지를 거둬간다. 1번 수험생은 일어나 시험지를 든 감독관과 함께 또다른 고사장으로 향한다. 고사장에 들어서자 누군가 앉아 있는 책상 앞에 세운다. 그 앞에 서서 감독관이 다시 준 시험지를 보며 정답을 부른다. 책상에 앉은 이가 받아 적는다. 10개 남짓한 문제의 정답을 부른 뒤 시험이 끝났다.>

①지필고사 ②구술면접고사

“말만 구술면접이지 대기장에서 시험지를 받아 풀고 면접실에서는 답만 말하고 나왔어요.” 지난해 말 서울권 외고 입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2004년 교육부는

‘특목고 운영 개선안’을 발표하고 구술면접 평가 때 지필고사 형태의 문제 출제를 금지했다. 당시 서울 지역 외고들이 ‘수학 듣기 평가’를 실시할 정도로 편법으로 입학 전형을 했다.

그러나 `구술면접의 이름만 빌린 지필고사’는 지금도 버젓이 유지되고 있다. 외고들은 위의 시험에 대해 답이 ②번이라고 강변하지만, 누가 봐도 정답은 ①번이다.

서울권 외고의 한 교사는 “서울권에서는 서울교육청에서 교육부 발표보다 더 오래전에 지필고사를 금지했는데도 이런 지필고사를 여전히 실시하고 있는 것은 외고의 위상이 명문대 진학률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명문대 진학률 때문에 여전히 ‘외국어’보다는 ‘대학 입시’에 경쟁력이 있는 학생을 선호하고, 지필고사 형태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것이다. 지필고사의 문제가 사실상 `수능형 문제’인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별전형에서 치르는 `면접’은 어떨까? 지난해 수도권 한 외고에서 내신우수자 전형의 면접을 치른 학생은 “면접 전에 이름과 주소, 목표 대학과 학과 등을 써 제출했다”며 “내가 받은 질문은 왜 지원하는지와 기숙사 배정을 못 받아도 학교에 다닐 건지 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면접 질문 어디에도 외국어에 대한 학생의 특기나 적성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얘기다.

구술면접 ‘시늉만’… 지필고사와 다를 바 없어

수학 금지에 ‘창의력사고력’ 이름만 바꿔 출제

교육청의 규제가 없어 ‘학업적성검사’라는 형태로 지필고사를 보는 경기권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외고가 ‘창의사고력’이라는 문제를 출제해온 것도 같은 이유다. ‘창의사고력’ 문제는 2004년 교육부가 금지한 수학·과학 시험의 변형에 불과하다. 특목고 입시포털 스터디매니아 임미자 실장은 “교육부가 수학 문제 출제를 금지하니까 고육책으로 나온 게 창의사고력 문제”라며 “대입에서는 수학 비중이 크기 때문에 외고들은 수학 능력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부터 창의사고력 문제를 출제하지 않는 서울권 외고는 대개 합격생들에게 ‘수학 10-가’의 선행학습을 ‘강제’한다. 서울의 한 외고에 입학하는 ㅎ양은 “입학 전에 두 차례 보는 시험의 수학 과목 범위가 첫 시험은 ‘9-나’이고 두번째 시험은 ‘10-가’다”라고 말했다. 이런 `강제’는 교육과정 운영의 파행으로 치닫는다. 입학 전에 사실상 고1 수학을 배워오게 하고, 고1 때 수학의 경우 수능 출제범위의 수업을 끝내 버린다.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내신 반영비율을 크게 올렸다는 2009학년도 외고 입시안에서도 이런 파행은 발견된다. 서울시 교육청에 제출한 강북지역 한 외고의 입시요강을 살펴보면 내신에서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다섯 과목에 가중치를 주는데, 수학에는 40%를, 나머지 과목에는 15%의 가중치를 뒀다. 서울 상계동 한 학원 관계자는 “2년 연속 서울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지 못한 데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학교가 수학 잘하는 학생들을 뽑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전형은 외고 지원을 하려는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

