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시건으로 이사오기 전에 내 아들이 뉴욕에서 다니던 고등학교는 아카데미 오브 어메리칸 스터디즈(Academy of American Studies)라는 이름의 스몰 스쿨이었다. 미국 고등학교는 9학년부터 12학년까지의 4년 과정이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500 명이 되지 않는다. 매년 수천 명 가량이 입학원서를 접수하지만 대략 125 명의 학생을 선발한다. 이 학교는 역사와 문학 등 주로 인문학을 강조한다. 뉴욕에는 이 학교보다도 훨씬 입학하기가 어렵고 학생들의 수준이 뛰어난 학교가 여럿 있다. 미국의 교육이 평준화를 원칙으로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내용을 곰곰이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일반 공립학교에는 학교수준에는 상관없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소수의 학생을 위한 우수반이 반드시 존재한다. 뉴욕에서 입학하기가 어려운 대부분의 고등학교들은 공립학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학부모는 자녀들의 우열을 가르고 그에 따라서 교육하는 학교체제를 불평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중학교, 외국어학교나 강남 8학군의 학교들을 사회적 불공정과 불평등의 사례로 간주하고 비난을 퍼붓는 한반도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미국의 학부모가 한국의 학부모에 비해서 인격적 도량이 더 크다거나 사회적 불평등을 묵인하는 비열한 노예적 성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문화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적 욕망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 학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자녀가 질 높은 교육을 받길 원하고 우수한 학교로 진학하길 원한다.
2. 나는 미국의 학부모들이 학교체제 내에 엄연히 존재하는 우열가름을 받아들이는 이유를 교육시스템 또는 사회풍토에서 찾는다. 미국에는 패자부활전이란 게 있다.
미국의 대학체제에 누구나 쉽게 입학하는 커뮤니티 칼리지가 있다. 이런 학교를 다니면서도 좋은 성적을 받으면 명문대학으로 진학한다. 내가 아는 어느 학부모의 아들이 뉴욕의 브루클린 텍(Brooklyn Tech)을 졸업했다. 뉴욕의 명문 공립 고등학교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무척이나 공부를 게을리 했던 모양이다. 그 학부모의 말에 의하면 그는 노는 데 "은사(gift)"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뉴욕의 라가디아 커뮤니티 칼리지(La Guardia Community College)에 입학했다. 그의 부친은 뉴욕대학(New York University) 출신 박사이고, 그의 모친은 한국의 명문 의대 출신 의사로 맨하탄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의 사회적 교육적 배경 때문에 자기 아들에 대한 실망감이 컸었다. 그런데 그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비로소 학업에 충실했던 모양이다. 그는 라가디아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후에 뉴욕주립대학(SUNY)의 '하바드'라고 소문난 빙햄턴 대학(Binghamton University)에 입학했고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
내가 1988년에 뉴욕으로 이민을 와서 뉴욕의 한국일보를 읽으면서 당시에는 내 눈에 아주 희한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라가디아 커뮤니티 칼리지보다 못한 수준의 뉴욕의 어느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학생이 하바드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았다는 기사였다. 미국에서 이런 사례들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내가 필라델피아에 있는 학교를 다닐 때 입학동기 중에 명문으로 꼽히는 미시건 대학 출신의 한인 2세 여학생이 있었다. 그의 손가락에는 미시건 대학출신임을 상징하는 가락지가 끼어있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비록 미시건 대학 학부 출신이라 할지라도 그보다 못한 평가를 받는 대학의 대학원과정으로 진학하게 되면 미시건 대학의 학부과정의 색깔이 바래진다고 내게 귀띔한 적이 있다. 최종학력으로 평가하는 게 미국의 풍조이다. 미국에서도 명문학교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이 아닌가? 명문학교를 나온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고 그 학교의 교육의 품질은 탁월하다. 그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항이다. 그렇지만 영어로 표현하자면 "So what?"-"그래서 어쨌다는 거야?"-이다. 학벌이 인생을 좌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문학교의 동종교배를 원칙으로 하는 학벌 커넥션을 미국 사회에서는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 3. 미국의 교육구조가 한국의 교육구조와 구별되는 것은 이 지점이다. 미국의 학부모가 공립학교에조차 엄연히 존재하는 우열가름에 침묵하고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미국 교육시스템에 존재하는 패자부활전 때문이다. 