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논술
통합논술 교과서 / (40) 바람직한 교사상은?
관련 논제 해결하기 / [난이도 수준-고2~고3]
<논제> 주어진 두 사례를 제시문 (가), (나)를 참고해 분석하고, 학생을 대하는 교사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800±50자)
[사례 1] A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서 정서적 학대와 직·간접적인 폭력을 겪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진학 후 친어머니의 보살핌으로 학대와 정신적 충격에서는 잠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과 자신의 소유욕 때문에 좌절을 겪어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청소년기에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 일로 A는 전과자라는 꼬리표를 얻게 되었고, 주위 사람들은 A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A는 전과자로서 받는 사회적 냉대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절도, 사기, 사칭 등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그는 사람들의 냉대를 받아야 했다.
[사례 2] 헬렌 켈러는 생후 두 돌이 되기 전 성홍열이나 수막염이라 생각되는 병을 앓았다. 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결과 시각와 청각을 잃고 말았다. 헬렌 켈러의 부모는 장애를 극복하게 해 줄 방법을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끝에, 보스턴에 있는 펄킨스 시각장애학원 졸업생 앤 설리번을 선생님으로 맞이한다. 앤 설리번은 49년 간 헬렌 켈러와 동고동락했다.
앤 설리번은 헬렌 켈러를 장애인으로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봤다. 헬렌 켈러의 잠재력을 믿었고, 지적 성취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제자를 위해 헌신했다. 헬렌 켈러는 성장해 좌파 지식인으로 진보적인 노동운동단체를 결성할 정도로 열렬한 노동운동을 했으며, 반나치운동에 참여했다. 빛나는 문장력과 진솔한 문체로 <나의 생애>, <신념을 가져라>와 같은 책을 펴내어 전 세계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가) 미국의 교육학자인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1968년, 교육학 관련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 결과의 요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사가 어떤 학생에게 저 아이는 장차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 그런 기대를 받은 학생을 실제로 성적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하였다. 실험 대상이 된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하류 계층에 속했으며 학생 수는 650명이었다.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전학년에 걸쳐 능력별 반편성이 되어 있었는데 읽기 성적을 우수반, 보통반, 열등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열등반에 속한 학생들은 대부분 가정 형평이 아주 어려웠고 주로 멕시코계였다. 두 사람은 먼저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면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지능검사의 목적을 성적이나 지능이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물론 이것은 교사와 학생들을 속이기 위해 계획된 거짓말이었다. 지능검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각 반에서 약 20퍼센트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냈다. 그리고는 이들의 명단을 교사들에게 돌리면서, 이번에 실시한 지능검사 결과, 성적이나 지능이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학생들 이라고 알려주었다. 이것도 역시 실험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꾸민 거짓말이다. 무작위로 뽑았으니만큼 지능검사 결과와 명단에 오른 학생들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었다. 그러나 교사들은 연구자들의 말을 그대로 다 믿었다. 교사들로 하여금 명단에 오른 학생들에게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연구의 전제이자 핵심이었던 것이다. 8개월 뒤에 학생들은 앞서의 것과 똑같은 지능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일반 학생들과 점수는 앞서의 검사 결과에 비해 8.4점이 오른 반면 20퍼센트의 학생들, 즉 실험 집단의 점수는 12.2점이나 높아졌던 것이다. 일반 학생들의 평균점보다 3.8점이나 놓은 수치였다. 특히 학년별로는 1학년과 2학년에서 일반 학생과 실험 집단 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으며 저소득 계층에 속하는 멕시코계 학생들의 점수가 두드러지게 향상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이러한 연구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에 대한 교사의 기대감은 실제로 성적 향상을 가져오는데, 이러한 기대 효과는 저학년 그리고 하류 계층 학생들에게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의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여러 선생님들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모든 선생님들 앞에서 한결같지 않다는 느낌을 한 번쯤은 가지게 된다. 어떤 선생님 앞에서는 공연히 주눅이 들거나 위축되고 어떤 선생님 앞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행동거지가 단정해진다. 꼭 선생님뿐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친구에게는 굉장히 너그럽다가도 어떤 친구에게는 사납게 군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행동이 그리 되는 듯하다. ‘저 선생님은 나를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이상하게도 그 선생님 앞에서는 늘 단정치 못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말이다. 