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학년인 큰 아이는 최근 11학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었다. 독일학교에서 11학년은 13학년까지를 다녀야하는 김나지움 학생들에게 안식년과 같은 기간이다. 가장 학습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학년이고 본격적으로 아비투어(수능시험) 공부에 돌입하기 전에 전열을 재정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학교 공부도 수학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않으면서 복습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다양한 수업을 실험적으로 들어보면서 12학년부터 반영되는 내신 9과목을 선별하는 작업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구태의연한 학교 수업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 성적이 아주 우수한 아이들에게는 학교의 추천으로 대학에서 1년 동안 미리 공부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고, 평균 점수가 3점 이상이 되는 아이들은 단기 외국유학을 갈 수도 있다.
10학년 전체 성적이 평점 3점이 되면 다른 학년에서는 2점 이상을 받아야 가능했던 월반을 쉽게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많은 학생들의 희망은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단기유학이다. 우리 아들에게도 역시 단기유학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던 모양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엄마! 어떻게 할까?”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가고 싶기는 한데......”
“그럼 빨리 장학금이나 알아봐.”
“그럼 탁구는 어쩌지?”
“탁구? 그럼 끝나는 거지 뭐! 안 그래도 늦게 시작했는데 1년 동안 쉬면 이제 거의 불가능 한 거 아냐?”
“불가능? 그럼 안 되지,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섭섭하긴, 가능성도 안 보이는 데 정리하고 훌쩍 갔다 오던지.”
“엄마! 솔직히 말해봐. 내가 가길 원하는 거야, 안가길 원하는 거야!”
“글쎄~ 뭐, 나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1년이나 부모를 떠나 있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것 같아 은근히 탁구를 들먹이며 아이의 포기를 기다렸다. 사실 탁구는 기대 해 본 적도 없지만, 이 녀석은 아직도 분데스리가의 꿈을 접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부 이야기만 나오면 탁구를 앞세워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요즘 중요한 전술이 되었다. 엄마의 적극적인 동조를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인지, 지속적으로 탁구연습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을 떨치지 못해선지, 얼마 전 아이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더니 내가 바라던 대로 유학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 아이 걱정에 은근히 반대하기는 했지만 영국이나 미국으로 간다면 영어 실력을 확실하게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도 귀가 번쩍 뜨인 것은 사실이다. 학교에 자세히 알아보니, 성적만 좋으면 장학금을 받는데 거의 문제없고, 본인 부담은 용돈 정도면 충분하다는데 그야말로 1년 동안 공짜로 어학연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기는 했다.
얼마 전 이 일로 학부모 간담회가 있었다. 역시나 관심 있는 많은 부모와 아이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현지학교에서 1년 동안 영어를 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을까? 나도 무척 궁금해서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하지만 간담회는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지루하고 긴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자 아이들과 학부모의 질문이 이어지고, 이미 다녀온 고학년 학생들의 체험담이 계속됐지만 도대체 내가 생각하는 영어공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또 그 곳에 가서 학교 진도를 어떻게 따라갔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떤 학생이 유일하게 수업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지루한 문답이 이어지면서 점점 몸이 뒤틀리던 차에 눈이 번쩍 뜨이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런데 다녀와서 학교 공부는 어땠어요?
다시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어요?”
