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제고사다. 시작할 때부터 문제투성이였고, 여전히 문제투성이다. 그뿐이가? 적지 않은 양심들을 ‘일제’라는 전체주의적 권력으로 짓밟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반성은커녕, 다음달에도 그 ‘일제’라는 군화발로 얼마나 많은 양심들을 또 짓밟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헌법에도 보장된 양심을 일개 시행령으로 짓밟아도 별로 문제가 안 되는 아주 우스운 사회가 바로 지금의 한국사회다.
나는 국가차원의 표준화검사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유럽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미국과 일본에서도 표준검사를 치른다. 국민의 세금을 모은 큰돈을 들여 교육이라는 인풋(in-put)을 넣었으니, 그 아웃풋(out-put)을 점검하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교육 정책을 개선할 수 있다. 지역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 어떤 학교 시스템이나 교수법이 더 효율적이면서도 학생들에게 유익할지 데이타를 뽑을 수도 있다. 일선 교사들은 다른 학교와의 비교를 통해 학습방법을 개발할 수도 있다. 표준실력에 미달하는 학생들이 많다면, 그 이유를 서로 알아보고, 또한 해결을 위해 해당 지역에 교육 예산을 더 편성하기도 한다. 요컨대, 말 그대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현실 점검의 의미로 표준화검사를 실시한다. 당근, 학생 입장에서 그 시험을 보고 안 보고는 완전 자유다.
그런데 한국의 일제고사는 그 용어부터 참 무식하다. ‘일제히’ 보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그 말속에 이미 들어있다. 그 ‘일제’에서 빠지면 문제아, 문제교사로 낙인찍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이 이미 그 말속에 숨어들어 있다. 그러니 일제고사를 실시하는 동기부터가 특이하게 불순하여, 지극히 한국적이다. 학생을 위한, 그들이 이끌어갈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 안목의 일제고사가 아니다. 그저 학생들을 성적 경쟁으로 내몰고, 그 결과로 교사들을 평가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두드러진 시험이다. 그러니, 이런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과 그를 인정하는 교사들을 그냥 둘 리 없는 거다.
그뿐인가? 그 동기부터가 이렇게 매우 음흉하다 보니, 그 결과를 활용하는 방법도 불순할 수밖에 없다. 첫 일제고사의 결과가 나온 후에 언론에 소개된 내용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첫 일제고사를 치른 후라면 각 언론들은 당연히 이 첫 일제고사의 교육적, 사회적 의의가 무엇인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꼼꼼하게 분석한 보도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당신은 그런 내용의 뉴스를 접하신 적 있으신가? 거의 전무할 것이다. 그 대신, 그저 어디가 일등이고, 어디에서 표준미달자가 가장 적고, 어디가 가장 많고. 등등 지극히 형이하학적이고도 돗대기 시장같은 저급한 수준의 기사들만 넘쳐났을 뿐이다. 이런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니다. 슬픈 자화상이다.
이런 판국이니, 일선 교사와 교장들이 어디 바보인가? 적어도 최소한의 면피는 해야겠다는 마음에 성적 조작은 당연히 예상되던 일이었다. 또한 성적 조작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손쉽고도 효과가 빠른 길이 바로 평균 깎아먹는 학생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소위 표준미달자들을 애초의 응시생 수에서 제외하거나, 그들의 성적을 일부 조작하면 된다는 얘기다. 평가의 대상이 된 교사와 교장으로서는 자기의 밥줄이 걸린 문제이니, 조작도 서슴지 않는 거다. 아마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숱한 조작 사례들이 전국에 걸쳐 있을 것은 거의 자명하다.
일제고사의 결과를 교원/교장/장학사 평가를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한 이런 현상은 끊이지 않고 계속 나타날 것이다. ‘평가의 먹이사슬’은 인왕산 아래 푸르딩딩 기와집까지 촘촘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전국적 시험이 이 땅에서 이런 식으로 차루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이런 작태를 왜 반복해서 해야 하는 걸까? 국가의 돈을 펑펑 써가면서 말이다.