좀처럼 그런 일이 없다가 어쩌다 단추가 떨어진 옷을 입고 오면 꼭 그 선생님에게 지적을 당하게 되는, 그런 식이다. 반대로 저 친구는 나를 참 의젓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들면, 정말로 그 친구 앞에서만큼은 더할 수 없이 의젓해진다. 그런 경험 법칙을 되살려 보면 교사의 기대가 학생들의 성적을 실제로 향상시키게 되는 심리적 과정을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다. 연구자의 의도를 모른 채 학생의 지능과 잠재 능력을 신뢰하게 된 교사는 그 학생에게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쏟게 될 것이다. 교사의 기대감과 신뢰는 눈빛과 말씨, 행동에 그대로 드러나고 학생은 그것을 느낀다. 설혹 그 학생이 당장 좋은 결과를 나타내지 못하더라도 교사는 그 학생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실망치 않고 계속 격려하고 애정을 기울일 것이다. 그 학생에게 기대감을 가지기 전이라면 넌 어쩔 수 없구나 하고 포기할 일도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런 기대와 격려를 받는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 학생은 선생님의 신뢰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저학년과 멕시코계 학생들에게 그러한 기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저학년은 아직 자신의 학습 능력에 대한 판단(이를 ‘학문적 자아개념’이라 한다.)이 영글어 있지 않다. ‘나는 어쩔 수 없어’라는 생각이 아직 굳어지기 전이라 교사의 기대감에 따라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기가 훨씬 수월한 조건 아래 있는 것이다. 또 계층적으로 가장 극빈한 층에 속하는 멕시코계 학생들은 아마도 교사의 기대와 신뢰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스로에 대해 체념하거나 부정적인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뜻하지 않게 선생님의 신뢰와 애정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없는 힘도 쑥쑥 생겨나지 않겠는가. 로젠탈과 제이콥슨의 연구는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 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검증한 것이었다. ‘자기충족적 예언 이론’이란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주위의 예언이 행위자에게 영향을 주어 결국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이론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한다. -유시주,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나) 아침 조회시간이면 늘 자리를 비우는 아이가 있었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담임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아이의 자리에는 가방만 덩그마니 놓인 채, 비어 있었다. 가방이 있으니 학교에 온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급한 일이 있겠거니 했다. 아이는 내가 조회를 거의 마칠 때 쯤, 머쓱한 표정으로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섰다. 머리를 긁적이며 제 자리에 가 앉는 아이를 보며 나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이는 꼭 그 시간이면 자리를 비우곤 했다. 처음에는 급한 일이 있으려니 짐작했지만,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정말 화가 났다. 늘 머쓱한 표정으로, 사정 설명도 없이 제 자리에 앉아버리는 아이의 행동은 나를 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주가 지나고 다음 주가 되어도 아이의 그런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곤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양심이 있는 거냐, 그렇게 눈치를 줬으면 알아차리고 행동을 고쳐야 되지 않겠느냐, 조회 시간이면 늘 자리를 비우는 이유가 뭐냐? 내 채근에 평소 내성적이었던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화장실에 갔다는 거였다. 집이 시민 아파트인데, 공동 화장실이어서 아침 시간에는 도저히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며, 그래서 학교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다고 아이는 떠듬떠듬 사정 설명을 했다.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나의 경험으로 아이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화장실이 있는 단독 주택에 살던 내게 아이의 사정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벌써 이십 년도 전의 일이지만, 그 일은 내 기억 속에 불로 지진 것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열정만 있고 이해는 부족했던 교직 초년생 시절의 일이었다. 아침이면 늘 지각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조회 시간이면 그 아이의 자리는 거의 날마다 비어 있었다. 일 교시가 끝날 무렵에 오는 날도 많았고, 어떤 때는 조회와 일 교시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오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에 와서도 오전 시간은 늘 엎드려 졸기 일쑤였다. 활발한 성격에 서글서글한 웃음이 늘 입가에 붙어있어, 어려움이라곤 없어 보이는 아이였지만,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나는 아이를 불러 상담을 했다. 평소와 달리 머뭇거리며 겨우 입을 뗀 아이는 집안 사정 때문에 지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쳐 누워 계시고, 대신 일 나기시던 어머니마저 쓰러져 전기 요금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고, 자기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자정이 넘도록 아르바이트를 해 버는 돈으로 전기요금을 내야 전기가 끊기지 않는다고, 아이는 이야기 끝에 그래도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그 뒤 날마다 지각을 하는 그 아이에게 “또 늦잠 잤지? 