“그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따라갈 수 있어요.”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킥킥…….’ 갑자기 왜 이 대목에서 난데없이 ‘전혜린’이란 작가가 생각난 것인지. 생기가 돌던 간담회장 분위기가 썰렁 해지면서 질문도 대답도 달랑 이 한마디로 끝이 났다. 거기 온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관심사는 공부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다양한 세상경험,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물론 관심 있는 국가도 미국이나 영국이 전부가 아니라 일본과 남미, 아프리카, 심지어는 북한까지, 아주 다양했다. 칠레를 다녀온 어떤 아이는 ‘세상에 우리가 도와야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었다’며 자신이 그동안 너무나 안락한 울타리에서 편하게 살았던 것이 부끄러웠다고 제법 진지함을 드러냈다. 또 다른 아이는 북한을 지원했다가 자리조차 받지 못해 낙담하고 마지막에 행선지를 남미로 바꾸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큰아이 반에 평소에도 사회활동에 관심 많은 착하고 예쁜 여학생이 있다. 파라과이로 행선지를 결정한 그녀는 신청서에 가장 가난한 집에서 살길 원한다고 적어 넣었다. 그러나 그런 집에서 외국에서 오는 교환학생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이 여학생은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대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상류층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아이가 열둘이나 된다는 가난한 사람들과 1년 동안 함께 살며 그들의 생활을 몸소 경험해 보고 싶어서 이 나라를 지원했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지난 주말에 그 여학생이 파라과이로 떠났다. 우리 아들 말이 그녀가 없는 교실은 무언지 모르지만 휑하고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단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한 어깨 하는 덩치 큰 남학생들도 교실 안에서는 그 여학생 때문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면서도 화를 내며 따지고 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금발을 휘날리며 빨려들 것 같은 깊은 눈망울로 뚫어지듯 바라보며 앵두 같은 입술을 달싹이며 시비를 가리고 나서면 아무도 맞서서 대적할 수 없대나? 여하튼 우리 아들 해석이 더 걸작이기는 해도 존재감만으로도 세상을 밝힐 수 있는 그런 소녀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나가 본 울타리 밖에서 자기보다 덩치 큰 짐을 지고 돌아온 아이들을 보며, ‘그래서 세계가 끈끈한 연대의 그물망으로 연결될 수 있겠구나!’ 새삼 믿음이 생겨났다. 지원하는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그 뜻을 존중하고 허락하는 부모도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젖어 있던 문화, ‘생존경쟁’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의 소인배적 습관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독일에 살면서 문득문득 느끼는 문화적 쇼크는 소비 선진국임을 과시라도 하듯 잘 진열된 중심가 쇼윈도에서도 아니고, 비싸다는 명품들이 평범한 백화점 상가에서 한국보다 세배나 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 때문도 아니었다. 내가 사는 이 작은 도시의 상가라 해봐야 한국 시골동네 정도의 수준이고, 명품이라면 한국에서도 마음이 허한 사람들의 몸에 치렁치렁 걸려 있는 것들을 여기서 보다 더 많이 보았었다.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이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의식이다.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듯하면서도 사람의 도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진지함과 타인에게 피해주는 행위를 가장 질타하는 그들의 모럴, 선진국다운 열려 있는 종교관,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들이다. 독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평범한 독일인이 먹고 입고 사는 모습은 우리보다 결코 넉넉하지 않다. 아니 비슷한 수준의 한국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들의 의식은 내가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은 거리에 우뚝 서 있다는 것을 아주 작은 일에서도 느끼곤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가고 싶기는 한데......”
“그럼 빨리 장학금이나 알아봐.”
“그럼 탁구는 어쩌지?”
“탁구? 그럼 끝나는 거지 뭐! 안 그래도 늦게 시작했는데 1년 동안 쉬면 이제 거의 불가능 한 거 아냐?”
“불가능? 그럼 안 되지,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섭섭하긴, 가능성도 안 보이는 데 정리하고 훌쩍 갔다 오던지.”
“엄마! 솔직히 말해봐. 내가 가길 원하는 거야, 안가길 원하는 거야!”
“글쎄~ 뭐, 나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1년이나 부모를 떠나 있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것 같아 은근히 탁구를 들먹이며 아이의 포기를 기다렸다. 사실 탁구는 기대 해 본 적도 없지만, 이 녀석은 아직도 분데스리가의 꿈을 접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부 이야기만 나오면 탁구를 앞세워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요즘 중요한 전술이 되었다. 엄마의 적극적인 동조를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인지, 지속적으로 탁구연습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을 떨치지 못해선지, 얼마 전 아이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더니 내가 바라던 대로 유학을 포기하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 아이 걱정에 은근히 반대하기는 했지만 영국이나 미국으로 간다면 영어 실력을 확실하게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도 귀가 번쩍 뜨인 것은 사실이다. 학교에 자세히 알아보니, 성적만 좋으면 장학금을 받는데 거의 문제없고, 본인 부담은 용돈 정도면 충분하다는데 그야말로 1년 동안 공짜로 어학연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기는 했다.
