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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몹쓸 질병 ‘정밀타격’…열쇠는 단백질

등록 2009-07-12 20:11수정 2009-07-12 22:07

김은경(51) 박사
김은경(51) 박사
[미래 과학기술 현장]
김은경 박사, 결핵·폐렴균 활성 돕는 단백질 구조 규명
‘BT·NT·IT 융합체’ 3차원 구조연구 ‘대박신약’ 지름길




4. 작물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
5. 프로테오믹스이용사업단
6. 세포응용연구사업단

“끔찍하다.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생체분자가 창자처럼 보이다니….”

1958년 영국의 생화학자 존 카우더리 켄드루가 엑스선 결정학(X-ray crystallography)을 이용해 마침내 근육단백질 미오글로빈(myoglobin)의 구조를 밝혀내자, 이를 본 동료 연구자 막스 페르디난트 페루츠가 외친 말이다. 단백질이 소금 결정처럼 간단하고 평범한 구조일 것이란 예상이 한참 어긋났기 때문이다. 이후 생화학자들은 같은 방법으로 복잡한 단백질 분자들의 구조를 하나둘씩 밝혀내기 시작했다.

지난 3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만난 김은경(51) 박사도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분석해 생명의 신비를 밝히고, 실생활에 유용한 물질을 개발하는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결핵, 폐렴 등을 일으키는 세균효소(FabK)의 3차원 구조를 세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 효소는 폐렴균 등이 세포막을 형성할 때 필요한 지방산을 만든다. 만약 이 효소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면, 세균은 세포막을 형성하지 못해 활성을 잃게 된다. 세균효소의 구조를 알면 효소 활성 부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어, 더 빠르게 이 기능만 억제하는 약을 쉽게 개발할 수 있다. “보물지도를 찾은 셈이죠. 단백질 구조를 모를 땐 세균을 죽이기 위해서 수많은 화합물을 하나하나 집어넣어 약효가 있는지 테스트해야 하지만, 단백질 구조를 알고 있으면 약효가 있을 만한 물질만 골라 테스트하니 치료약 개발 시간이 훨씬 줄어듭니다.”

단백질 구조분석을 통해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 유전자재조합을 통해 생산한 표적단백질을 크로마토그래피법으로 분리·정제한다.(①) 이후 까다로운 결정화 과정(②)을 거친 후 엑스선 회절분석을 통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낸다.(③) 마지막으로 상호작용 분석(④)을 통해 최적의 치료물질을 발굴한다.
단백질 구조분석을 통해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 유전자재조합을 통해 생산한 표적단백질을 크로마토그래피법으로 분리·정제한다.(①) 이후 까다로운 결정화 과정(②)을 거친 후 엑스선 회절분석을 통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낸다.(③) 마지막으로 상호작용 분석(④)을 통해 최적의 치료물질을 발굴한다.

복잡한 단백질의 구조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전자현미경이나 핵자기공명(NMR·Nuclear Magnetic Resonance)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원자 수준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선 엑스선 회절(X-ray diffraction)을 이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엑스선 회절로 단백질 같은 고분자 화합물의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분석하고자 하는 단백질을 대량으로 분리·정제해야 한다. 그다음 단백질 결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각 단백질에 맞는 온도, pH 등 결정조건을 찾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결정이 확보되면 엑스선 회절 데이터를 수집하고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내야 한다(위 사진 참조). “단백질 구조분석은 분자생물학, 생화학 등 기초지식뿐 아니라 유전체학(genomics), 단백질체학(proteomics) 등 최신 연구 동향도 알아야 합니다. 구조 모델링에 상당히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 슈퍼컴퓨터도 다룰 줄 알아야 하죠. 구조생물학은 어찌 보면 생명공학(BT), 나노기술(NT), 정보기술(IT) 등의 융합과학이라 할 수 있죠.”

김 박사가 단백질 구조분석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건 미국 보스턴대 2학년 때였다. 화학을 전공하던 그가 물리화학 교수인 에릭스 교수와 상담하던 중 물질의 ‘대칭’(symmetry)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그해 여름부터 물질의 구조 연구에 몰입하게 됐다. 처음엔 저분자 화합물의 구조부터 연구했다. 단백질 구조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당시 ‘구조생물학의 메카’라 불리던 예일대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으면서부터다. 그의 연구가 실용적인 성과를 이룬 건 1992년 우연찮게 입사한 생명공학 벤처기업 버텍스(Vertex)사에서였다. 입사 당시 버텍스는 에이즈(AIDS) 치료제를 개발중이었다. 그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단백질 분해효소(protease)의 3차원 구조 분석 연구로, 1년 반 만에 효능이 뛰어난 에이즈 치료물질을 발굴했다. 당시 다른 대형 제약회사들이 6~7년에 걸쳐 치료물질을 찾은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성과였다. “운이 좋았죠. 단백질 구조분석 연구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학문적 성과가 어떻게 실용화되는지 경험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1995년 귀국한 김 박사는 지금까지 암, 심혈관, 정신분열증 등 다양한 질병 관련 표적단백질의 구조 연구를 통해 치료약을 쉽게 발굴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고 있다. “스웨덴의 중소 제약회사였던 아스트라제네카사는 1970년대 초부터 신약 개발에 집중해 1988년 위궤양 치료제 ‘로젝’을 개발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이 신약 하나로 연 매출 6조5000억원을 올리면서 단기간에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블록버스터’ 신약에 도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생물학 분야를 신약 개발과정에 접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체 내 10만개의 단백질 구조를 모두 밝혀내면 생명의 비밀을 다 알게 될까? 지금은 답할 수 없다. 그러나 답할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다.

조동영 기자 ijoe0691@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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