한국의 학부모가 우열가름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자기 자녀들이 그 가름에서 살아남길 원하는 것은 한국 교육시스템에는 패자부활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입학으로 그들에게 남아있는 인생 전체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단 한 번의 게임으로 그들 장래를 판가름한다. 한국 사회의 학부모의식은 미국에 사는 한인부모에게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들도 자기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에 사력을 다한다. 미국 명문대학 입학생들 중 한국 학생들의 졸업 비율이 다른 민족과 비교해볼 때 최하위를 기록하는 것은 학부모들의 의식에 그 원인이 있다. 즉 그들에게는 패자부활전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그들은 한국 사회처럼 명문대 입학으로 그들 자녀의 인생은 평생안전을 보장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4. 내가 90년대 중반에 뉴욕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던 학교는 미국 내에서 진보적 성향과 유럽학풍으로 잘 알려진 인문사회과학으로 전문화된 맨하탄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대학원이다. 내가 공부하던 당시에는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가 매년 한 학기를 상주하면서 가르쳤다. 그가 오기 전에는 하버마스가 상주하면서 가르쳤다고 한다. 그 학교의 철학교수로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 리차드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은 그 학교의 교육철학을 대중교육에 둔다. 미국 내 다른 대학원에 비해서 입학이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졸업이 무척 어렵다. 내가 그 학교를 다니던 때에 정치학과의 경우 10년이 넘게 박사학위를 받은 학생이 없었다고 했다. 60년대에는 그 학교 출신 학생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그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학문공동체 내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 학교 학생들은 USA 투데이에서 하는 미국내 대학 순위 매기기에는 콧방귀도 안 뀐다. 한국의 대학이 학교 순위매기기에 쌍심지를 돋우고 있는 광경을 보면 무척이나 할 일 없는 걸로 생각할 것이다. 번스타인 교수는 그 학교를 빛낸 인물들은 평범한 입학성적의 학생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자연과학으로 유명한 소수정예의 뉴욕의 록펠러 대학 (Rockefeller University)처럼 그 학교를 변화시키는 데 반대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마 상상하기 어려운 교육환경일 것이다. 번스타인 교수의 교육 철학은 패자의 부활을 허락한다. 5. 90년대 중반 그 학교의 한국 학생 수는 20 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었다. 학생 중에는 운동권 출신이나 좌파 성향의 학생들이 많았다. 경제학과 학생들은 맑스나 케인즈의 경제학에 관심이 많았다. 정치학과 학생들 중에는 진보진영 학자인 최 모 교수의 제자도 있었고 청송교도소에 복역한 경험이 있는 운동권 학생도 있었다. 한국 학생들 중 과반수 넘는 인원이 에스 대 출신이었다. 경제학과는 특히 에스 대 일색이었다. 그 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느 날 학교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경제학과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화제는 와이 대 출신으로 외무고시를 수석으로 패스하기도 했고, 그 학교에 와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던 홍 모 교수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 그 교수가 서울의 제이 고등학교를 나온 모양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하는 말, "그 사람 출세한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내심 기겁을 했다. 좌파 경제학을 배우고 운동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에게도 학벌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 하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화제에 올리던 그 교수는 한국에서 학벌사회퇴치를 위한 단체의 장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 학교에 다니던 학생 중 지방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에스 대에서 정치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철학으로 그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가 에스 대 출신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염원하고 그 일에 직접 투신하기까지 한 사람들에게도 학벌의식은 견고하기만 해 보였다. 어쩌면 평범한 부류의 사람들보다 그들에게 그 의식은 훨씬 더 뿌리 깊은지 모른다. 대중교육을 이념으로 하던 그 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국학생들은 학교의 교육이념과는 상관없어 보였다. 한국 사회의 진보와 민주화는 거대담론에 의한 철학과 실천에 앞서 학벌의식과 학벌커넥션을 극복하는 데 있어 보였다. 