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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블로그] 왜 시험을 보게 만드냐고…

등록 2008-11-18 13:50

우울한 얘기들로 도배된 신문과 방송들, 주가와 환율은 하루를 못 참고 널뛰기를 하고, 주위에선 온통 경기가 안 좋다 취업하기 힘들다 등등의 한숨 섞인 이야기만 내뱉던 11월의 주말, 모처럼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취뽀’(취업 뽀개기, 취업에 성공한다는 뜻)를 위해 심기일전하던 ㄱ이 드디어 해냈다는 이야기였다. 간절히 원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만족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다.

그리고 어제 점심, ㄴ을 만나 차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중 어이없는 얘기를 들었다.

“ㄱ말야. 취업되고 바로 연수받으러 나가서 수업에 못 들어간다고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는데 ‘학생은 학교보다 회사가 중요한가보네?’라면서 못 봐준다고들 하셨대. 근데 웃긴 건 (둘은 대부분의 수업을 같이 듣는다) 직후에 갑자기 교수님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출석 체크를 하시는 거야. ‘출석 점수에 반영한다’고 하면서 말야.”

취업을 빌미로 학생의 본분을 다 하지 못하는 제자의 잘못의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땅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일종의 ‘힘겨루기’처럼, 학생을 깔보고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과시하려는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내 생각엔 분명 봐 줄거야, 근데 ‘어디 한 번 당해봐라’하는 심복같아” ㄴ은 이렇게 덧붙였다. 감정이 격해졌다. “아니 지금처럼 경제도 안 좋은데 취업한 게 어디야. 교수님들이 일자리를 알아봐주는 것도 아니고, 정말 무책임하다.” 화제는 자연스레 과 생활 전반의 문제점으로 옮겨 갔다.


몇 달 전쯤 학보사에서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가운데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 시험에 응시할 생각이 있습니까?’하는 문항이 있었다. 전공자별로 물어본 결과 우리 과는(생명과학계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예’를 택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나는 ‘풋-’하고 웃어버렸다. 말이 50~60%이 실제로는 최소 80%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과 동기들을 만나면 마치 안부를 묻듯 “공부는 잘 되가?”라고 묻는다. “나 이번 주에 시험이야”라는 말처럼 “나 MEET(혹은 DEET) 볼 거야”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뿐이다. 심지어 ㄴ은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90%도 가뿐히 넘을 것 같아.”

이공계 기피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흔히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을 꼽는다. 그러나 4년이란 시간동안-비록 마음은 아주 멀리 떠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를 다녔다 할 지라도-과학을 공부한 학생으로서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우리에게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공계를 택한 이들은 자연과학에 대한 나름의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말 ‘나라를 빛내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4년 동안 대학에서 목격한 것은 권위적인 교수들,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이 경직되고 획일적인 강의 분위기, 열악한 실험 환경 등등 이었다. 모든 이공계 대학, 과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교수님들이, 모든 수업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경험한 것은 그랬다.

전공 필수인 실험은 도구가 부족해 10명 가까이 한 조가 되서 하거나 몇 십 명이 앞에서 조교의 시연을 구경한 때도 많았고 약 200명 되는 인원이 멍하니 대형스크린을 바라보며 교과서를 달달 읊으시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때도 있었다. 간혹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의무’니까 강의실에 들어선 듯한 교수님들도 많았다.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쏟아 부은 그들의 연구와 진리탐구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웠다. 학부제라는 시스템의 문제, 연구 성과만을 강조하는 대학과 정부당국 그리고 사회를 탓할 수도 있지만 이에 앞서 과학에 대한 자신들의 사랑과 열정을 보여주지 못한 스승들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감히 말하고 싶다.

교육부 감사로 인해 재정 지원이 끊길 수도 있다며 이미 마음 떠난 학생들에게 실험하라고 재촉하지 말고, 요즘 애들은 대학원에 안 오니까 차라리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전환할 고민하지 말고 당신들의 열정을, 꿈을 보여 달라.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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