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정말 싫다면 적당히 해, 전 과목 모두 잘할 필요는 없잖아.”
학년이 올라갈수록 확연히 적성이 드러나면서, 수학과 과학은 더 좋아하는 반면 사회과목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이를 보다 못해 한마디 해주었다. 심각하게 생각해 본 것은 아니지만, 독일 부모들의 여유를 흉내라도 내 보고 싶은 마음에 ‘툭’ 내던진 말이었다. 처음으로 엄마 입에서 공부를 대충 하라는 말을 들은 우리 아들의 눈이 갑자기 반짝 빛나더니, 바로 되묻는다.
“정말!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독일 아이들은 그런다며.” “응, 독일 애들은 하기 싫은 공부는 전혀 안 해. 내 친구도 영어는 1점만 받으면서 수학은 항상 4점 아니면 5점이야.” “그럼 게네 부모들은 가만히 있는데?” “당연히 혼나지. 그래도 자기가 싫으면 안한대.” “그래? 그럼 너도 그렇게 해봐. 네가 정말 싫으면 수업시간에는 성실히 하되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서 억지로 하지는 마.”
이런 대화가 오간지 정확히 한 달 후에 우리 아들이 철학을 5점 받았다고 들고 와서는 당당하게 내밀었다. 옛날 우리식 수,우,미,양,가로 따지자면 ‘가’를 받았다는 소린데, 잠시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 같았지만, 이미 한 말이 있으니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뒷목덜미를 치며 한 동안 머리를 식혀야만 했다.
‘아무리 싫어하던 과목이라도 그렇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5점이 뭐야! 저걸 확! 했던 말 취소 해 말아!’ 잠시 말문이 막혀 속으로만 웅얼거리며 화를 삼켰다. 그래도 모처럼 아들에게 ‘쿨’하게 보였을 엄마의 멋진 모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조금 더 인내의 끈을 조이며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입을 열었다. “야! 그래도 그렇지, 5점은 너무 한 거 아니니? 최소한 4점은 받아야지. 철학이 그렇게 싫었어?”
“엄마, 지금 너무 놀라지마. 좀 더 기다리면 몇 개 더 있을지도 몰라.”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뭐! 뭐야? 너 지금 장난 하는 거야? 공부가 장난인 줄 알아~?” 조이고 또 조이던 끈이 마침내 ‘툭’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장난이 아니야, 철학, 정치, 사회…… 난 이런 건 죽기보다 싫어.”
“죽기보다 싫어? 그러니까 먹고 자는 것만 밝히지 말고 생각 좀 하고 살아, 생각! 그렇게 늘 배가 부르니 어떻게 철학을 잘하겠니? 배부른 돼지 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라는 말도 몰라?”
“엄마, 난 배부른 돼지가 더 좋아. 배고프면 생각이 더 안나.” 처음엔 싸우다가 웃음이 터져 나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지도 못했다. 심각한 상황에 웃긴 이야기를 해서 주제를 흐려 놓는 것이 이 녀석의 술수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매번 말려들고 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아무리 느슨한 독일학교라지만 10학년이 되니 점점 해야 할 공부는 많아지고 세미나다, 실습 보고서다 허구한 날 컴퓨터를 끌어않고 살아야 하는 마당에 죽기보다 싫다는데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고 우리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좋아! 사회과목이 그렇게 싫다면 수업시간만이라도 성실히 듣고, 숙제 정도는 성의껏 한다고 약속하자. 그럼 5점은 면할 수 있겠지. 안 그래?”