아직은 외고를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가 추진된다면 상황은 질적으로 달라질 게 뻔하다. 외고, 자립형사립고 등은 `일류 고교’, 일반계 고교는 `이류 고교’라는 인식이 퍼지고, 대학 진학률이 높은 고교 진학을 위한 무한경쟁이 벌어지면서 초등학생부터 입시에 목을 매고 사교육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 김정명신 대표는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기관화한 외고 등에 대한 교육당국의 규제나 제재는 늘 물거품으로 돌아갔다”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통해 생겨날 새로운 형태의 고교들도 설립 취지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이런 폐해가 확대재생산될 것”이라고 했다.


특목고 입시 열풍이 일어난 데는 정부의 줏대없는 정책이 한몫했다. 뒤늦게 제재에 나섰지만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따. 사진은 지난해 11월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김포외고 입시문제 유출사건과 관련해 집회를 벌이는 모습. 수원/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특목고 입시 열풍이 일어난 데는 정부의 줏대없는 정책이 한몫했다. 뒤늦게 제재에 나섰지만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따. 사진은 지난해 11월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김포외고 입시문제 유출사건과 관련해 집회를 벌이는 모습. 수원/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오락가락 정책이 특목고 열풍 부채질

“외고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특성화학교로 지위를 변경하고, 주기적 평가를 통해 재지정 또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해 9월 한국교육개발원이 연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제도연구실장의 말이다. 외고 입시 과열에 대한 극단적 처방이었다. 교육부는 다음달 ‘고등학교 운영개선 및 체제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외고의 편법 운영이 적발될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고 관할 교육청에 지정 취소까지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불과 석 달도 지나지 않아 교육부는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초중고교 업무의 시도 교육청 이관 방침에 따라 특목고에 대해 꺼내들었던 칼을 집어넣었다. 특목고 설립이나 운영과 관련된 모든 ‘족쇄’가 풀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특목고 관련 정책의 오락가락 행보는 특목고 입시 과열에 큰 몫을 했다.

애초에 정부는 특목고의 인기를 적극 이용하려 했다. 2002년 윤진식 재정경제부 차관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 한 인터뷰에서 “서울 강남 부동산 과열 방지를 위해 강남 외 수도권 지역에 특수목적고 설립 등을 통해 교육 여건 개선을 추진하기로 교육부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도권 각 지자체에 특목고 설립 열풍이 불었다. 서울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제대로 된 특목고라면 강북과 지방 등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에 설립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2002년 서울권 6개 외고의 경쟁률은 사상 최고치인 6.99 대 1을 기록했다.

이는 곧 특목고 입시 과열로 이어졌다. 2004년 교육부가 2ㆍ17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통해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특목고는 ‘명문고’의 자리를 꿰찬 상태였다.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김정명신 대표는 “참여정부는 공격을 받는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특목고 카드를 활용하다 사교육 시장 팽창이라는 돌발변수를 맞았다”며 “참여정부가 특목고 열풍을 부채질한 면이 있다”고 했다. 이때부터 교육부는 특목고 운영에 대한 규제와 제재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제재의 실효성은 거의 없었다. 전교조 사립위원회 노형래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교육부가 수없이 제재 방침을 밝혔고 관할 교육청도 제재에 나섰지만 사실상 이들은 하는 ‘척’했을 뿐 실제로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교육 관료들의 자녀들이 특목고에 다니는 등 특목고와 교육 관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먹이사슬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허울’뿐인 규제는 부작용만 키웠다. 2004년 당시 특목고 대책으로 교육부가 권고했던 ‘창의적 문제 해결력 검사’는 외고에서 금지된 수리형 문제를 출제하는 ‘창의사고력’ 검사로 둔갑했다. 창의사고력 검사가 수리형 고사로 인정돼 폐지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몫으로 돌아갔다. 특목고 입시포털 스터디매니아 임미자 실장은 “전형일정이 해마다 바뀌는 바람에 어떤 때는 서울권과 경기권 일반·특별전형을 합쳐 네 번의 응시 기회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두 번밖에 없기도 했다”며 “기출문제도 공개하는 학교가 적어 학생들은 특목고 입시 관련 정보를 학원이 아니면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안한 입시 제도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사교육으로 내몬다. 올해 경기권 외고에 입학하는 ㄱ양은 “한달에 60만원 정도를 입시 학원에 냈는데 부모님께 학원비 고지서를 갖다 드릴 때마다 죄송했다”고 했다.

