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블로그] 잊지 못할 선생님

등록 2008-10-09 13:54

‘사바시 선생님!’

그 분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우리 아들에게 처음으로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 주었고,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여인이었다. 외국인으로서의 제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이의 앞날을 걱정해 주던, 이 곳에 와서 만난 인연들 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다.

3살 때 독일에 처음 와서 5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큰 아이가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은 2년여 밖에 없었다.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고 겁이 많은 아이라 독일인들만 사는 보수적인 동네의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 못내 걱정스러웠다. 걱정과는 다르게 1년 동안 어느 정도 적응해가나 싶었는데, 학생수가 초과되어 2학년부터는 학급이 재편성되는 일까지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번에는 어떤 선생님일까 긴장하며 2학년을 맞이했다.

2학년부터 3년 동안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바시 선생님은 우리 아들의 담임교사였다. 그녀는 이집트 남자와 결혼한 후 개신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 한 흔치않은 독일여인이었다. 사바시 선생님은 항상 모슬렘의 상징인 히잡을 쓰고 다녔다. 독일 사람들은 히잡을 쓴 모슬렘 여자들을 볼 때면 무언지 모를 편견으로 가득한 거부감부터 갖는 것이 보통이다.

처음 담임을 배정 받자, 모두들 선생님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간히 독일 뉴스에 등장하는 것처럼, 교사가 히잡을 쓰고 교단에 서는 것에 대해 정식으로 불만을 제기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독일인이었기 때문이다. 독일 엄마들은 히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러나 그녀는 독일인’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종교도 종교지만 이들은 역시 피를 중요시 하는 민족인 모양이다.

그녀와의 공식적인 첫 만남은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중국인이라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은 일 때문이었다. 독일 아이들은 아시아계의 사람이면 모두 중국인으로 생각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동양인을 보면 ‘싱샹쑝 싱썅쑝 히네진 히네진!’하며 중국인이라고 놀리곤 한다. 1학년 때도 그런 일 때문에 선생님을 만났었다.

나는 그 일에 관해서만은 언제나 분명하고 강경하게 내 의사를 전하는 편이다. 나는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특히 인종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를 가진 말들로 장난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으니, 학교 측에서도 그런 아이들을 엄격히 지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전형적인 독일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엘리트로, 그때 막 부임한 신임 교사였다. 그녀는 자신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반 아이들이 아무도 감히 우리 아이를 놀릴 수 없도록 엄포를 놓아 주었다. 덕분에 1년 동안은 별 문제없이 지나가는 듯 했다.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자 다시 그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나는 1학년 때처럼 초장에 확실하게 해두어야 할 것 같아 학년이 시작되고 얼마지 않아 면담을 신청했다. 그런데 사바시 선생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아이들은 재미로 그렇게 할 수 있다. 내가 강압적으로 그런 장난을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네 아이를 위해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 그 장소에서 해결하게 하라’였다.

나는 약간 못마땅해 하며 ‘우리아이는 겁이 많고 내성적이라 겉으로는 대항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상처받을 것이다. 아무 대응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을 것이 분명하다.’라고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내 주장에 찬성해 줄 것을 은근히 강요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단호했다. 그리고 내게 다시 한 번 그래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언제까지 당신은 아이를 위한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이에게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금 당장 받는 작은 상처가 두려워서 편안한 환경만 마련해 준다면 당신의 아이는 어려움을 헤치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한 없이 나약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특히 독일에서 아시아계 외국인으로 살아가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더한 일들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의 선택은 당신의 자유지만 나는 아이를 위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쿵!’하고 심장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까지 미처 생각지 못한 내 맹목적인 자식 사랑이 갑자기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선생님은 놀리는 친구들을 벌하는 대신,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자주 우리 아이와 토론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답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효과적일까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해 주었다.

내 앞에서는 아이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게 하라고 말하곤 했지만 실상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대할 때는 남달랐다. 반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이 동양 아이가 혹시나 주눅이라도 들지 않을까하여 수업시간이건 휴식시간이건 항상 아이를 주시하며 칭찬과 격려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지금도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들었던 ‘너는 특별하고 남다르다’는 칭찬이 절대적으로 진실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정말 특별하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조용한 성격이라 남 앞에 나서서 잘난 척을 일삼지는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독일 아이들을 한수 아래로 보는 좋지 않은 버릇은 사실 3년 동안 아이를 세뇌시킨 사바시 선생님 때문인 것 같다.

선생님은 학부모 상담 때마다, ‘집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하느냐’고 확인하곤 했다. 보통 독일교사들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위해 가정에서도 반드시 독일말만 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만일 아이들의 학교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기라도 하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집에서 독일어를 쓰고 있느냐’이다. 가정에서 독일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학교수업의 이해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바시 선생님은 달랐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인 이집트어를 한마디도 가르치지 못한 것이 가장 스스로를 자책하게 하는 부분이라며, 우리 아이가 모국어를 잊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여 줄 것을 신신당부 했다.

김나지움에 진학할 때도 한사코 걸어서 등교할 수 있는 집 근처 학교로 보내려는 나를 수차례 불러 설득 했다. ‘이 동네에 있는 김나지움은 너무 평범해서 재능 있는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 할 수 없다. 멀더라도 외국어 김나지움이나 특성화된 학교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선생님에게 지고 말았다. 덕분에 아이는 차를 갈아타고 가야하는 먼 학교에 입학했고, 얼마 후 우리 가족은 학교 근처로 이사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것을 보면서 그 때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곤 한다.

사바시 선생님은 3년 동안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 하던 그녀가 빗길에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났다. 즉시 구급차에 실려 갔고 그날 오후 내내 시력이 희미해지고 오른 팔에 마비가 오는 등, 뇌에 심한 손상을 입은 것은 아닌가 의심되어 종합검진까지 받게 됐다. 다행히 큰 후유증 없이 며칠만 쉬면된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의사 말을 듣지 않고 그 다음날 바로 출근해서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기도 했다.

그녀는 독일에서도 흔치않은 그런 선생님이었다. 처음엔 히잡을 쓴 것 때문에 내심 못마땅해 하던 독일 엄마들도 결국엔 모두들 선생님을 칭찬하고 존경해마지 않았다. 외로운 남의 나라 땅에서 그토록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우리 아이와 내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지금도 그녀는 아들의 기억 속에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선생님’으로 자리하고 있다.

작은 키에 파란 눈동자, 언제나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들, 심각한 문제들도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오면 요술이라도 부린 듯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었다. 그런 선생님의 목소리들이 아직 여물지 않은 아이의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여 독일에서 살아가는 내내 커다란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