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권을 읽었느냐’를 따지는 시대는 지났다. 더 중요한 것은 독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독서능력에 대한 질적 평가’다.
왜 5분을 못 버틸까…왜 뒷장부터 뒤질까…
왜 만화책만 읽을까. 왜 차례대로 읽지 않고 중간이나 뒷장부터 뒤질까. 왜 읽은 뒤에 5분 이상 견디지 못할까. 왜 긴 글은 도대체 읽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 왜 글을 읽은 뒤에 독후감을 쓰지 않으려고 할까. 왜 슬픈 장면을 읽어도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걸까?
독서를 하는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부모의 걱정은 여러 가지다. 이 모든 걱정은 ‘책을 제대로 읽는 걸까’로 요약된다. 책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만 생각했지, 아이의 책읽기가 제대로 진행되는지는 모든 부모의 관심사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독서 능력 진단이다.
독서 능력 진단을 해 보면 아이들의 독서 태도에 문제가 생기는 원인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만화만 읽으려는 것은 보통 어휘력이 낮기 때문이고, 차례대로 읽지 않으려는 것은 독서를 ‘줄거리 읽기’와 ‘빨리 읽기’만을 강조하는 교사나 부모 때문이다. 슬픈 장면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상상력이 빈곤한 것인데, 상상력만큼 중요한 지적 능력도 없으니 이 부분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내용 요약을 못하는 것은 독해력이 부족한 것이다. 독해력 안에는 어휘력, 이해력, 요약력, 분석력 등이 포함되는데 독서 능력 진단에서는 이 능력들을 구분해서 검증해야 한다. 세부항목별 능력이 차이를 보이는 때가 많은데 이럴 때는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뛰어난지를 구별해야 한다.
10년 전만 해도 외국의 ‘독서능력 검사지’를 그대로 번역해 썼지만, 2001년 한국독서교육개발원이 독자적인 검사지를 개발한 이후에는 국내에서도 검사를 실시하는 교육 관련 기관이나 기업들이 꽤 있다. 진단지는 보통 객관식 선다형과 단답 서술형으로 나뉘어 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단계별로 문항수도 다르다. 독서환경이나 독서에 대한 흥미, 태도, 습관 등에서부터 어휘와 문장의 이해, 글 내용의 이해력 등까지 측정해 그 결과를 분석해준다. 한국독서교육개발원의 초등학생용 진단검사지를 보면 줄거리 알기, 내용 알기, 요약하기, 어휘 알기, 읽는 속도, 집중력, 독서량, 창의력, 느낌 알기, 추리하기, 판단하기, 상상하기 등의 항목을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같은 나이 또래 평균치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최근 독서표준종합검사인 ‘노명완독서종합검사’를 개발한 고려대 문식성연구회와 사단법인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가 지난 18일 서울 고려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독서능력의 차이가 지역별, 성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부터 3년 동안 초등학생과 중학생 6만여명을 상대로 진행된 조사 결과 학년별로는 중학교 3학년의 평균점수가 가장 낮았고, 초등학교 6학년의 평균점수가 가장 높았다.
또 전 학년에 걸쳐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독서 능력 검사의 평균이 높았다. 지역별로 보면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중학교 1학년을 제외하고 대도시와 중소도시 거주 학생들의 평균점수가 읍면 지역의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 능력에 대한 검사 영역은 사실적 읽기, 추론적 읽기, 창의적 읽기 등 세 영역으로 이뤄졌다.
이날 세미나에서 ‘실제적 독서 평가’라는 주제 발표를 한 조병영 미국 메릴랜드대 연구원은 “독서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독자적인 독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독서 평가는 교실과 일상의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교사나 학부모가 하는 평가 이외에도 “자신의 독서를 스스로 평가하는 ‘자기평가’가 상당히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 ‘나는 왜 이 책을 읽는가’ ‘내가 이 책을 이해한 방식이 맞는가’ ‘글을 읽는 동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나왔을 때는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가’ 등의 점검표를 만들어 독서할 때마다 기입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아이의 독서 능력을 진단하려는 부모들은 현재 쓰이는 독서 능력 진단 검사에서 나오는 수치나 점수를 절대화하지 말고, 아이 스스로 자신의 독서 능력을 점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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