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서울 전국은행연합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와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린 <미래를 여는 역사> 출판 기념 한·중·일 공동기자회견. 이종근 기자 root2@han.co.kr
기출문제 유형1 - 성균관대 2008학년도 수시 2 모의
★★ 중급 / [난이도 = 중2~고1] 아래의 세 <제시문>의 논지를 각각 요약하시오. <제시문 1> 일어난 사건들 그 자체로서의 역사는 우리의 인식 이전에 이미 어떤 형태로든 완성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 세계는 완전히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역사 세계를 기술하는 진술들은 존재했던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낼 때에만 참이다. 역사 탐구자는 탐구의 과정에 개입되는 자신의 주관적 관점이나 사회적 제약을 통제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낼 수 있다. 이러한 역사 탐구의 근본 원리들을 따를 경우, 역사를 탐구하는 자는 비록 그 자신도 역사의 흐름 속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초월하여 역사 세계를 객관화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주관적,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역사 탐구자는 그런 제약을 배제하거나 통제할 수 있으며, 또 그럼으로써 과거의 사실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생략) <제시문 2> 과거는 완벽히 복제될 수 없으며 또다시 재구성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역사 구성은 필연적으로 선택적이다’라는 원칙은 너무 자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를 서술할 때는 이 원칙에 따라 사실들의 선택을 규제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과거의 사건에 부과되는 비중을 결정하며, 또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생략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아울러 선택된 사실들이 어떻게 정리되고 배열될 것인가도 결정한다. 게다가 사실의 선택이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모든 역사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쓰며, 또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사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여 역사는 동시대인들이 현재에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들에 대한 기술(記述)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생략) <제시문 3> 역사란 유전자처럼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집단적 삶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억장치다. 기억이란 유전자 정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과거의 잔상들이거나 그것들을 임의적으로 조합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기억이라면, 우리의 집단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역사다. 기억 상실증에 걸리면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되는 것처럼, 한 민족이 자기 역사를 빼앗기면 신채호나 박은식의 말처럼 국가의 혼과 정신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략)
■ 해결 전략 ‘논지를 요약하라’는 요구는 제시문을 읽는 이의 입장에서 글의 핵심을 기술하라는 뜻이다. 이는 결국 ‘요지를 서술하라’는 것이다. 각 제시문은 역사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제시문 1>에서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사실’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할 때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 및 선택은 배제된다. <제시문 2>는 과거를 완전히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역사는 현재를 기준으로 해석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제시문 3> 또한 <제시문 2>처럼 현재 시점에서 역사의 재해석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별히 이 입장에서는 사회적 기억장치로서의 역사를 강조한다. 역사는 집단 구성원에게 주입될 수 있고, 집단 구성원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요지를 서술할 때는 각 제시문에 나타난 역사 인식의 차이점에 주목해 관점이 차이가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기술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제시문 내용을 벗어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자의적 기준에 근거해 특정 입장의 우위를 주장하거나, 제시문과 관련해 기존에 알고 있던 사항을 설명해선 안 된다.
■ 자료 검색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 역사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history as past)’와 ‘기록으로서의 역사(history as historiography)’라는 두 측면이 있다. 전자가 객관적 의미의 역사라면, 후자는 주관적 의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객관적 사실, 즉 시간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모든 과거 사건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수많은 과거 사건들의 집합체가 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역사가가 이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역사가의 가치관과 같은 주관적 요소가 개입하게 되며, 이 경우 역사라는 말은 기록된 자료 또는 역사서와 같은 의미가 된다. -고등학교 <국사>(교육과학부) 10쪽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헬릿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 영국 정보성 외교부장, <타임스> 논설위원, 국제연합(UN) ‘세계 인권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교수.
