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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6 19:13 수정 : 2005.01.16 19:13

<장화홍련전>을 읽고

세종대왕 시절에 배무룡이라는 사람은 향반으로 좌수 노릇을 했다. 배 좌수는 아름다운 부인 장씨와 결혼해 장화와 홍련 두 딸을 두었다. 그러나 장씨가 죽자, 배 좌수는 허씨와 재혼했다. 허씨는 장화와 홍련을 못살게 굴고 자기가 낳은 세 아들만 예뻐하였다. 배 좌수는 장화와 홍련을 미워하는 허씨를 타일렀지만 허씨는 장화와 홍련을 여전히 싫어했다. 급기야 허씨는 아들 장쇠를 시켜 장화를 죽인다. 그리고 홍련도 자살을 했다. 몇 년이 지난 뒤 철산부사로 간 정동호라는 사람에 의해 억울한 누명은 벗겨지고, 허씨는 사형 당한다. 그리고 장화와 홍련은 다시 태어나 윤필과 윤석 형제에게 시집을 간다.

이 이야기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을 나타낸 것 같다. 여기서 허씨를 보니 정말 못생겼고, 성격도 나쁜 것 같다. 쥐를 잡아다가 죽여서 장화가 낳은 죽은 아기라고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아무리 장화와 홍련이 미워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만약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양심에 찔려서라도 홍련에게라도 잘 해 주어야 할 텐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양반 집 딸으로 태어나서 둘째 부인이 된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했을 것 같다.

배 좌수 또한 정말 어리석은 것 같다. 자기의 딸이 죽은 아기를 낳았으면 잘 살펴보기라도 할 것이지, 죄 없는 장화를 죽이다니…. 그때 죽은 장화와 홍련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제 장화와 홍련이 다시 태어났으니 이번 생에에는 윤필과 윤석과 함께 정말 행복하고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아버지 역시 딸을 죽이는 데 동참했으면서 죄를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형평에 어긋난다. 아마도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명분 같은데, 글쎄 아들을 낳기 위해 자식 살해에 공모한 아버지가 용서받는 사회는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남지수/수원 매탄초등학교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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