패자부활전을 허락하는 사회가 되어야 비로소 민주화도 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6. 70년대 등장한 황석영의 "객지"에서 부당한 노동행위와 임금착취에 대항하는 주모자 '대위'가 회사 측 사람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고백을 한다. "정말 내 한 몸 살기도 어려운 세상이요." 그가 처한 출구가 없는 현실에 대한 그의 마음 속 풍경은 이렇게 묘사된다. "대위는 지금 굳게 닫힌 철문이나 성벽에 머리를 부딪고 피를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과 담벽은 어느 곳에서나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작중 인물 '대위'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요지부동의 철문과 성벽에서 자학하고 있는 마음의 풍경은 작중에서나 경험하는 허구가 아니다. 그리고 70년대에 억압받는 힘없는 노동자의 것만이 아닐 것이다. 이건 오늘날 학벌 카르텔에 가입하지 못한 많은 학부모와 그 자녀들에게도 물려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 풍경은 패자부활전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소외된 힘없는 대중의 모습과 중첩된다. 학벌의식과 학벌 카르텔, 학벌커넥션의 청산 없이는 민주화는 속 빈 강정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한 민주화는 학벌 메이저 리그에 속한 그들만의 게임으로 끝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패자부활전을 허락하는 교육시스템,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이 될 것이다.
내가 1988년에 뉴욕으로 이민을 와서 뉴욕의 한국일보를 읽으면서 당시에는 내 눈에 아주 희한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라가디아 커뮤니티 칼리지보다 못한 수준의 뉴욕의 어느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학생이 하바드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았다는 기사였다. 미국에서 이런 사례들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내가 필라델피아에 있는 학교를 다닐 때 입학동기 중에 명문으로 꼽히는 미시건 대학 출신의 한인 2세 여학생이 있었다. 그의 손가락에는 미시건 대학출신임을 상징하는 가락지가 끼어있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비록 미시건 대학 학부 출신이라 할지라도 그보다 못한 평가를 받는 대학의 대학원과정으로 진학하게 되면 미시건 대학의 학부과정의 색깔이 바래진다고 내게 귀띔한 적이 있다. 최종학력으로 평가하는 게 미국의 풍조이다. 미국에서도 명문학교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이 아닌가? 명문학교를 나온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고 그 학교의 교육의 품질은 탁월하다. 그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항이다. 그렇지만 영어로 표현하자면 "So what?"-"그래서 어쨌다는 거야?"-이다. 학벌이 인생을 좌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문학교의 동종교배를 원칙으로 하는 학벌 커넥션을 미국 사회에서는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 3. 미국의 교육구조가 한국의 교육구조와 구별되는 것은 이 지점이다. 미국의 학부모가 공립학교에조차 엄연히 존재하는 우열가름에 침묵하고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미국 교육시스템에 존재하는 패자부활전 때문이다. 한국의 학부모가 우열가름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자기 자녀들이 그 가름에서 살아남길 원하는 것은 한국 교육시스템에는 패자부활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학입학으로 그들에게 남아있는 인생 전체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단 한 번의 게임으로 그들 장래를 판가름한다. 한국 사회의 학부모의식은 미국에 사는 한인부모에게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들도 자기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에 사력을 다한다. 미국 명문대학 입학생들 중 한국 학생들의 졸업 비율이 다른 민족과 비교해볼 때 최하위를 기록하는 것은 학부모들의 의식에 그 원인이 있다. 즉 그들에게는 패자부활전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그들은 한국 사회처럼 명문대 입학으로 그들 자녀의 인생은 평생안전을 보장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4. 내가 90년대 중반에 뉴욕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던 학교는 미국 내에서 진보적 성향과 유럽학풍으로 잘 알려진 인문사회과학으로 전문화된 맨하탄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대학원이다. 내가 공부하던 당시에는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가 매년 한 학기를 상주하면서 가르쳤다. 그가 오기 전에는 하버마스가 상주하면서 가르쳤다고 한다. 그 학교의 철학교수로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는 리차드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은 그 학교의 교육철학을 대중교육에 둔다. 