저서로 <칼 막스>(1934), <새로운 사회>(1951), <러시아 혁명>(1979), <역사란 무엇인가>(1961) 등이 있다.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며, 역사적 사실은 상대적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카는 역사가는 역사적 사건을 어떤 순서로 어떤 문맥으로 기술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비슷한 사건 중 역사가가 선택한 특정 사건만이 역사로 남게 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똑같이 루비콘 강을 건넜더라도 역사가가 선택한 하나의 사건 즉, 카이사르가 건넜던 사실만이 역사로서 가치를 지니고 나머지 사건은 기록으로 남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채호의<조선상고사>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독립운동가.
일제로부터 국권을 회복하고자 모든 수단을 강구한 민족주의자로, 민족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서는 국사 연구 및 교육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저서로 <조선상고사>(1948), <조선사연구초>(1929), <을지문덕>(1908) 등이 있다.
<조선상고사>는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단군시대에서 시작해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까지 기록돼 있다. 이 책에서 신채호는 종래의 단군·기자·위만·삼국 혹은 단군·기자·삼한·삼국의 역사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대단군조선·고조선·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역사관을 채택했다. ‘총론’ 에서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는 사관을 드러냈다.
■ 관점 넓히기 (역사의 복원이 집단이나 국가의 차원에서만 이뤄질 것이 아니라 개인 또는 가족 단위에서도 이뤄져야 함을 보여주는 글이다.) 하루 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의 개인사와 가족사가 모여서 역사를 이룬다. 비겁하고 수치스러웠던 어느 하루, 피폐하여 방황했던 한 시절을 빼놓고 그 사람의 개인사를 말할 수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일제시대와 해방, 6·25와 분단 50년을 합쳐 100년의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 민족은 저마다 잊고 싶은 가족사와 역사를 갖게 되었다. 그 고통스러웠던 기억들, 파편으로 흩어져 있는 기억과 사건들을 수습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역사를 쓸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 청산과 과거사 규명작업에 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와서 잊고 싶은 것들을 들고 나와서 이로울 것이 뭐냐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참으로 깊고 깊은 상처를 내면에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토만 동강난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형제, 부부가 좌우로 갈리고 남북으로 찢어졌던 시절을 우리는 살았다. 어렸을 때 심한 폭력을 당했거나, 외상은 없지만 정신에 깊은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그 기억을 지워버리려 한다. 정신과에선 그 기억을 되살려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도와주어 극복하게 하는 치료를 한다. 그 상처를 헤집지 않고서는 병을 치료할 수 없어서다. 그러나 상처가 깊을수록 환자는 완고하게 기억해내지 않으려 하고 망각의 늪에 가두려 한다. 우리 민족은 친일과 전쟁, 분단, 좌·우익이라는 문제로 인해 뜨겁디 뜨거운 집단적인 화상을 입었다.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에 가까이 가면 불꽃이 튄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엄청난 화상의 경험이 있는 것이다. 전국민적으로 겪은 집단적인 상처를 헤집고 들여다보지 않는 한 그 화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통스럽겠지만 헤집어 내야만 치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과거사를 규명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을 한 좌익 활동가의 명단을 확보하고 심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집단적 화상을 치유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세월 가족들이 이땅에서 받았던 상처와 핍박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삼촌이, 할아버지가 비록 좌익활동을 했지만 독립운동을 했다고 떳떳이 주장하고 자료를 모은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처가 너무 깊은 사람들은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다. 그 불에 델 것 같은 기억에 두렵기 때문이다. 핏덩이를 남기고 사라진 부모, 할아버지의 친일행적 때문에 아버지 세대의 6남매와 그 배우자가 모두 북으로 가고 20여명의 아이들만 남은 가족, 가족사진 하나 없이 홀홀단신 남으로 내려와 가족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아버지를 둔 이웃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삼촌이나 고모 사촌을 이야기 할 때마다 숨을 죽였던 어른들을 기억한다. 낮말은 새가 등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소곤댔다. 누렇게 바랜 사진 속의 그들은 지금 우리의 아들딸보다 더 어린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얼굴들에 이름을 찾아주고 가족의 사진을 복원해 냄으로서 개인과 가족을 치유하고 역사도 치유해야 한다. 