오락가락 특목고 정책
오락가락 특목고 정책


방학때 고1수학 떼고 오라? 선행학습 내몰리는 외고 신입생

지난해 충북의 한 외고에 합격한 김아무개(16)양은 중국어를 공부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얼마 전에는 입학할 학교에 가서 중국어 기초를 배우고 왔다. 학교가 사흘 동안 세 시간씩 전공어 관련 기초수업을 열었기 때문이다.

외고 입학생다운 방학을 보내고 있는 김양에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우리 학교는 다행히도 신입생 과제가 없는데 다른 지역 외고들을 보니까 엄청난 양의 과제를 방학 중에 하더라고요. ‘수학Ⅰ’까지 떼고 입학하는 친구들도 있단 소리를 들으면 경쟁에서 뒤처질까 두려워요.”

실제로 외고 입학생들의 선행학습 부담이 지나치다. 대개는 방학 중에 적어도 고교 1학년에서 배우는 수학 교과 내용을 모두 떼도록 학교에서 요구한다. 수도권의 한 외고가 신입생들에게 내준 방학 과제를 보면 언어영역 문제집과 외국어영역 문제집, ‘수학 10-가’ 참고서 등이 있다. 이 학교에 입학하는 ㅎ양은 “학교에서 방학 과제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입학 전에 두 차례 치르는 시험이 모두 이 교재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실상 과제와 다를 게 없다”고 했다.

방학 중에 역시 두 차례의 시험을 치르는 서울 ㄷ외고의 시험범위는 첫 시험이 ‘수학9-나’이고 두번째 시험은 ‘수학10-가’다. 이 학교는 시험 결과를 토대로 전공을 정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원하는 과에 가기 위해서라도 선행학습을 할 수밖에 없다. 경기권 ㅁ외고는 ‘수학10-나’ 문제집까지 과제로 내줬다. 입학생 ㄱ양은 “보통 10-가, 10-나쯤은 다 떼고 들어온다는데 10-가도 못 떼고 첫 시험을 치렀다”며 “학원에서 선행을 하지만 10-나까지 배우려면 아직 멀었는데 혼자 공부할 수도 없고 과제로 내준 10-나 문제집 두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암울하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외고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과제물을 해결해 주는 학원도 있다. 가령 일주일에 세 번 학원을 다닌다면 두 번은 선행학습을 하고, 한 번은 외고에서 내준 과제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신입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런 학원에 기댈 수밖에 없다. 외고 재학생 ㅎ군은 “외고에서 이뤄지는 수업 자체가 미리 공부해두지 않으면 쫓아가기 벅찰 정도”라며 “입학 전에 내주는 과제는 이에 대비하는 ‘몸풀기’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김학윤 공동부회장(서울 잠신고 교사)은 “현재로서는 외고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우수한 인재 중의 인재”라며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면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대학 입시에 전념하느라 아까운 능력을 사장시키고 있는 건 국가적 손실”이라고 했다. 외고의 설립 취지를 살릴 수 있

록 해야 한다는 요구는 평준화에 대한 고집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가 걸린 문제라는 말이다.

이명박 차기정부가 추진하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가 다양한 인재를 길러낸다는 취지를 살리기보다는 이렇게 모두를 입시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가 힘을 얻는 것도 이런 현실에 기초한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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