“응, 앞으로 5점까지는 받지 않도록 노력할게.” 이렇게나마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공부라면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는 내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허무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두렵기도 했고, ‘만능박사 만들자는 것도 아닌데 지금 내가 아이에게 뭘 원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면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큰 선심 쓰듯 싫으면 대충하라고 여유를 부렸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독일아이들과 같은 여유를 허락한 것은 결코 아니다. 중요 과목들은 아이가 포기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못하도록 은근히 강요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들은 경중을 막론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차이가 현격하게 드러난다. 우리처럼 우등생이라면 전 과목 모두 우수한 것이 아니라, 싫어하면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가하면 좋아하는 과목은 항상 최고점을 기록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렇게 저학년 때부터 뚜렷하게 적성이 드러나게 된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이들의 입시제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독일교육의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아비투어(수능시험)시스템이다. ‘내게 만일 수학이 없었다면 아마 인생이 조금은 변해있지 않았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아쉬움이다. 학교 때 왜 그렇게 수학이 싫었던지, 싫어하다 보니 당연히 점수도 잘 나올 리 없었고, 그 놈의 수학은 입시를 준비하는 내내 발목을 잡아끄는 족쇄였다. 그런데 살다보니 ‘왜 내가 그토록 어려운 수학을 끝까지 해야만 했는지.’ 생각할수록 억울하다. 대학도 문과에 입학해서 더 이상 계산할 일은 없었고, 직장생활 역시 글만 잘 쓰면 먹고 살 수 있었고, 또 결혼해서 살림하다보니 더하기, 빼기에 조금 더 나아가 곱하기, 나누기 정도밖에 써먹지 못했는데, ‘왜 그 것 때문에 끝까지 스트레스를 안고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중의 하나다. 독일 입시는 중요과목일지라도 필기시험에서 제외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량으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우리보다 넓고 다양하다. 12학년부터 13학년, 2년 동안의 내신 성적이 입시에 반영되기는 하지만 그 것도 9과목뿐이고 선택 폭도 넓다. 물론 수학과 영어, 독일어 정도는 반드시 내신과목에 포함되어야 하지만 점수 비중이 가장 높은 필기시험은 언어영역과 자연과학, 사회분야를 포함해서 4과목만 선택하면 된다. 그러니 만일 수학을 못하는 사람은 수학대신 물리, 화학, 생물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고, 언어영역에서도 독일어와 영어 불어 등 제 2외국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 중에 한 가지만 하면 된다. 아비투어에 내신이 반영되기는 하지만 사실상 필기시험으로 선택한 4과목만 열심히 하면 대학가는 데는 거의 문제가 없다. 이 기준은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지역에 적용되고 있다. 독일의 모든 지자체가 각기 다른 입시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개개인의 선택권을 다양하게 인정한다는 점은 거의 비슷하다. 아비투어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좋아하는 분야에 집중 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다 보니 중고등학교에서 이미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학문의 우열을 나누지 않는, 열려 있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싫어하는 과목이라고 게을리 했다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한국식 만능박사 만들기 입시! 이제 연구 좀 해봐야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싫어하던 과목이라도 그렇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5점이 뭐야! 저걸 확! 했던 말 취소 해 말아!’ 잠시 말문이 막혀 속으로만 웅얼거리며 화를 삼켰다. 그래도 모처럼 아들에게 ‘쿨’하게 보였을 엄마의 멋진 모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조금 더 인내의 끈을 조이며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입을 열었다. “야! 그래도 그렇지, 5점은 너무 한 거 아니니? 최소한 4점은 받아야지. 철학이 그렇게 싫었어?”
“엄마, 지금 너무 놀라지마. 좀 더 기다리면 몇 개 더 있을지도 몰라.”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뭐! 뭐야? 너 지금 장난 하는 거야? 공부가 장난인 줄 알아~?” 조이고 또 조이던 끈이 마침내 ‘툭’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장난이 아니야, 철학, 정치, 사회…… 난 이런 건 죽기보다 싫어.”
“죽기보다 싫어? 그러니까 먹고 자는 것만 밝히지 말고 생각 좀 하고 살아, 생각! 그렇게 늘 배가 부르니 어떻게 철학을 잘하겠니? 배부른 돼지 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라는 말도 몰라?”
