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에게 과목으로서의 문학(文學)을 가르친다. 내가 의존하는 것은 교과서다. 혹자는 ‘교과서의 해체’, 혹은 ‘교재의 재편성’을 이야기한다. 교재의 재편성은 말이 쉬운 것이지 만만한 것이 아니다. 교과서의 내용이 배정된 시수를 상회하므로 가감하기도 하면서 가르칠만한 것을 엄선하거나,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고려하여 내용의 위계를 재배열하기도 하면서 교사적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교사가 부실한 능력으로 공정하지 않게 재편성의 잣대를 들이밀 경우, 교과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무지가 틈입하여 잡동사니 지식만 나열하여 가르치고 배우게 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교사가 지적 만용과 편리를 고집하면 할수록 교과서의 해체강도가 깊고 재편성의 정도는 심각해질 수 있다.
내가 가르치는 문학 교과서는 문학의 본질을 먼저 이야기하고 수용과 창작에서 서정과 서사, 교술과 희곡을 다루면서 문학의 가치를 깨닫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런 다음에 문학의 문화적 특징을 알게 하고 문화의 변동과 문학의 대응을 보여 준 다음 한국 문학의 발전과 가치화를 상위적으로 다루어 배운 것을 종합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작품을 통해 문학의 갈래별 미학적 스펙트럼을 펼쳐 놓았는데, 직조한 것이 치밀하고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여 교과서 앞에서는 늘 감탄한다.
나는 교과서를 대하면서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전범(典範)적 교재관에 집착하지 않으나 교과서의 체계를 세우고 내용을 채워 넣은 편찬자들의 의도를 읽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나의 문학적 깊이는 보잘 것 없으며 당대의 학문적 성취의 정점에서 내적 논의를 거쳐 편찬된 것을 두고 내가 시비 걸 만큼 능력을 갖추지도 못하였다. 나는 나의 수업을 하면서 교과서를 다루고 시간이 있으면 그 밖의 이야기를 몇 마디 사족으로 달 수 있으면 다행이다. 오히려 교과서를 편찬한 이들의 의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내용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가르치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교과서 앞에서는 배우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교사도 앎의 영역에 관한 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2학기에 개학하여 협의를 간단히 하였다. 어떤 선생님이 제안하기를, 교과서가 시나 소설을 한꺼번에 다루므로 아이들이 따분해 하고 가르치는 교사도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시 하나를 배우고 난 뒤에는 소설을 배우고, 그런 다음에 수필을 하거나 다시 시를 공부하는 방법으로 하면 어떻겠나 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에게 논의해 보자는 제안적 성격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좋겠다는 투로 말하였으므로 나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 말을 건 이유는, 평가할 때 범위를 맞춰야 하므로 미리 상의해 보는 것일 뿐 과목의 지도 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더 생각해 보자고 말하면서 나의 불편함을 얹었으나 알아차리지 못하여 안타까웠다.
제안한 교사의 이야기는 교재의 재편성 정도로 이야기 될 수 있는, 교사적 재량에 관한 것이라 일컬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교사의 생각을 조금 좇아가 보면, 교과서의 체계를 허물고 원칙을 깨트리면서 편리에 따라 문학 작품을 단순하게 순환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다소 위험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교과서 안의 시를 다룰 경우, 교과서는 시가 무엇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 시 속의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어떠한 태도로 말하며 정서를 드러내는지, 시의 언어는 어떻게 기능하면서 빛을 발하는지, 시 속에서 현실과 역사는 또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교사는 성실하게 안내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시를 학습하였듯이 소설도 장르적 특성에 따라 감상하고 개별 장르와 작품의 같고 다른 것을 생각하면서 문학에 대한 어떤 모색을 해 볼 수 있는 근거를 문학 교사가 제공하여야 한다.(이러한 이야기는 교과서 수준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동료가 제안하는 방식은, 교사와 학생이 지극히 파편적인 것을 붙잡고 덜 지루함을 위하여 좁은 길로 들어서는 형국이라 할 만하다. 그 과정은 즐거웠으나 결과는 참혹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머릿속은 잡동사니와도 같은 낱낱의 문학 작품을 창고에 쑤셔 박아 둔 형국이 될 것이다. 교사는 열심히 가르치고 아이들은 다소 즐겁게 참여하면서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분절된 낱낱의 지식을 붙잡고 교사는 열심히 (지루하지 않게) 가르쳤다고 하고, 아이들은 다 알아 들었으므로 자위하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옅으면 수업은 핵심에서 멀어지고 지엽으로 흐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만족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수업의 아이러니다. 대체로 교사가 교실에서 지루함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이 보여주는 반응과 무관하지 않다. 아이들의 반응은 교사의 따분함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실의 아이들은 균등하지 않으므로 교사는 긴장할 필요가 있다.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교과서가 말하는 핵심에 이르는 방법을 구현할 필요가 생긴다. 모색이 없으면 그 가운데에 편리가 틈입하고 수업과 평가의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럽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문학이라는 산맥의 그 어디쯤을 만져 본 본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게 된다. 제대로 가르치고도 쉽지 않은 일이다. 교과부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이야기는 나의 <문학> 교과서 재편성에 관한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저자들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학문의 자유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 주장은 상식적인 것이다. 금성출판사의 교과서가 전국 고교에서 43%의 채택률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저자들의 역사관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 된다. 