이런 어이없는 일제고사를 보자니, 내가 80년대 교단에서 겪었던 일들이 오버랩 된다. 그 당시 일선 학교 내에서 벌어지던 일이 지금은 일제고사라는 이름으로 전국 차원으로 확대되었을 뿐, 그 본질은 서로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요즘에 교원평가제 때문에 시끄럽지만, 인사고과 평가는 그때에도 있었다. 내가 80년대에 서울에서 한 고딩 선생으로 근무할 때 보니, 평가 항목이 족히 50개는 넘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성적 관련 평가만 해도, 중간고사, 기말고사, 월말고사, 특색고사(월요일 한자시험), 각종 모의고사 등등이다. 학교 내부 시험은 대개 반평균으로 매기고, 모의고사 성적 산출방법은 평균은 무시하고 상위권 학생들의 분포만 따진다. (그 이유는 모의고사에서 반 평균은 사실상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상위 명문대에 갈 학생들의 분포수만이 중요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적 관련 학급 성적을 올리는 (담임의 성적 관련 인사고과를 올리는) 지름길은 교내 시험의 경우에는 하위권 학생 몇 명을 본보기로 반쯤 죽이거나, 단체 기합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학급생 전체를 몇 대씩 때리는 거다. 어차피 학급 평균으로 학급별 등수가 나오니, 평균 깎아먹는 학생 서너 명만 불러내 반쯤 죽이면 그 효과는 당장 나타난다. 어떻게? 그들은 컨닝을 해서라도 자기 성적을 올리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한 반에 보통 60명이었는데, 50등 밖에 있는 학생이라면, 한 명이 대개 반평균 1점씩 깎아먹는다고 보면 맞는다. 그러니 담임은 그들이 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저 매를 드는 거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그때 알았다.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의 매는 근본적으로 없다는 것을... 성적 때문에 학생을 매질하는 선생은 모두 자기 인사고과를 위해 그런다고 보면 99.9% 맞는다. 한 마디로, 100%라는 얘기다. 사랑의 매는 웃기는 얘기라는 거다.
나는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 근무하였는데, 여선생이 여학생 반을 무시무시하게 단체체벌 하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곤 하였다. 내가 있던 학교는 월요일에도 시험을 보았으니, 각종 시험 결과(학급별 등수)가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건 기본이고,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까지 더하면, 거기다가 매달 치르는 모의고사까지 합하면 일주일에 보통 한두 번은 나온다. 웬만한 기업체 수준이었다. 그러니 선생들 스트레스 지수도 높았다.
반평균 등수가 좀 떨어지면, 여선생이 담임인 여학생 반은 대개 초상집이 된다. 안 그러신 여선생님들도 당근 계셨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대체로 그랬다. 학급 여학생을 모두 각자 책상 위에 올라가 꿇어앉게 하고는 선생이 돌아다니면서 드럼스틱으로 허벅지를 내려치는데, 스커트를 걷어 올리게 하고 내려친다. 나는 그런 광경을 우연히 처음 보고는 무슨 여자변태인 줄 알 정도였다. (내려침의 강도와 매의 댓수가 학생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선생도 있었다. 아.)
어떤 경우는 성적 하위 열 명을 따로 불러 아주 멋드러진 훈화를 한 후에 역시 손바닥이고 종아리고 마구 때리는데, 웬만한 고문실 수준이다. 따귀를 때리는 선생들도 적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건 당시만 해도 선생이 성적을 핑계로 학생들을 때리면, 엄마들이 오히려 고마워하고 좋아했다는 거다. 그러니 그 학생들은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셈이다.
우리 모두 지난 학창시절을 조용히 되새김질 해보자. 이번 시험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1점당 한 대 맞느다느니, 이번 시험에서는 틀린 갯수대로 맞는다느니 하는 식의 얘기(협박)를 담임으로부터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게 과연 사랑의 매일까? 나는 자신한다.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
심지어 교과 선생도 성적에 따라 체벌을 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건 같은 교과 선생끼리도 늘 경쟁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어 선생은 국어 선생끼리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2학년이 15개 학급이라면, 국어 선생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네 명은 필요하다. 그런데 그 네 명 중에서 갑 선생이 들어가는 학급의 평균 점수가 을 선생이 들어가는 학급의 평균보다 전반적으로 높게 나올 수 있다. 그런 결과들이 모두 인사고과에 반영된다는 얘기다. 그러니 을 선생이 이런 상황을 순식간에 역전시키는 지름길은 무엇일까? 그렇다. 하나 있다. 바로 그거.
일제고사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건 학생들의 발전을 위한 게 아니라, 교원들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일렬로 줄 세우기 위한 윗선의 평가 자료를 만들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험이다. 이렇듯 그 동기가 불순하고 활용 방법 또한 불순하니, 이런 일제고사는 안 된다는 거다. 학교의 시스템 때문에 교사의 폭력이 없어지지 않듯이, 일제고사라는 국가 시스템 때문에 성적 조작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어느 누구에게도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안 된다. 한국 교육 공멸의 길이다.
그럼 교원 평가는 아예 하지 말자는 얘기냐라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러나 염려 마십시오. 평가가 없는 조직은 썩게 마련입니다. 다른 좋은 방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글이 길어지니, 그에 대한 답은 다음 기회에 올리겠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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