통일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지는 모른다. 통일이 되면 역사교과서는 다시 써야 할 것이다. 북쪽의 역사도 일방적이고 남쪽도 온전한 역사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과 남의 역사를 합쳐도 하나의 완벽한 역사책이 될 수 없다. 북쪽은 북쪽대로 입맛에 맞게 역사를 기술했고 남쪽은 그동안 정권이 여러번 바뀌어 역사를 폭넓게 보려는 노력이 진행되었지만 온전한 역사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깡그리 남쪽에 있다 하여 북한에서 벌어진 지난 50년의 역사를 통째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폭넓게 보고 북의 역사와 좌익의 역사까지 우리것으로 만들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개인사와 가족사의 복원이고 역사의 복원이고 우리 민족이 치유되는 길이 아닐까. -김선주, <한겨레> 2004년 9월5일치 칼럼
★★ 중급 / [난이도 = 중2~고1] 아래의 세 <제시문>의 논지를 각각 요약하시오. <제시문 1> 일어난 사건들 그 자체로서의 역사는 우리의 인식 이전에 이미 어떤 형태로든 완성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 세계는 완전히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역사 세계를 기술하는 진술들은 존재했던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낼 때에만 참이다. 역사 탐구자는 탐구의 과정에 개입되는 자신의 주관적 관점이나 사회적 제약을 통제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낼 수 있다. 이러한 역사 탐구의 근본 원리들을 따를 경우, 역사를 탐구하는 자는 비록 그 자신도 역사의 흐름 속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초월하여 역사 세계를 객관화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주관적,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역사 탐구자는 그런 제약을 배제하거나 통제할 수 있으며, 또 그럼으로써 과거의 사실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생략) <제시문 2> 과거는 완벽히 복제될 수 없으며 또다시 재구성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역사 구성은 필연적으로 선택적이다’라는 원칙은 너무 자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를 서술할 때는 이 원칙에 따라 사실들의 선택을 규제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과거의 사건에 부과되는 비중을 결정하며, 또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생략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아울러 선택된 사실들이 어떻게 정리되고 배열될 것인가도 결정한다. 게다가 사실의 선택이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모든 역사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쓰며, 또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사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여 역사는 동시대인들이 현재에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들에 대한 기술(記述)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생략) <제시문 3> 역사란 유전자처럼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집단적 삶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억장치다. 기억이란 유전자 정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과거의 잔상들이거나 그것들을 임의적으로 조합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기억이라면, 우리의 집단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역사다. 기억 상실증에 걸리면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되는 것처럼, 한 민족이 자기 역사를 빼앗기면 신채호나 박은식의 말처럼 국가의 혼과 정신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략)
■ 해결 전략 ‘논지를 요약하라’는 요구는 제시문을 읽는 이의 입장에서 글의 핵심을 기술하라는 뜻이다. 이는 결국 ‘요지를 서술하라’는 것이다. 각 제시문은 역사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제시문 1>에서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사실’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할 때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 및 선택은 배제된다. <제시문 2>는 과거를 완전히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역사는 현재를 기준으로 해석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제시문 3> 또한 <제시문 2>처럼 현재 시점에서 역사의 재해석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별히 이 입장에서는 사회적 기억장치로서의 역사를 강조한다. 역사는 집단 구성원에게 주입될 수 있고, 집단 구성원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요지를 서술할 때는 각 제시문에 나타난 역사 인식의 차이점에 주목해 관점이 차이가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기술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제시문 내용을 벗어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자의적 기준에 근거해 특정 입장의 우위를 주장하거나, 제시문과 관련해 기존에 알고 있던 사항을 설명해선 안 된다.
