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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블로그] 거짓 수업 하지 마라

등록 2008-10-08 15:41

“거짓 수업은 허지마라. 모른다는 말 하는 기 가장 어렵긴 허지만.”
선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보고 있다. 대학에서 배운 모든 교육 이론은 한줌의 재처럼 사라졌다. 교직에 나온 첫날 첫 시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발령 첫 학교가 하필이면 여학교. 여자 앞에 서면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던 내가 여학생 무리 속에 덜렁 혼자 던져졌다. 나이차도 얼마 되지 않은 이 아이들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말보다는 땀이 먼저 나왔다.

교실도 어려웠지만 교무실은 더 어려웠다. 아직 내가 교사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기에 교무실은 그저 어려운 공간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선생님들의 벼락이 떨어질 것 같았다. 교무실이 어떤 공간이었나. 가능하면 멀찍이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기에 주번도 하기 싫었는데…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에 가면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휴-’

하지만 다리 뻗고 앉을 시간이 없었다. 바로 내일 수업 걱정에 온 몸이 달아올랐다. 참고서와 교과서를 펴놓고 공부해야했다. 아니, 베끼기 시작했다. 잔뜩 써놓고 다음날이면 고대로 재생했다. 한 작품에 대해 내가 이해하고 올바른 감상 기준을 세운 게 아니라 그저 이 말 저 말을 옮기는 수준이었다. 수업에 자신이 없으니 일부러 어렵고 그럴싸한 어휘를 사용했다. 수업이 끝나면 교실에는 뜻 모를 언어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났다.
“오늘은 내가 너 축하도 할 겸 술이나 한잔 하자고 불렀다.”
동문 선배가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따라갔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자 선배가 술을 따랐다.

“헐만 허냐? 정신읎재?”
“……”
“그래, 그럴끼다. 하지만 말이다.”

이 자리에서 선배는 내게 평생 남을 말을 했다.
“교사는 자칫 수업 중 쉽게 아는 척한다. 조금 아는 것을 부풀려 거짓말을 하게 된다. 거짓말은 곧 다른 거짓말을 부른다. 교과서가 100% 진실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은 부분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앞에서는 마치 완전한 진실인 것처럼 말할 때가 있다.”

선배는 천천히, 그러나 진심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니. 나는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 더구나 교과서에 거짓 정보를 실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손사래를 쳤다. 대학까지 나온 내가 모르긴 뭘 모른단 말인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교사가 진실을 왜곡하면 학생은 평생 잘못된 지식을 갖고 살 수 있다.”
‘참고서를 잔뜩 쌓아놓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선배는 그윽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처음 발령받으면 참고서 잔뜩 쌓아놓고는 뜻도 모르고 무조건 베낀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다 아는 양 말을 늘어놓지. 아이들에게 그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배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번 말할 때 한 가지만 정확하게 전달하도록 해. 욕심내지 말고. 아이들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한 게 아니라 꼭 알아야할 한 가지가 필요하지.”

수업시간 내내 말을 쏟아내면 아이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지친 아이들은 귀를 닫아버린다. 소통은 끊어진다. 결국 그 수업시간은 별무소득. 이질감을 느끼며 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니? 나도 지금 초임발령 때를 생각해보면 틀리게 가르친 기억이 많아. 그 당시는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닌거야. 잘못 가르친거지. 그럼 거짓말한 거잖아. 내가 잘못 가르친 지식 때문에 아직도 잘못 알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져.”

그날부터 나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 핵심적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수업론 첫 장을 열어준 선배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내 수업의 밑바탕이 되어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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