내일도 늦잠 자라” 하며 나는 야단보다는 농담을 했는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곤 했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 또 비슷한 일을 겪게 된 것이다. 이미 나는 경험이 행동을 바꾸어 낼 만큼 제법 나이 든 교사였다. 그래서 전처럼 화를 내지 않고, 아이와 교감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교직은 늘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는 곳이다. 비슷하다고 해서 그에 대처하는 교사의 역할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경험이 교사의 생각을 바꾸어 내고,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도 달라지게 한다.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한겨레> 2006년 10월 15일치 기사
(가) 미국의 교육학자인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1968년, 교육학 관련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 결과의 요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사가 어떤 학생에게 저 아이는 장차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 그런 기대를 받은 학생을 실제로 성적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하였다. 실험 대상이 된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하류 계층에 속했으며 학생 수는 650명이었다.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전학년에 걸쳐 능력별 반편성이 되어 있었는데 읽기 성적을 우수반, 보통반, 열등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열등반에 속한 학생들은 대부분 가정 형평이 아주 어려웠고 주로 멕시코계였다. 두 사람은 먼저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면서 교사와 학생들에게 지능검사의 목적을 성적이나 지능이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물론 이것은 교사와 학생들을 속이기 위해 계획된 거짓말이었다. 지능검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각 반에서 약 20퍼센트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냈다. 그리고는 이들의 명단을 교사들에게 돌리면서, 이번에 실시한 지능검사 결과, 성적이나 지능이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학생들 이라고 알려주었다. 이것도 역시 실험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꾸민 거짓말이다. 무작위로 뽑았으니만큼 지능검사 결과와 명단에 오른 학생들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었다. 그러나 교사들은 연구자들의 말을 그대로 다 믿었다. 교사들로 하여금 명단에 오른 학생들에게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연구의 전제이자 핵심이었던 것이다. 8개월 뒤에 학생들은 앞서의 것과 똑같은 지능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일반 학생들과 점수는 앞서의 검사 결과에 비해 8.4점이 오른 반면 20퍼센트의 학생들, 즉 실험 집단의 점수는 12.2점이나 높아졌던 것이다. 일반 학생들의 평균점보다 3.8점이나 놓은 수치였다. 특히 학년별로는 1학년과 2학년에서 일반 학생과 실험 집단 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으며 저소득 계층에 속하는 멕시코계 학생들의 점수가 두드러지게 향상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이러한 연구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에 대한 교사의 기대감은 실제로 성적 향상을 가져오는데, 이러한 기대 효과는 저학년 그리고 하류 계층 학생들에게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의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여러 선생님들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모든 선생님들 앞에서 한결같지 않다는 느낌을 한 번쯤은 가지게 된다. 어떤 선생님 앞에서는 공연히 주눅이 들거나 위축되고 어떤 선생님 앞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행동거지가 단정해진다. 꼭 선생님뿐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친구에게는 굉장히 너그럽다가도 어떤 친구에게는 사납게 군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행동이 그리 되는 듯하다. ‘저 선생님은 나를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이상하게도 그 선생님 앞에서는 늘 단정치 못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말이다. 좀처럼 그런 일이 없다가 어쩌다 단추가 떨어진 옷을 입고 오면 꼭 그 선생님에게 지적을 당하게 되는, 그런 식이다. 반대로 저 친구는 나를 참 의젓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들면, 정말로 그 친구 앞에서만큼은 더할 수 없이 의젓해진다. 그런 경험 법칙을 되살려 보면 교사의 기대가 학생들의 성적을 실제로 향상시키게 되는 심리적 과정을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다. 연구자의 의도를 모른 채 학생의 지능과 잠재 능력을 신뢰하게 된 교사는 그 학생에게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쏟게 될 것이다. 교사의 기대감과 신뢰는 눈빛과 말씨, 행동에 그대로 드러나고 학생은 그것을 느낀다. 설혹 그 학생이 당장 좋은 결과를 나타내지 못하더라도 교사는 그 학생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실망치 않고 계속 격려하고 애정을 기울일 것이다. 