■ 자료 검색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 역사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history as past)’와 ‘기록으로서의 역사(history as historiography)’라는 두 측면이 있다. 전자가 객관적 의미의 역사라면, 후자는 주관적 의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객관적 사실, 즉 시간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모든 과거 사건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수많은 과거 사건들의 집합체가 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역사가가 이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역사가의 가치관과 같은 주관적 요소가 개입하게 되며, 이 경우 역사라는 말은 기록된 자료 또는 역사서와 같은 의미가 된다. -고등학교 <국사>(교육과학부) 10쪽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 관점 넓히기 (역사의 복원이 집단이나 국가의 차원에서만 이뤄질 것이 아니라 개인 또는 가족 단위에서도 이뤄져야 함을 보여주는 글이다.) 하루 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의 개인사와 가족사가 모여서 역사를 이룬다. 비겁하고 수치스러웠던 어느 하루, 피폐하여 방황했던 한 시절을 빼놓고 그 사람의 개인사를 말할 수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일제시대와 해방, 6·25와 분단 50년을 합쳐 100년의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 민족은 저마다 잊고 싶은 가족사와 역사를 갖게 되었다. 그 고통스러웠던 기억들, 파편으로 흩어져 있는 기억과 사건들을 수습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역사를 쓸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 청산과 과거사 규명작업에 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와서 잊고 싶은 것들을 들고 나와서 이로울 것이 뭐냐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참으로 깊고 깊은 상처를 내면에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토만 동강난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형제, 부부가 좌우로 갈리고 남북으로 찢어졌던 시절을 우리는 살았다. 어렸을 때 심한 폭력을 당했거나, 외상은 없지만 정신에 깊은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그 기억을 지워버리려 한다. 정신과에선 그 기억을 되살려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도와주어 극복하게 하는 치료를 한다. 그 상처를 헤집지 않고서는 병을 치료할 수 없어서다. 그러나 상처가 깊을수록 환자는 완고하게 기억해내지 않으려 하고 망각의 늪에 가두려 한다. 우리 민족은 친일과 전쟁, 분단, 좌·우익이라는 문제로 인해 뜨겁디 뜨거운 집단적인 화상을 입었다.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에 가까이 가면 불꽃이 튄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엄청난 화상의 경험이 있는 것이다. 전국민적으로 겪은 집단적인 상처를 헤집고 들여다보지 않는 한 그 화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통스럽겠지만 헤집어 내야만 치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과거사를 규명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보훈처가 독립운동을 한 좌익 활동가의 명단을 확보하고 심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집단적 화상을 치유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세월 가족들이 이땅에서 받았던 상처와 핍박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삼촌이, 할아버지가 비록 좌익활동을 했지만 독립운동을 했다고 떳떳이 주장하고 자료를 모은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처가 너무 깊은 사람들은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다. 그 불에 델 것 같은 기억에 두렵기 때문이다. 핏덩이를 남기고 사라진 부모, 할아버지의 친일행적 때문에 아버지 세대의 6남매와 그 배우자가 모두 북으로 가고 20여명의 아이들만 남은 가족, 가족사진 하나 없이 홀홀단신 남으로 내려와 가족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아버지를 둔 이웃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삼촌이나 고모 사촌을 이야기 할 때마다 숨을 죽였던 어른들을 기억한다. 낮말은 새가 등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소곤댔다. 누렇게 바랜 사진 속의 그들은 지금 우리의 아들딸보다 더 어린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얼굴들에 이름을 찾아주고 가족의 사진을 복원해 냄으로서 개인과 가족을 치유하고 역사도 치유해야 한다. 통일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지는 모른다. 통일이 되면 역사교과서는 다시 써야 할 것이다. 북쪽의 역사도 일방적이고 남쪽도 온전한 역사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과 남의 역사를 합쳐도 하나의 완벽한 역사책이 될 수 없다. 북쪽은 북쪽대로 입맛에 맞게 역사를 기술했고 남쪽은 그동안 정권이 여러번 바뀌어 역사를 폭넓게 보려는 노력이 진행되었지만 온전한 역사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깡그리 남쪽에 있다 하여 북한에서 벌어진 지난 50년의 역사를 통째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폭넓게 보고 북의 역사와 좌익의 역사까지 우리것으로 만들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개인사와 가족사의 복원이고 역사의 복원이고 우리 민족이 치유되는 길이 아닐까. -김선주, <한겨레> 2004년 9월5일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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