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작은 아이 전 담임선생님이 출산을 하고 처음으로 학교를 방문했다. 대부분 독일 사람들은 아기를 낳으면 이렇게 신고식을 하는 모양이다. 태어난지 몇 주일도 되지 않아 잠만 자는 것을 요람에 넣어 다니면서 그동안 함께 지켜봤던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이 순간엔 신의 이름으로 감격하는 것이 또 정답인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들 ‘마인 곳!(mein gott)’을 외치며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전 담임교사와 학부모들은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엄마들과 선생님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어찌 저리도 잘 잊는 것일까!’ 나는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작은 아이 반은 지난 한 해 동안 담임선생님과 싸우느라 피차간에 적지 않게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그 일은 선생님이 임신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작년 봄부터였다. 그녀는 임신을 하자마자 몸이 아프다며 4주 동안 내리 결근을 했다. ‘입덧 때문인가 보다.’하면서도, 입덧을 해도 그렇지 어떻게 뚜렷하게 큰 병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한달이나 학교를 비우다니 나는 내심 못마땅했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 출근하더니 다시 2주를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선생님의 결근은 마침내 나오는 날 보다 결석하는 날이 더 많게 되었고 학부모들은 참다못해 우르르 교장실을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조목조목 논리정연하게 따지는 것이라면 아마 독일 사람을 따를 자는 없을 것이다. 말들도 어쩜 그리 잘하는지 변호사가 따로 필요 없다. 한 마디면 끝날 것을 거창한 논제를 풀어가듯 떠들어 대는 엄마들. 요지는 선생님이 몸이 아파 결근하는 것은 좋으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도 방법이 없었다. 병가는 법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선생님은 매일 결근을 일삼았고 대리 선생님이 있기는 했지만 정해진 기간 동안 병가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갑자기 연락한다거나 학교에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는 바람에 대리선생님 조차 변변히 조달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제대로 수업을 받지 못해 자율학습을 하거나, 이 반 저 반 돌아다니며 동냥 수업을 해야 했다. 마침내 부모들의 인내력은 한계에 달했고, 선생님을 바꾸어 주던지 제명해 줄 것을 학교 측에 강력히 요청했다. 엄마들은 ‘우리도 모두 임산부였다. 임신 중 몸 상태가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결근을 하려면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던지 학교 측에서 선생님을 교체해 달라’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선생님의 결근 사유는 몸이 아파서만은 아니었다. 만일 감기에 걸린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출근을 했다가도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나는 임산부 보호법에 의거해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내 주변에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수업을 거부한다.’였다. 임신한 교사가 전염병에 걸린 학생이 있는 교실에서의 수업을 거부할 법적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임산부가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은 아니다. 수 십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급에 감기에 걸린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10달 동안 수업할 수 있는 날은 며칠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래도 학교에 나온다. 아무리 항의를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난 부모들이 교육청을 찾는 일까지 있었지만 교육청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들도 어떻게 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임신 전에도 결석이 잦았고 툭 하면 결강을 하는 등, 처음부터 불성실한 교사였기에 엄마들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본인을 직접 만나 협박을 하기도 하고, 교장이 직접 나서 설득 해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보란 듯이 더 임산부의 권리를 외치며 당당히 돌아가곤 했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놀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8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결국 출산 한 달 전부터 아예 병가를 쓰고 공식적으로 결석계를 제출함으로써 이 일은 마무리 되었고 아이들은 새로운 선생님을 맞이했다. 엄마들과 함께 쫓아다니면서 나도 너무 화가 났고, 그 뻔뻔스러운 당당함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내 아이의 선생님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인간적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병가를 내고 끝낸다는 말을 듣고 다시는 보지 않게 되기를 빌며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런데 독일 엄마들은 달랐다.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니 선물을 한다고 돈을 걷더니, 그 다음엔 또 아기를 낳았으니 작은 정성이라도 보내자고 통보해왔다. 아이들에게도 일부러 시간까지 내어 선생님에게 선물할 종이를 접고 그림을 그리고 카드를 만들게 했다. 선생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기를 데리고 신고식을 하러 학교를 찾은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얼굴만 봐도 겸연쩍은데,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이성적인 이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그리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나 본인 면전에서 할 소리 못할 소리 상처받는 소리까지 다 해대더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축하한다고 끌어안고 입 맞추고 호들갑을 떠는 모양새라니. 어른들의 행동이 이중적이라고 놀라기는 했지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천만 다행이다. 