특정 단체나 부서의 학문외적인 요구를 수용하여 출판사에게 수정을 지시하고,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고 지켜주기는커녕 검증되지 않은 역사 논리를 학생들에게까지 공공연히 조장한 교과부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 교과부가“대법원의 확정 판결 전까지는 수정된 교과서를 계속 사용하겠다.”며 버티는 것을 본다. 아이들이 우리 역사의 그 무엇을 어떠한 관점에서 학습하는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비튼 것을 돌려놓아야 한다. 이러고도 우리가 남의 나라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교과부는 “좌편향 교과서의 교정”이라는 논리를 고수하지 말고 “일방적, 권위적 행정의 교정”을 먼저 실천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시국선언한 교사를 파면하고 교사 평가를 법제화하려는 대담한 발상을 하였듯이 교과서까지 비튼 잘못을 반성하는 일에도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왜곡과 침해의 길은 모두를 불행으로 끌고 가는 지름길이다. 무지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의도를 가진 것이라면 불행의 강도는 더할 것이다. 법원이 저자들에게 위자료 4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은 당연한 결과로 여겨진다. 교과서 수정을 지시한 교과부는 <한국근현대사> 저자들의 학문적 권위와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으므로 그것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분명하게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배우는 민족의 근현대사를 비트는 것은 근본적으로 중대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제안한 교사의 이야기는 교재의 재편성 정도로 이야기 될 수 있는, 교사적 재량에 관한 것이라 일컬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교사의 생각을 조금 좇아가 보면, 교과서의 체계를 허물고 원칙을 깨트리면서 편리에 따라 문학 작품을 단순하게 순환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다소 위험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교과서 안의 시를 다룰 경우, 교과서는 시가 무엇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 시 속의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어떠한 태도로 말하며 정서를 드러내는지, 시의 언어는 어떻게 기능하면서 빛을 발하는지, 시 속에서 현실과 역사는 또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교사는 성실하게 안내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시를 학습하였듯이 소설도 장르적 특성에 따라 감상하고 개별 장르와 작품의 같고 다른 것을 생각하면서 문학에 대한 어떤 모색을 해 볼 수 있는 근거를 문학 교사가 제공하여야 한다.(이러한 이야기는 교과서 수준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동료가 제안하는 방식은, 교사와 학생이 지극히 파편적인 것을 붙잡고 덜 지루함을 위하여 좁은 길로 들어서는 형국이라 할 만하다. 그 과정은 즐거웠으나 결과는 참혹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머릿속은 잡동사니와도 같은 낱낱의 문학 작품을 창고에 쑤셔 박아 둔 형국이 될 것이다. 교사는 열심히 가르치고 아이들은 다소 즐겁게 참여하면서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분절된 낱낱의 지식을 붙잡고 교사는 열심히 (지루하지 않게) 가르쳤다고 하고, 아이들은 다 알아 들었으므로 자위하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옅으면 수업은 핵심에서 멀어지고 지엽으로 흐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만족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수업의 아이러니다. 대체로 교사가 교실에서 지루함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이 보여주는 반응과 무관하지 않다. 아이들의 반응은 교사의 따분함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실의 아이들은 균등하지 않으므로 교사는 긴장할 필요가 있다.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교과서가 말하는 핵심에 이르는 방법을 구현할 필요가 생긴다. 모색이 없으면 그 가운데에 편리가 틈입하고 수업과 평가의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럽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문학이라는 산맥의 그 어디쯤을 만져 본 본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게 된다. 제대로 가르치고도 쉽지 않은 일이다. 교과부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이야기는 나의 <문학> 교과서 재편성에 관한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저자들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학문의 자유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 주장은 상식적인 것이다. 금성출판사의 교과서가 전국 고교에서 43%의 채택률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저자들의 역사관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 된다. 특정 단체나 부서의 학문외적인 요구를 수용하여 출판사에게 수정을 지시하고,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고 지켜주기는커녕 검증되지 않은 역사 논리를 학생들에게까지 공공연히 조장한 교과부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 교과부가“대법원의 확정 판결 전까지는 수정된 교과서를 계속 사용하겠다.”며 버티는 것을 본다. 아이들이 우리 역사의 그 무엇을 어떠한 관점에서 학습하는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비튼 것을 돌려놓아야 한다. 이러고도 우리가 남의 나라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교과부는 “좌편향 교과서의 교정”이라는 논리를 고수하지 말고 “일방적, 권위적 행정의 교정”을 먼저 실천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시국선언한 교사를 파면하고 교사 평가를 법제화하려는 대담한 발상을 하였듯이 교과서까지 비튼 잘못을 반성하는 일에도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왜곡과 침해의 길은 모두를 불행으로 끌고 가는 지름길이다. 무지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의도를 가진 것이라면 불행의 강도는 더할 것이다. 법원이 저자들에게 위자료 4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은 당연한 결과로 여겨진다. 교과서 수정을 지시한 교과부는 <한국근현대사> 저자들의 학문적 권위와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으므로 그것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분명하게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배우는 민족의 근현대사를 비트는 것은 근본적으로 중대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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