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용(오른쪽)씨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신의 집에서 초등학생인 두 자녀와 함께 책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행복경제학
“특목고·일류대 가야 성공한단 생각 버려
아이가 원하는 일 하게 되면 그게 행복”
“특목고·일류대 가야 성공한단 생각 버려
아이가 원하는 일 하게 되면 그게 행복”
■ 초등생 남매 둔 안혜용씨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사는 주부 안혜용(41)씨는 올해부터 초등학교 4학년 딸 인애와 3학년 아들 신행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기로 한 결심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까지 딸 인애(9)를 한 주에 세 차례씩 영어학원에 보냈지만 예민한 성격인 인애는 학원에 가는 날만 되면 오전부터 불안해했고, 때때로 학원에 가기 싫다며 울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수학 학습지도 풀게 했지만 그날그날 학습지를 풀었는지 확인해 아이를 채근하는 것은 부모인 안씨로도 고역이었다. 이런 안씨의 고민에도 주변 엄마들은 ‘이 시기를 잘 넘겨야 앞으로 편하게 학원에 보낼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성적이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며 마음을 독하게 먹으라고 했지만, 안씨는 공부에 짓눌린 아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대로 아이를 키운다면 결국 아이가 불행해질 거라는 걱정이 앞섰어요. 당장 성적이 좀 처지더라도 학원에 보내지 않고 아이를 여유 있게 키우기로 했죠.” 변호사로 일하는 남편도 안씨의 뜻에 적극적으로 동의해 줬다. 인애와 신행이는 예전에 사 둔 영어 동영상 교재를 집에서 공부하는 것 말고는 따로 사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
학원에 가지 않게 된 아이들의 일상에는 한결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은 오후 2시께 집에 와서 학원 대신 놀이터로 간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학원으로 향할 즈음이면 아이들은 집에 와서 각자 숙제를 하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책 읽을 시간을 충분히 갖게 된 것이 기쁘다”고 안씨는 말했다. 안씨는 아이가 먼저 도움을 청하기 전에 숙제를 점검하거나 준비물을 마련해 주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시기부터 일상을 주도적으로 꾸려가는 연습을 해야 중·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사교육 없이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안씨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안씨는 “전에는 뭘 하려고 해도 ‘애들 때문에 어떻게 해…’ 하는 생각에 지레 포기하곤 했는데, 마음의 부담을 더니 내 생활도 한결 자유로워졌다”며 “얼마 전부터 평소에 꼭 하고 싶었던 상담심리학 공부도 시작했다”고 했다. 안씨는 또 “게다가 아이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니 대화할 기회도 많아져 아이들과의 관계도 더 원만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중·고교에 진학해 본격적인 성적 경쟁의 틈바구니에 있는 동안에도 안씨의 이런 결심이 지켜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안씨는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안씨 부부가 내린 결정은 단순히 사교육의 도움 없이 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을 넘어 자녀 교육의 방향 자체를 근본적으로 고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특목고나 일류대에 보내야 자식의 인생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버렸어요. 아이 아빠처럼 변호사가 되지 않아도, 무슨 일이든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안씨는 아이가 특목고에 갈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아이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한창 꿈을 키울 나이의 아이가 극심한 경쟁으로 받을 상처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안씨는 다른 부모들도 아이 교육에 대한 마음의 짐을 벗고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 정도라고 생각해요. 더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행복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정민영 기자 min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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