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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6 19:28 수정 : 2005.01.16 19:28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체험 코너에서 한 학생이 테이프를 붙인 투명 아크릴판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뒤 테이프를 떼어 내면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손대지 말고 눈으로만 보라?
주눅들거나 재미없고 거리감

“오감으로 작품 감상해보자”
'울타리' 허문·전시회 잇따라
국립미술관 체험미술 행사

“아이 생각 드러내는 게 중요
일상서 즐겨야 창의력 솟아요”

‘정숙!’ 미술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말이다. 미술 감상은 조용히 눈으로만 하라는 강한 메시지다. 이런 미술관이 아이들에게 재미있을 턱이 없다. 더구나 각종 기법들을 동원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기가 팍 죽는다.

눈으로만 보는 미술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지 못한다. 두려움과 거리감만 생기게 할 뿐이다. 김성호 수원미술전시관 큐레이터는 “미술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편견이 아이들을 자꾸 학원으로만 내몰고 생활미술이나 체험미술을 멀리하게 만들고 있다”며 “느끼는 미술, 놀이로서의 미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자고, 먹고, 놀고, 배우고 하는 일상 곳곳에 미술은 녹아 있다. 쓰다듬고, 눌러 보고, 움직여 보고, 귀 기울여 보고, 냄새 맡아 보고 하는 모든 감각 활동들이 훌륭한 미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변경하 가나아트갤러리 큐레이터는 “주변 소재를 스스로 느껴 보고 의미를 찾고, 그리고 이를 다양한 재료나 표현 방식을 통해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보면 즐거움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미술교육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일상에서 쓰는 물건인 휴지, 부서진 의자, 뚜껑 등을 이용해 가족들이 모여 밥먹는 것을 표현했다. 제목 <아름드리 식탁>.

온몸으로 미술관을 느끼자


‘작품 보존’을 이유로 울타리를 쳐 놓는 미술관이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작품을 만지고, 두드리고, 냄새를 맡는 등의 행위가 가능한 전시회가 잇따르고 있다. 시각 외에 촉각과 청각, 후각 등 전 감각기관을 동원한 종합 감상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얼마 전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열렸던 ‘나는 작품을 만지러 미술관에 간다’ 기획전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기획전에는 22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초콜릿, 전구, 헝겊, 나무, 쇳조각 등 각종 재료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아이들은 ‘똥밭교실’에서 책상 위에 놓인 석고똥을 손으로 만졌고, ‘누가 초콜릿을 다 먹어버렸을까’ 작품방에선 부처님 얼굴에 묻은 초콜릿을 따 먹었다. 점으로 만들어진 관악산(‘두 개의 관악산’)을 만지거나, 맨발로 흙밭(‘발밑으로 자연을 느끼며’)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전시에 참여했던 김선현 작가는 “흙을 만지면서 시각, 촉각, 후각이 두루 만족하고 정서적으로 지극히 안정된 상태에 도달하며,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던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며 “아이들이 온몸으로 미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월 말까지 여는 ‘청소년 현대미술 산책’도 체험 미술 전시회다. 100여명의 초등학생들이 참여한 이 전시회에는 검정 먹물에 커피를 섞어 그린 뒤 소금을 뿌린 한국화 등 기발한 아이디어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병뚜껑을 모아서 포도를 만들고, 식빵을 묶는 끈을 방사형으로 붙여서 불꽃놀이를 연출한다. 깻잎으로 만진 사람 머리, 노끈을 조각조각 끊어 붙여 만든 물고기 등의 작품들을 아이들은 만져 보고, 눌러 보고, 두드려 보면서 미술을 체감하도록 했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아트링크에서는 ‘놀이터를 바꿔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갤러리를 아예 놀이터로 꾸몄다. 미끄럼틀, 그네, 정글, 매달리기 등을 아이들 정서에 맞도록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으로 모형을 제작해,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이 어떻게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맘껏 만지고 스스로 화가가 되자

체험 미술 전시회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주변 환경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따라 훌륭한 미술관이 될 수 있다. 고궁이나 인사동 거리, 공원 등은 좋은 미술 교재이자 자극제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용희씨는 “많은 것을 보고 만지게 하면서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자꾸 ‘작품 만지지마’라고 외치는 것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겐 고문이다. 올라타기 좋아하고, 구석진 곳을 찾고, 구멍에 손을 넣고 싶은 아이들 본능을 최대한 살려 주는 것이 아이의 미적 감각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다. 방희열 플레이앤아트(playnart.co.kr) 실장은 “오감을 활짝 연 채 세상을 관찰하면 사물의 또 다른 면이 보이게 마련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말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물에 대해 아이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빵을 만지면서 바람 소리가 난다고 표현한다면 공감각적 이미지를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 되며, 물감을 이렇게 저렇게 섞어 보면서 색감을 체득하게 된다. 〈화가처럼 생각하기〉를 쓴 김재준 국민대 교수는 “사물에 대해 민감해지는 훈련을 계속 하다 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이고 사물의 또 다른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창의력”이라고 말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아이는 자신만의 미술언어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길가에 떨어진 나뭇잎을 보고 “아빠 얼굴처럼 생겼다”며 주워 와서 물감을 칠해 판화를 만들 수도 있고, 돌멩이를 몇 개 주워 와서 가족과 친구의 얼굴을 그려 넣거나 글을 적어 넣을 수도 있다.

자신의 미술 언어로 뭔가를 만들어 내도록 부추기는 것은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열린 사고 방식을 갖게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파란색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면 검은색 바탕에 파란 물감으로 눈이 오는 장면을 그릴 수 있지만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서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정화 아트링크 전시기획팀장은 “학습되기 이전의 공감각적, 촉각적인 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경험을 쌓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이렇듯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예술과 놀고 즐기는’ 것은 훗날 축적된 창의력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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