그 학생에게 기대감을 가지기 전이라면 넌 어쩔 수 없구나 하고 포기할 일도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런 기대와 격려를 받는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 학생은 선생님의 신뢰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저학년과 멕시코계 학생들에게 그러한 기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저학년은 아직 자신의 학습 능력에 대한 판단(이를 ‘학문적 자아개념’이라 한다.)이 영글어 있지 않다. ‘나는 어쩔 수 없어’라는 생각이 아직 굳어지기 전이라 교사의 기대감에 따라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기가 훨씬 수월한 조건 아래 있는 것이다. 또 계층적으로 가장 극빈한 층에 속하는 멕시코계 학생들은 아마도 교사의 기대와 신뢰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스로에 대해 체념하거나 부정적인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뜻하지 않게 선생님의 신뢰와 애정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없는 힘도 쑥쑥 생겨나지 않겠는가. 로젠탈과 제이콥슨의 연구는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 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검증한 것이었다. ‘자기충족적 예언 이론’이란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주위의 예언이 행위자에게 영향을 주어 결국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이론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한다. -유시주,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나) 아침 조회시간이면 늘 자리를 비우는 아이가 있었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담임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아이의 자리에는 가방만 덩그마니 놓인 채, 비어 있었다. 가방이 있으니 학교에 온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급한 일이 있겠거니 했다. 아이는 내가 조회를 거의 마칠 때 쯤, 머쓱한 표정으로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섰다. 머리를 긁적이며 제 자리에 가 앉는 아이를 보며 나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이는 꼭 그 시간이면 자리를 비우곤 했다. 처음에는 급한 일이 있으려니 짐작했지만,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정말 화가 났다. 늘 머쓱한 표정으로, 사정 설명도 없이 제 자리에 앉아버리는 아이의 행동은 나를 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주가 지나고 다음 주가 되어도 아이의 그런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곤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양심이 있는 거냐, 그렇게 눈치를 줬으면 알아차리고 행동을 고쳐야 되지 않겠느냐, 조회 시간이면 늘 자리를 비우는 이유가 뭐냐? 내 채근에 평소 내성적이었던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화장실에 갔다는 거였다. 집이 시민 아파트인데, 공동 화장실이어서 아침 시간에는 도저히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며, 그래서 학교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다고 아이는 떠듬떠듬 사정 설명을 했다.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나의 경험으로 아이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화장실이 있는 단독 주택에 살던 내게 아이의 사정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벌써 이십 년도 전의 일이지만, 그 일은 내 기억 속에 불로 지진 것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열정만 있고 이해는 부족했던 교직 초년생 시절의 일이었다. 아침이면 늘 지각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조회 시간이면 그 아이의 자리는 거의 날마다 비어 있었다. 일 교시가 끝날 무렵에 오는 날도 많았고, 어떤 때는 조회와 일 교시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오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에 와서도 오전 시간은 늘 엎드려 졸기 일쑤였다. 활발한 성격에 서글서글한 웃음이 늘 입가에 붙어있어, 어려움이라곤 없어 보이는 아이였지만,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나는 아이를 불러 상담을 했다. 평소와 달리 머뭇거리며 겨우 입을 뗀 아이는 집안 사정 때문에 지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쳐 누워 계시고, 대신 일 나기시던 어머니마저 쓰러져 전기 요금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고, 자기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자정이 넘도록 아르바이트를 해 버는 돈으로 전기요금을 내야 전기가 끊기지 않는다고, 아이는 이야기 끝에 그래도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그 뒤 날마다 지각을 하는 그 아이에게 “또 늦잠 잤지? 내일도 늦잠 자라” 하며 나는 야단보다는 농담을 했는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곤 했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 또 비슷한 일을 겪게 된 것이다. 이미 나는 경험이 행동을 바꾸어 낼 만큼 제법 나이 든 교사였다. 그래서 전처럼 화를 내지 않고, 아이와 교감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교직은 늘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는 곳이다. 비슷하다고 해서 그에 대처하는 교사의 역할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경험이 교사의 생각을 바꾸어 내고,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도 달라지게 한다.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한겨레> 2006년 10월 15일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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