“엄마, 난 배부른 돼지가 더 좋아. 배고프면 생각이 더 안나.” 처음엔 싸우다가 웃음이 터져 나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지도 못했다. 심각한 상황에 웃긴 이야기를 해서 주제를 흐려 놓는 것이 이 녀석의 술수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매번 말려들고 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아무리 느슨한 독일학교라지만 10학년이 되니 점점 해야 할 공부는 많아지고 세미나다, 실습 보고서다 허구한 날 컴퓨터를 끌어않고 살아야 하는 마당에 죽기보다 싫다는데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고 우리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좋아! 사회과목이 그렇게 싫다면 수업시간만이라도 성실히 듣고, 숙제 정도는 성의껏 한다고 약속하자. 그럼 5점은 면할 수 있겠지. 안 그래?”
“응, 앞으로 5점까지는 받지 않도록 노력할게.” 이렇게나마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공부라면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는 내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허무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두렵기도 했고, ‘만능박사 만들자는 것도 아닌데 지금 내가 아이에게 뭘 원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면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큰 선심 쓰듯 싫으면 대충하라고 여유를 부렸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독일아이들과 같은 여유를 허락한 것은 결코 아니다. 중요 과목들은 아이가 포기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못하도록 은근히 강요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들은 경중을 막론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차이가 현격하게 드러난다. 우리처럼 우등생이라면 전 과목 모두 우수한 것이 아니라, 싫어하면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가하면 좋아하는 과목은 항상 최고점을 기록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렇게 저학년 때부터 뚜렷하게 적성이 드러나게 된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이들의 입시제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독일교육의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아비투어(수능시험)시스템이다. ‘내게 만일 수학이 없었다면 아마 인생이 조금은 변해있지 않았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아쉬움이다. 학교 때 왜 그렇게 수학이 싫었던지, 싫어하다 보니 당연히 점수도 잘 나올 리 없었고, 그 놈의 수학은 입시를 준비하는 내내 발목을 잡아끄는 족쇄였다. 그런데 살다보니 ‘왜 내가 그토록 어려운 수학을 끝까지 해야만 했는지.’ 생각할수록 억울하다. 대학도 문과에 입학해서 더 이상 계산할 일은 없었고, 직장생활 역시 글만 잘 쓰면 먹고 살 수 있었고, 또 결혼해서 살림하다보니 더하기, 빼기에 조금 더 나아가 곱하기, 나누기 정도밖에 써먹지 못했는데, ‘왜 그 것 때문에 끝까지 스트레스를 안고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중의 하나다. 독일 입시는 중요과목일지라도 필기시험에서 제외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량으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우리보다 넓고 다양하다. 12학년부터 13학년, 2년 동안의 내신 성적이 입시에 반영되기는 하지만 그 것도 9과목뿐이고 선택 폭도 넓다. 물론 수학과 영어, 독일어 정도는 반드시 내신과목에 포함되어야 하지만 점수 비중이 가장 높은 필기시험은 언어영역과 자연과학, 사회분야를 포함해서 4과목만 선택하면 된다. 그러니 만일 수학을 못하는 사람은 수학대신 물리, 화학, 생물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고, 언어영역에서도 독일어와 영어 불어 등 제 2외국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 중에 한 가지만 하면 된다. 아비투어에 내신이 반영되기는 하지만 사실상 필기시험으로 선택한 4과목만 열심히 하면 대학가는 데는 거의 문제가 없다. 이 기준은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지역에 적용되고 있다. 독일의 모든 지자체가 각기 다른 입시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개개인의 선택권을 다양하게 인정한다는 점은 거의 비슷하다. 아비투어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좋아하는 분야에 집중 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다 보니 중고등학교에서 이미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학문의 우열을 나누지 않는, 열려 있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싫어하는 과목이라고 게을리 했다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한국식 만능박사 만들기 입시! 이제 연구 좀 해봐야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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