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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블로그] 무지한 교육자본이 사회붕괴를 가져왔다

등록 2009-10-20 13:19

“교무실의 격(질)을 높여라”
교무실의 격은 교사의 질에 따라서 결정된다. 교사의 질을 높여라. 그 때 교무실의 품위가 달라진다. 지금 우리 교단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기라 할 수 있다.

1.국민 소득은 높아졌는데, 수업 시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교사 일인당 수업 시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2.전자문서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교사들이 업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교사가 처리하는 보고 공문서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3.교원승진 규정 개선안이 교사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 아니라, 옛날보다도 더 고통스런 규정으로 개악이 되고 말았다.(교수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온갖 복잡한 연수 점수와, 승진 점수 따기 경쟁으로 교무실 분위기를 무겁고 어둡게 하고 있다. 최고 점수를 연속 2년 하든 것을 10년 동안으로 연장 훨씬 그 기간이 늘어나 버렸다.)


교육의 본질적 기능과 교사의 순수한 교육 활동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핵심은 위와 같은 세 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을 개선하지 않은 채, 교원평가를 강행하고, 일제고사를 강행하여, 방과 후 활동을 하고,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이러한 활동들이 더욱 더 학생과 교사들의 어깨를 짓눌러 교사의 사기는 떨어뜨렸고, 학생들을 지치게 했다.

학교 문화는 교무실의 환경에 의하여 결정된다. 교무실은 교사의 품격에 따라 결정된다. 교사의 품격을 결정짓는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교사가 한 시간 수업을 통하여 학생들과 깊은 상호 유대감을 갖고, 삶의 현장을 함께 체험하며, 학생의 잠재력을 일깨워 꿈을 열어가는 것에서 커다란 보람과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리라.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활동은 단연코 밀도 높은 수업과, 그에 따른 교사 학생간의 신뢰와 유대감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단의 모습은 어떠한 지경에 처해 있는가? 교사는 출근하면서 교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은 무슨 보고 공문이 전자문서로 나타날지 긴장부터 하게 된다. 자기 부서에 관련된 긴급한 보고 공문과, 시범학교와 같은 점수에 관련된 업무가 우선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본연의 수업은 뒷전이다. 이런 학교 문화와 교무실 환경을 일대 개혁하지 않고서,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를 속이는 것이다. 수요자 중심의 학생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이름으로 개편된 신교육과정이 채 뿌리를 내려 정착하기도 전에 정권에 따라 시시각각 교육과정을 바꾸려하는 것은 오히려 일선 학교현장을 더욱 더 혼란케 할 뿐이다. 그러한 교육과정을 개편하느라 시간과 예산을 쏟아 붓는 교육부와 교육청 지시에 담당교사와 교감 교장이 잦은 출장으로 학교를 비워야만 한다. 기초학력을 끌어 올린다는 명분의 국가수준이란 잣대로 전국이 동시에 한 날 한 시에 대입 수능 형태로 치뤄지는 일제고사의 모습은 학교자율화란 취지에 걸맞지 않는다.

충분한 토론과 이견의 청취로 공청회와 같은 여과 과정을 그치지 않고 그저 침묵하며 따라가는 교육 관료와 일선 교사들은 교육의 객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학교 현장의 고충과 교육의 장기적인 안목과 효과보다는, 정치적 논리나 정권적 차원에서 정책을 밀어부치는 행정위주의 교육 사업이 아직도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침저녁으로 실시되는 방과 후 수업을 통하여 사교육비를 해결하려고 하는 정부와, 그저 침묵으로 따라가는 교육 관료들의 학교경영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선 학교 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우리는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시대로 교원평가와 일제고사를 실시했을 때, 과연 이 같은 정책과 노력이 가져올 파장과 부작용이 무엇이며, 이후 그 역효과로 인한 결과를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교사에게 제일의 적은 격무이다. 교사에게 맡겨진 학생 수가 너무 많으면, 학생에게 애정과 보살핌을 통하여 만날 수 있는 소통의 기회가 단절되기도 하고, 인내심과 배려에 한계점을 가져온다. 교사 일인당 너무 많은 정상 수업 시간과 잡무는 우리 교단에서 왜 해결되지 못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사의 격무와 열악한 교단 현실을 외면한 채, 우리 학교가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건강한 교육은 쾌적한 교무실 환경으로부터 온다. 학교 교사들의 이러한 격무와 잡무를 해결하려면 오랫동안 미루고 도피해온 교실 수업을 위한 인적 물적 투자를 실천에 옮길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리하여 지친 우리 교단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학생들 또한 방과 후 수업과, 그것을 마치고 또 학원으로 가야만 하는 이중 삼중의 일과에, 교사 학생 모두가 너무 어깨가 쳐져있고 지쳐있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교사가 직접적인 교육활동과 무관한 긴급 공문을 들고 수업에 쫒기면서 올바른 교육활동을 기대할 수는 없다. 친구의 부모격인 아버지 어머니 같은 교사가 한 교무실에 있고, 아들딸과 같은 자식 친구가 한 교무실에 있고, 동과 수업 시수를 놓고 동일한 시간을 나누는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는 교무실, 승진 점수를 놓고 선후배가 없고 원로교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무실에서, 교무실의 격은 무엇이고, 교사의 품위는 어디에 있는가?

