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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블로그] 침묵의 살인자의 탄생(피노키오의 슬픈 오마쥬)

등록 2008-09-24 14:13

이번 년도 들어서 예수님의 부활만큼이나 놀랍고도 믿기지 않는 부활의 소식 하나를 들었다. 바로 ‘일제 고사’의 부활이다. 일제 때부터 시작해서 일제고사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듯이 그 이름부터가 상당히 거부하고 싶은 제도다. 일제고사의 정확한 뜻은 ‘전국 또는 도 단위로 같은 학년이 같은 시간에 같은 문제로 각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이다. 말인 즉슨 똑같은 문제를 내고 풀게 해서 결국 이제 갓 엄마 없이 문방구에서 문제집 살만한 나이의 ‘초딩’들에게 전국적인 등수를 매기겠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 아이가 꼴지 해도 전혀, 절대로 안면 팔리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아닌 이상, 아이들이 집에 들어와 물 한잔 마시고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차에 태워 학원에 대려다 줘야 하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어찌 빈틈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국수사과는 물론 점점 모국어 대접을 받아가는, 아니, 오히려 모국어 보다 훨씬 대접받는 영어에 논술에 각종 예체능 교육까지, 꽉 찬 아이로 키우기 위해 오늘도 우리의 부모님들은 나이 30살 넘어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학원 강사들 먹여 살려 가며 ‘우리아이 1등 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나 때만 해도 가방엔 필통이랑 그날 교과서 몇 권이랑 노트랑 친구들이랑 놀 공기 몇 개 들어있던 가방이 이젠 학원 문제집에 피아노 소곡집에 갈아입을 옷 등이 가득가득 들어가 있다.

고생하신 부모님들께서는 투자하는 돈 만큼 아이들에게서 그 효과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길 기대하고, 그것이 표출되든 안 되든, 그러한 기대감은 아이들에게도 분명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발견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이 시대의 가치를 강요받는다. 자신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자유시간은 공부 열심히 한 ‘대가’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을 점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심지어 자신이 무엇으로 창조되었는지 자각하기 힘들어진다.

그러다 문득 피노키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이야기가 2008년도에 다시 읽어 보니 영락없는 우리 초딩님들 이야기였다. 제페토 할아버지에 의해 만들어 지자마자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될 수 있어.’ 하면서 이제 좀 걷겠나 싶었는데 내일부터 학교에 가야한다고 한다. 인간이 뭔지도 학교가 뭔지도 모르는데 제페토 할아버지는 자신의 옷까지 팔아 책을 사주며 학교에 보낸다.(학교 가는 길은 가르쳐줬는지 모르겠다.) 왜 가야하는지도 모르는 학교에 가다가 원래 인형극 인형으로 만들어졌던 피노키오. 본능에 이끌려 책 팔아서 인형극 보러 간다.(책이 뭔지 몰랐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본능 덕에 사고치고 쫓겨나고 갖은 수난 다 당한다. 그러나 거짓말 하면 무슨 TV안테나도 아니고 쭉쭉 늘어나는 코에 비하면 그 정도 수난은 피노키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코는 제페토가 고안한 틈틈이 전화하면서 위치 추적할 수 있는 핸드폰을 대신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의지로 통제해서 표현할 수 있는 자유조차 피노키오에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 그래서, 결국 자신을 찾아 나선 제페토 할아버지와 고래 뱃속에서 상봉하고 할아버지의 진실한 사랑을 깨달은 피노키오는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할아버지 말씀도 잘 들어 인간이 된다.


글쎄, 피노키오가 깨달은 것은 할아버지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고, 뭔 진 모르겠지만 인간이 되면 뭔가 제페토 할아버지처럼 조금은 자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차피 거짓말도 못하겠다, 우선 할아버지 뜻에 맞춰져 보자는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이 된 피노키오는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만족했을까?

글쎄, 내 생각엔 피노키오에게 남았을 것은 할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받은 가치와 자신의 본능 사이의 갈등에서 받은 상처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단한 가지도 모르겠다는 자괴감 뿐 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받았던 상처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가치(정확히 말하면 세뇌당한 가치)를 강요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들을 수 없게 돼버렸을 것이다. 조용히, 누구에게도 뒤틀린 자아를 보여주지 않고 (감정에 솔직하면 코가 늘어나는 트라우마가 깊이 뿌리 잡혔기 때문에) 철저히 침묵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없애버리는 침묵의 살인자가 되어버렸을지도…

요는 이것이다. 공부 많이 시킨다고 다 잘못됐다가 아니다. 분명 머리 싸매고 노트필기 꼼꼼히 해가며 수학 100점 맞을 때마다 희열을 느끼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 한번쯤은 물어보자는 것이다. “너는 무얼 하고 싶니?” 그리고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렇지 않았을 경우, 그 파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사건들이 이러한 현실과 전혀 상관없을까?

점점 진정한 가치와 멀어지고 있는 이 현실이 어디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는가?

피노키오에겐 자신의 원래 모습 그대로 인형극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행복했을 수도 있다. 부쩍 한가해 보이는 아파트 놀이터를 볼 때면, 미끄럼틀 감촉의 기억을 더듬거리며 미술학원에서 선생님이 그려주신 그림을 그대로 따라서 놀이터를 그리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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