아이들은 아무도 선생님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학교를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선생님은 아직도 우리 선생님이고 이제 귀여운 아기까지 데려온 사랑스러운 선생님일 뿐이다. 생각해보니 공부를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화가 난 건 부모들이었다. 아이들은 수업이 없어 오히려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학교 수업을 제대로 못 받고 우왕좌왕 한 것도 모자라 선생님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마저 심어줬다면 우리 아이들은 정말 학교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싸움은 싸움이고 도리는 도리란 건가. 참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나는 볼 때마다 미운 생각이 먼저 들어 선 듯 다가가고 싶지는 않았다. 씁쓰름하지만 별 수 있나, 나도 그 틈에 끼어 웃어주는 수밖에. 이 번에 또 독일 엄마들에게 제대로 한 수 배웠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도 방법이 없었다. 병가는 법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선생님은 매일 결근을 일삼았고 대리 선생님이 있기는 했지만 정해진 기간 동안 병가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갑자기 연락한다거나 학교에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는 바람에 대리선생님 조차 변변히 조달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제대로 수업을 받지 못해 자율학습을 하거나, 이 반 저 반 돌아다니며 동냥 수업을 해야 했다. 마침내 부모들의 인내력은 한계에 달했고, 선생님을 바꾸어 주던지 제명해 줄 것을 학교 측에 강력히 요청했다. 엄마들은 ‘우리도 모두 임산부였다. 임신 중 몸 상태가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결근을 하려면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던지 학교 측에서 선생님을 교체해 달라’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선생님의 결근 사유는 몸이 아파서만은 아니었다. 만일 감기에 걸린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출근을 했다가도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나는 임산부 보호법에 의거해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내 주변에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수업을 거부한다.’였다. 임신한 교사가 전염병에 걸린 학생이 있는 교실에서의 수업을 거부할 법적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임산부가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은 아니다. 수 십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급에 감기에 걸린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10달 동안 수업할 수 있는 날은 며칠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래도 학교에 나온다. 아무리 항의를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난 부모들이 교육청을 찾는 일까지 있었지만 교육청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들도 어떻게 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임신 전에도 결석이 잦았고 툭 하면 결강을 하는 등, 처음부터 불성실한 교사였기에 엄마들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본인을 직접 만나 협박을 하기도 하고, 교장이 직접 나서 설득 해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보란 듯이 더 임산부의 권리를 외치며 당당히 돌아가곤 했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놀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8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결국 출산 한 달 전부터 아예 병가를 쓰고 공식적으로 결석계를 제출함으로써 이 일은 마무리 되었고 아이들은 새로운 선생님을 맞이했다. 엄마들과 함께 쫓아다니면서 나도 너무 화가 났고, 그 뻔뻔스러운 당당함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내 아이의 선생님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인간적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병가를 내고 끝낸다는 말을 듣고 다시는 보지 않게 되기를 빌며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런데 독일 엄마들은 달랐다.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니 선물을 한다고 돈을 걷더니, 그 다음엔 또 아기를 낳았으니 작은 정성이라도 보내자고 통보해왔다. 아이들에게도 일부러 시간까지 내어 선생님에게 선물할 종이를 접고 그림을 그리고 카드를 만들게 했다. 선생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기를 데리고 신고식을 하러 학교를 찾은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얼굴만 봐도 겸연쩍은데,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이성적인 이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그리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나 본인 면전에서 할 소리 못할 소리 상처받는 소리까지 다 해대더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축하한다고 끌어안고 입 맞추고 호들갑을 떠는 모양새라니. 어른들의 행동이 이중적이라고 놀라기는 했지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천만 다행이다. 아이들은 아무도 선생님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학교를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선생님은 아직도 우리 선생님이고 이제 귀여운 아기까지 데려온 사랑스러운 선생님일 뿐이다. 생각해보니 공부를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화가 난 건 부모들이었다. 아이들은 수업이 없어 오히려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학교 수업을 제대로 못 받고 우왕좌왕 한 것도 모자라 선생님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마저 심어줬다면 우리 아이들은 정말 학교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싸움은 싸움이고 도리는 도리란 건가. 참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나는 볼 때마다 미운 생각이 먼저 들어 선 듯 다가가고 싶지는 않았다. 씁쓰름하지만 별 수 있나, 나도 그 틈에 끼어 웃어주는 수밖에. 이 번에 또 독일 엄마들에게 제대로 한 수 배웠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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