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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6 18:38 수정 : 2005.01.16 18:38

“선생님, 자주 찾아뵙고 인사 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쩌다 이런 말을 하는 제자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제자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도 제자들의 선생님이기 이전에 우리 선생님의 제자이면서,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부산 사시는 두메 선생님을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 전화로라도 자주 문안 인사 드려야 하는데…. 정말이지 너무도 죄송스러웠다. 이런 마음인데, 지난 연말 마침 우리 아이 내외가 책을 한 권 냈다. 선생님께만은 보여 드리고 싶어 안부 인사를 겸해서 한 권 부쳐 드렸다. 며칠 뒤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다.

‘…한 장 한 장 넘겨 가면서 나도 파랑새를 찾는 사람이 되어 빛깔로 찾아보는 세계 여행을 떠나 보았습니다. 그것은 볼거리도 많았으나, 안내인의 진솔한 설명이 내 마음을 끌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 그냥 받아 두시거나 누구한테 선사하셔도 그만일 것을, 귀한 말씀까지 적어 보내 주시다니!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이 글썽하였다.

선생님은 내가 다닌 교육대학의 국어과 교수이셨고, 나는 강의를 듣는 수백 명 가운데 눈에 띄지도 않는 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부터 선생님의 가르침을 귀로 듣기만 하지 않고 가슴에 새기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1970년 봄 외솔 최현배 선생이 돌아가신 날, 두메 선생님은 눈물을 지으시며 우리들에게 외솔 선생의 삶을 만나게 해 주셨다. 이런 일도 눈에 선하다. 선생님이 강의안을 나누어 주시는데, 한 학생이 한 손으로 받자 그 종이를 살짝 잡고서 “교사가 예의를 모르면 아이들이 어떻게 되나” 하시며 일깨워 주셨다. 우리말 바로 쓰기에 처음 눈을 뜨게 된 것이나, 교단 생활을 해 오면서 학부모의 돈봉투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선생님은 교사가 된 뒤로 지금까지 늘 내가 바른 길로 걸어가도록 길을 밝혀 주고 계신다. 불의와 싸우며 외롭고 힘들었을 때는 편지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잘 견디어 내게 해 주셨다. 교장 일을 맡게 되었을 때는 사모님을 여의시고 당신 몸과 마음이 매우 편찮으신데도 의령까지 오셔서 손을 잡고 격려해 주셨다.

“아무리 애를 먹이는 아이라도 교사는 아이를 측은하게 여겨야지 ‘너는 나쁜 놈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에 이어, 거짓말한 아이들을 꾸짖기보다 정직한 아이한테 ‘너는 장차 큰 사람이 될 것이다!’ 하고 등을 두드려 주셨다는 당신의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도 해 주셨다. 우리 사회 현상을 바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겨레의 사상과 뿌리를 알아야 한다며, 〈이야기 한국 철학〉을 선물로 주고 가셨던 때가 벌써 세 해 전이다.


올 한 해를 나는 선생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가르치는 선생이기 이전에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게 먼저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선생님이 보여 주신 길대로 따라가는 것보다 더 새로운 길이 어디 있겠나 싶다.

주중식 거창 샛별초등학교 교장 gildongmu@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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