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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구로 아이들의 ‘아주 특별한 놀이터’

등록 2009-01-18 21:55

2009 겨울 우둥불공연예술놀이터에 참가한 대만 난터우시 자허초등학교 실팽이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제공
2009 겨울 우둥불공연예술놀이터에 참가한 대만 난터우시 자허초등학교 실팽이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제공
4회 맞은 우둥불공연예술놀이터
장다리·탈놀이·인형극·저글링 등
국내외 전통놀이들 배우고 즐겨
“야, 성공했다!”. “에이~ 다시 하자, 시~이작!” 여느 때 같으면 학생들의 발길이 뚝 끊겨 한산하고 적막하기만 했을 교정 곳곳에 아이들의 자잘한 탄식과 경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14일, 서울 구로에 있는 성공회대학교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겨울 우둥불공연예술놀이터’의 열기는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높바람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뜨거웠다.

올해로 네번째 열린 ‘2009 겨울 우둥불공연예술놀이터’(1.12~1.16)는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소장 백원담)와 나무닭움직임연구소(소장 장소익)가 ‘문화를 통한 지역공동체의 소통’이라는 문제의식 끝에 만들어낸 지역 아이들의 공연예술 놀이터다. ‘우둥불’이란 순 우리말로 모닥불을 가리킨다.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이 한겨울 시린 만주벌판에서 나라의 독립과 장래를 토론할 때 피웠던 그 모닥불을 뜻한다고 한다. 백원담 소장은 개막식에서 “우둥불은 토론하고,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는 자리”라며 “나무는 더불어 숲이 되었을 때 가장 아름답듯이 여러분 모두 우둥불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우둥불공연예술놀이터는 장다리, 탈놀이, 버나돌리기, 공동체인형극, 춤, 포이돌리기(저글링) 등 모둠별 놀이터로 나뉘어 있다. 장다리와 탈놀이, 버나 등은 옛날 남사당패가 하던 여러 놀이고, 포이(poi)돌리기는 뉴질랜드 원주민들의 사냥에서 유래된 전통놀이다. 우리의 전통놀이를 중심으로 다른 나라의 전통놀이가 함께 어우러진 모양새인데 이 놀이들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기획·진행을 맡은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임은혜(37)씨는 “아이들이 하기 가장 쉬운 것을 우선으로 정했지만 그 안에는 다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장다리는 긴 나무다리를 타고 키다리가 되어 움직임을 익히는 놀이인데, 장다리를 타면 세상이 달라 보인단다. 낮은 곳에서 주눅 든 채 살아가던 아이들이 높은 곳에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는 경험은 새로운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마을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된다. 또 버나돌리기도 접시 모양의 원반을 돌리는 놀이인데, 버나는 우주를 상징해 이를 돌리면서 우주와 나를 하나로 만든다는 뜻이 담겼다. 참여한 아이들은 5일 동안 놀이터별로 모둠을 지어 놀이를 익히고 또 가르친다. 선생님이 일방통행으로 기능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첫 회 때 배운 아이들이 다음 회에는 모둠장이 되어 새로 들어온 아이들을 가르친다. 선생님은 보조 진행자여서 모둠장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도울 뿐이다. 참가자가 해마다 바뀌고 일회성으로 끝나는 여느 캠프와는 확실히 다른 우둥불만의 모습이다.

이번 우둥불은 ‘구로를 넘어 아시아로’라는 주제를 잡았다. 아주 특별한 친구들도 우둥불놀이터를 찾았다. 대만 난터우(남투)시의 ‘자허(가화)초등학교 실팽이팀’이 방문해 한국 아이들에게 대만의 전통놀이인 ‘실팽이’를 직접 전수한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 구성된 실팽이팀은 닷새 동안 여느 한국 아이들과 똑같이 실팽이 기술을 가르치고 한국 아이들에게 포이돌리기와 버나돌리기를 배웠다. 지도교사로 참가한 장후이옌(장혜연·41) 교사는 “우리 아이들은 한달에 두세 차례 공연을 다닐 정도로 공연 경험이 많다”며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의 해외 공연이 단순한 기예 공연이었던 데 비해 이번 한국의 우둥불은 취지와 진행에서 차별성이 있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둥불공연예술놀이터가 여기까지 온 데는 백원담 소장과 장소익 소장의 의지가 큰 몫을 했다. 이들은 ‘문화’와 ‘지역’이라는 가치에 주목했다. 혁명이나 민중 같은 달뜬 구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공허한 아이들의 눈빛, 경쟁이라는 가치 앞에서 슬프게 무너져 버린 교육공동체의 꿈, 문화도 돈으로 소비해야 하는 현실을 새로운 대안공동체를 통해 극복해 보자는 것이었다. 특히 성공회대가 있는 구로라는 지역은 산업화의 일번지로 우리 현대사의 축도와도 같은 곳인데도, 지금은 서울의 낙후한 지역으로만 각인돼 있다.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지역을 부끄럽게 여기는 현실에서 어떻게 지역공동체를 말할 수 있는가’, ‘구로지역의 아이들이 자신의 삶터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생산문화의 거점을 만들어 보자’는 뜻으로 우둥불은 시작됐다. 첫 회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이런 우둥불이 있는 구로가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했을 때 이들의 바람은 현실로 변해갔다. 문화연구와 지역연구를 결합해 지역문화운동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이를 다시 전국에 퍼뜨리려 한 동아시아연구소의 목표는 공부방 교사들, 학부모들, 지역문화운동가들과 함께 점점 완성돼 가고 있다. 2년쯤 뒤엔 첫 회부터 참여한 아이들이 모두 모여 장다리와 포이와 버나와 탈을 쓰고 구로 일대를 행진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선옥/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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