그럼 교무실의 격은 무엇으로 이루어지고, 교사의 품위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것은 사회자본의 교육적 투자다. 사회자본은 물적 자본과 인적 자본이 있다. 국민소득이 높아져 교사의 봉급을 올려주는 직접적인 자본도 있고, 열악한 교무실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교사들의 복지에 투자 하는 간접적인 자본도 있다. 꼭 국민소득을 통한 직접적인 교육자본이 아니라도, 현대 사회의 교육자본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간접적인 교육자본을 말하고 싶다.

나는 이 기회에 직접적인 교육자본 보다는 간접적인 교육자본이 현대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지적하고 싶다. 간접적인 교육자본의 요소를 다음 세 가지로 들고 싶다. 그 가운데 첫째 요소는, 신뢰 자본이다. 교사와 교사의 관계,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간의 관계이다. 교육에 있어 신뢰는 중요한 자본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간에 신뢰가 없으면, 그곳에 교육의 올바른 기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늘날 교실이 붕괴되고, 교무실이 붕괴된 현실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우리 교단에 커다란 위기이자 어둠이다. 그러한 신뢰는 공정하고 투명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교사와 학생은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공명정대함을 가르치고 배워야만 한다. 그런데 지식과 성적에만 몰입하여, 보다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려고 학교와 가정과 사회 모두가 입시경쟁의 사교육 열풍에 짓눌려 사회의 거대한 축인 학교의 공동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거기서 나타나는 많은 부작용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비극은, 지식 위주의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아이들의 성장과 배움의 과정은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잇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 공명정대한 질서와 신뢰가 시간이 갈수록 파괴되며 불행한 사회로 변해가는 우리 사회의 위기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왜 그런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신뢰와 믿음이야말로 공동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확실한 유대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붕괴는 그대로 학교 교무실 붕괴로 이어지고, 교실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학교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 참고: 각국의 신뢰수준에서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면 한국인은 대체로 10명 중 3명만을 믿을 수 있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신뢰의 비율이 가장 높은 스웨덴(6.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중국(5.2명), 베트남(5.2명)보다도 낮다. 한국은 정부와 기업, 종교단체 등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으며 특히 국회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71개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교사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고, 거기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숨어있다. 교사들은 계급이 없고, 신분의 차별 없이 똑같은 사람을 가르친다는 자격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교사에게 유일한 권위라면, 오직 하나 가르치고 상담하는 기술로서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을 교수하고, 아이들과 상담을 통하여 삶의 꿈을 열어가는 것으로 보람과 기쁨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교사들은 지금 현장에서 어쩌면 과중한 수업 부담과, 가슴 짓누르는 잡무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하루라도 빨리 승진을 할 것인가 하는 이중적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지금 한국의 교단이 처해있는 고통과 아픔이 커다는 것이다. 교무실 붕괴와 교실 붕괴가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교원의 승진의 과정이 생각처럼 공정하고 투명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교사나 교육 관료가 과연 몇이나 되는지 길을 막고 묻고 싶다.

간접적인 교육자본의 두 번째 요소는, 협동 자본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협동이란 말이 사라지고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삶의 현장에서 협동이란 말이 사전 속에서만 숨어 있고, 현실 속에서는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는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현대 사회의 기반은 협동가치 보다는 경쟁가치가, 신뢰와 믿음 보다는 불신과 갈등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 사회는 옛날보다 훨씬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요구되고, 기회비용을 물어야 하는 세상이다. 교육의 가치가 협동 자본에서 경쟁자본으로 이행하면, 우리는 엄청난 사회적 기회비용을 통하여 교육력이 낭비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의 교육자본이 협동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대신함으로서 우리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그들끼리만 협동하고, 그들의 관계에서 벗어나면 서로는 경쟁과 불신으로 사회적 갈등을 조성하게 된다. 그러한 끼리끼리 문화는 건강한 사회를 파괴하고 만다. 경쟁은 본질적으로 상호배타적 관계에서 작동한다. 경쟁을 통하여 인간을 교육하고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못함을 이해할 수는 없는가? 교육자본의 요소 가운데 협동자본은 무엇보다도 인간의성장과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 사회를 움직이는 가치의 기반은 철저히 경쟁가치로 무장되어 있다. 이렇게 잘못된 교육자본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 기반을 허무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깊이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공교육의 심각한 위기는 곧 학교 문화를 가꾸는 잘못된 교육자본의 투입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이 땅에 진실로 교육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올바른 교육자본을 학교에 투입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곧 협동자본과 신뢰자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이 두 가지 교육자본의 요소가 투입될 때, 비로소 교사의 품격이 변하고, 교무실의 격이 높아질 것이다. 나아가 학교와 사회가 건강한 모습으로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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