미국 내 다른 대학원에 비해서 입학이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졸업이 무척 어렵다. 내가 그 학교를 다니던 때에 정치학과의 경우 10년이 넘게 박사학위를 받은 학생이 없었다고 했다. 60년대에는 그 학교 출신 학생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그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학문공동체 내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 학교 학생들은 USA 투데이에서 하는 미국내 대학 순위 매기기에는 콧방귀도 안 뀐다. 한국의 대학이 학교 순위매기기에 쌍심지를 돋우고 있는 광경을 보면 무척이나 할 일 없는 걸로 생각할 것이다. 번스타인 교수는 그 학교를 빛낸 인물들은 평범한 입학성적의 학생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자연과학으로 유명한 소수정예의 뉴욕의 록펠러 대학 (Rockefeller University)처럼 그 학교를 변화시키는 데 반대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마 상상하기 어려운 교육환경일 것이다. 번스타인 교수의 교육 철학은 패자의 부활을 허락한다. 5. 90년대 중반 그 학교의 한국 학생 수는 20 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었다. 학생 중에는 운동권 출신이나 좌파 성향의 학생들이 많았다. 경제학과 학생들은 맑스나 케인즈의 경제학에 관심이 많았다. 정치학과 학생들 중에는 진보진영 학자인 최 모 교수의 제자도 있었고 청송교도소에 복역한 경험이 있는 운동권 학생도 있었다. 한국 학생들 중 과반수 넘는 인원이 에스 대 출신이었다. 경제학과는 특히 에스 대 일색이었다. 그 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느 날 학교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경제학과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화제는 와이 대 출신으로 외무고시를 수석으로 패스하기도 했고, 그 학교에 와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던 홍 모 교수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 그 교수가 서울의 제이 고등학교를 나온 모양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하는 말, "그 사람 출세한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내심 기겁을 했다. 좌파 경제학을 배우고 운동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에게도 학벌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 하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화제에 올리던 그 교수는 한국에서 학벌사회퇴치를 위한 단체의 장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 학교에 다니던 학생 중 지방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에스 대에서 정치학으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철학으로 그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가 에스 대 출신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염원하고 그 일에 직접 투신하기까지 한 사람들에게도 학벌의식은 견고하기만 해 보였다. 어쩌면 평범한 부류의 사람들보다 그들에게 그 의식은 훨씬 더 뿌리 깊은지 모른다. 대중교육을 이념으로 하던 그 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국학생들은 학교의 교육이념과는 상관없어 보였다. 한국 사회의 진보와 민주화는 거대담론에 의한 철학과 실천에 앞서 학벌의식과 학벌커넥션을 극복하는 데 있어 보였다. 패자부활전을 허락하는 사회가 되어야 비로소 민주화도 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6. 70년대 등장한 황석영의 "객지"에서 부당한 노동행위와 임금착취에 대항하는 주모자 '대위'가 회사 측 사람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고백을 한다. "정말 내 한 몸 살기도 어려운 세상이요." 그가 처한 출구가 없는 현실에 대한 그의 마음 속 풍경은 이렇게 묘사된다. "대위는 지금 굳게 닫힌 철문이나 성벽에 머리를 부딪고 피를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과 담벽은 어느 곳에서나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작중 인물 '대위'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요지부동의 철문과 성벽에서 자학하고 있는 마음의 풍경은 작중에서나 경험하는 허구가 아니다. 그리고 70년대에 억압받는 힘없는 노동자의 것만이 아닐 것이다. 이건 오늘날 학벌 카르텔에 가입하지 못한 많은 학부모와 그 자녀들에게도 물려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 풍경은 패자부활전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소외된 힘없는 대중의 모습과 중첩된다. 학벌의식과 학벌 카르텔, 학벌커넥션의 청산 없이는 민주화는 속 빈 강정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경험한 민주화는 학벌 메이저 리그에 속한 그들만의 게임으로 끝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패자부활전을 허락하는 교육시스템,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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