얼마 전 이 일로 학부모 간담회가 있었다. 역시나 관심 있는 많은 부모와 아이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현지학교에서 1년 동안 영어를 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을까? 나도 무척 궁금해서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하지만 간담회는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지루하고 긴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자 아이들과 학부모의 질문이 이어지고, 이미 다녀온 고학년 학생들의 체험담이 계속됐지만 도대체 내가 생각하는 영어공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또 그 곳에 가서 학교 진도를 어떻게 따라갔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떤 학생이 유일하게 수업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지루한 문답이 이어지면서 점점 몸이 뒤틀리던 차에 눈이 번쩍 뜨이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런데 다녀와서 학교 공부는 어땠어요?
다시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어요?”
“그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따라갈 수 있어요.”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킥킥…….’ 갑자기 왜 이 대목에서 난데없이 ‘전혜린’이란 작가가 생각난 것인지. 생기가 돌던 간담회장 분위기가 썰렁 해지면서 질문도 대답도 달랑 이 한마디로 끝이 났다. 거기 온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관심사는 공부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다양한 세상경험,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물론 관심 있는 국가도 미국이나 영국이 전부가 아니라 일본과 남미, 아프리카, 심지어는 북한까지, 아주 다양했다. 칠레를 다녀온 어떤 아이는 ‘세상에 우리가 도와야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었다’며 자신이 그동안 너무나 안락한 울타리에서 편하게 살았던 것이 부끄러웠다고 제법 진지함을 드러냈다. 또 다른 아이는 북한을 지원했다가 자리조차 받지 못해 낙담하고 마지막에 행선지를 남미로 바꾸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큰아이 반에 평소에도 사회활동에 관심 많은 착하고 예쁜 여학생이 있다. 파라과이로 행선지를 결정한 그녀는 신청서에 가장 가난한 집에서 살길 원한다고 적어 넣었다. 그러나 그런 집에서 외국에서 오는 교환학생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이 여학생은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대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상류층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아이가 열둘이나 된다는 가난한 사람들과 1년 동안 함께 살며 그들의 생활을 몸소 경험해 보고 싶어서 이 나라를 지원했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지난 주말에 그 여학생이 파라과이로 떠났다. 우리 아들 말이 그녀가 없는 교실은 무언지 모르지만 휑하고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단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한 어깨 하는 덩치 큰 남학생들도 교실 안에서는 그 여학생 때문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면서도 화를 내며 따지고 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금발을 휘날리며 빨려들 것 같은 깊은 눈망울로 뚫어지듯 바라보며 앵두 같은 입술을 달싹이며 시비를 가리고 나서면 아무도 맞서서 대적할 수 없대나? 여하튼 우리 아들 해석이 더 걸작이기는 해도 존재감만으로도 세상을 밝힐 수 있는 그런 소녀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나가 본 울타리 밖에서 자기보다 덩치 큰 짐을 지고 돌아온 아이들을 보며, ‘그래서 세계가 끈끈한 연대의 그물망으로 연결될 수 있겠구나!’ 새삼 믿음이 생겨났다. 지원하는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그 뜻을 존중하고 허락하는 부모도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젖어 있던 문화, ‘생존경쟁’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의 소인배적 습관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독일에 살면서 문득문득 느끼는 문화적 쇼크는 소비 선진국임을 과시라도 하듯 잘 진열된 중심가 쇼윈도에서도 아니고, 비싸다는 명품들이 평범한 백화점 상가에서 한국보다 세배나 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 때문도 아니었다. 내가 사는 이 작은 도시의 상가라 해봐야 한국 시골동네 정도의 수준이고, 명품이라면 한국에서도 마음이 허한 사람들의 몸에 치렁치렁 걸려 있는 것들을 여기서 보다 더 많이 보았었다.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이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의식이다.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듯하면서도 사람의 도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진지함과 타인에게 피해주는 행위를 가장 질타하는 그들의 모럴, 선진국다운 열려 있는 종교관,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들이다. 독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평범한 독일인이 먹고 입고 사는 모습은 우리보다 결코 넉넉하지 않다. 아니 비슷한 수준의 한국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들의 의식은 내가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은 거리에 우뚝 서 있다는 것을 아주 작은 일에서도 느끼곤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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