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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블로그]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

등록 2009-11-26 14:56

<교육희망> 556호에서
<교육희망> 556호에서
국가인권위가, 교복에 이름표를 박음질하는 고정형 이름표가 학교 밖에서까지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에게까지 학생 이름이 노출되도록 함으로써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할 뿐 아니라 각종 범죄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그 시정을 권고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중고등학교는 학교규칙이나 학교생활규정을 개정하여 관행을 시정하고 학생들에게 이름표의 탈부착을 허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에 반대하는 교육계 종사자들이 더러 “교복분실방지, 이름표 파손예방, 학교 밖에서의 일탈행위 예방” 등 몇몇 효과를 들어 반박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나는 교복에 얹는 이름표 하나를 두고 고정형이냐, 탈부착형이냐 하는 이 담론 속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의 “편의적 발상과 억압의 욕망과 일상적 폭력”을 본다.

이름표를 고정형에서 탈부착형으로 바꾸면 학생들은 교실에서도 이름표를 달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교사들은 불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 이름을 모를 경우 이름표를 달도록 권해야 한다. 집에 두고 왔으면 다음에는 꼭 달도록 타일러야 한다. 빈번할 경우 강하게 말할 수도 있고, 이름표가 단체생활이나 수업 환경에 상당히 필요하다는 설득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학생의 사고와 행동에 유의미한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기다리면서 지켜봐 주어야 한다. 분실하면 새로 만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요즘의 학교와 교실에서는 이러한 간단한 절차적 소통이 어느 순간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다. 학생의 반응과 변화는 느리고 교사는 나름 지쳐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소소함들이 학교와 교실이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에서 상당히 멀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름표를 부착하는 일이 교사가 공들일 만큼 가치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도 이름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을 그 어떤 가치의 하위에 두기 때문이라 하면 논리적 비약이 될지 모르나, 오직 학업 성취의 그 무엇으로 평가받고 그 가치를 줄 세우기 때문에 소소한 습관이나 관행을 바로잡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 못된다. 간혹 학생생활지도 담당부서에서 일제 점검을 하고 학급의 담임에게 통지할 경우, 관심을 갖게 되는 정도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편의적으로 이름표를 강제적 고정형으로 집착해 온 것이다. 교복의 분실을 방지하고 이름표의 파손을 예방한다는 논리는 실용적 가치를 내세운듯하나 얼마나 그 변명이 궁색한가. 만약 누군가가 이름표 부착 목적을 교복분실방지 효과와 그 이름표의 파손 예방의 효과라 말하면 우스운 일이 된다.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할 만한 이러한 논리들은 모두 우리의 학교와 교실을 지배하는 편의에 관한 숭배와 그것이 부르는 욕망에서 연유하는 것들이다.

학교의 아이들은 두발에 관해 예민하다. 오죽했으면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학교 3년을 추억하며 아쉬웠던 점을 적어보라 하였더니 머리 5센티미터 정도만 더 길러보았더라면 하고 적었을까. 그런가 하면 어떤 아이들은 머리카락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대단한 집착이긴 하나 나는 그것이 억압에서 연유하는 충동적이고도 반항적인 자기방어 본능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일반인들이 양복이나 코트 상의의 왼쪽 가슴에 고정형 이름표를 박음질하여 부착하지 않는다. 필요할 경우 사내에서 탈부착할 뿐이다. 머리도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이 두발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서 일률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 길면 자르고 다듬는다. 직장과 가족, 사회의 통념에 비추어서 불편하면 스스로 조절한다. 가끔 그 조절의 기능이 발휘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나 지극히 반사회적인 것이 못되므로 우리는 그것을 개성이라는 좋은 말로 이해하고 수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일반인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여전히 철이 들지 않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수철 같은 존재이며 어리석고 위험하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른들 가운데에도 훨씬 위험한 인물들이 존재하지 않느냐, 세상이 어른들 만의 것이냐, 어른들은 좋은 것 다 하고 우리한테는 맨 날 공부만 하라 하고, 머리까지 맘대로 못하게 하고 …” 아이들의 이러한 말들이 시근 있는 어른이 들었을 때는 참으로 안타깝다. 그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말 중에 “다 저그 위해서 하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 학창 시절을 걸어 나오지 않은 어른이 없으나, 어른이 되어 누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학생들에게는 제한되고, 억압은 지속된다.

나는 그것을, 기성세대가 가하는 억압에 관한 욕망이라 말하고 싶다. 머리가 길면 일탈행동을 하게 되고, 지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을 제멋대로 굴도록 그냥 둘 수 없으며, 짧은 머리가 보기에도 좋다는 것이 두발에 관한 단속의 논거다. 어쩌다 외부에서 손님이라도 학교를 방문하게 되면 그들의 입에서 떨어지는 몇 마디의 말인즉 “학생들의 머리가 단정하고 인사성이 좋고 … 참 좋습니다.” 하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두발 단속에 기울인 노력과 공들인 수고에 대한 보상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머리 단속에 학교 역량의 몇 퍼센트 정도를 묵시적으로 투자하기도 한다. 머리 단속에 투자하는 인력과 시간은 구성원의 역량을 갉아 먹는다. 오로지 그 일에 더 전념하면서 다른 일에 소홀해진다. 그러므로 두발 단속은 자기 논리를 갖추고 사회 일반의 통념과 조응하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여서 이룬 성과인가, 이렇게 자위한다. 억압으로 얻는 위안이다.

두발 규정을 옹호하거나 두발 단속의 결과 효과를 맹신하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머리가 긴 학생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식으로 막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억압을 통해 자기 업무와 자기 능력에 관한 긍정적 평가를 받으려 할 뿐, 머리가 긴 아이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체로 두발을 자율화 하면 마치 모든 아이들이 염색을 하고 파마를 하며 산발로 늘어뜨릴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배적 욕망의 침해에 관한 왜곡된 상상이며 과장이다. 매일 그들은 일반 사회인들이 어떠한 머리를 하고 다니는지 보고 있으면서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학생들은 제멋대로의 존재, 혹은 악마적 그 무엇으로 인식된다. 자율화된 환경 속에서 다소 머리가 긴 아이를 불러서 아버지처럼, 혹은 나이 많은 형처럼 타이르고 설득할 용기가 그들에게는 없다. 불필요한 수고를 왜 하는가, 그러한 원시적 방식이 어디 있는가 하는 항변을 할 뿐이다.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고 오로지 억압에 관한 욕망으로 숨 쉬는 사람들이다.

이름표와 두발에 관한 자기 편의적이며 억압적 욕망의 왜곡된 실천이라 할 만한 이러한 인식들은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폭력이다. 영혼에 관한 폭력이다.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제도와 인습에 갇혀 있는 학생들은 양육되거나 길들여지는 존재일 뿐이다. 문제는, 일상적 폭력의 행위 주체들이 이것을 폭력이라 인식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가깝거나 먼 미래를 위하여 이 한 순간 참고 견뎌야하는 것일 뿐, 바른 길로 이끄는 수고일 뿐 폭력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일이 된다. 그 속에는 사명감을 넘어 숭고함마저 깃든다.

아이들은 복종과 순종의 대상이며 무한 경쟁의 주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지금, 여기”에서 부과하는 것을 실현하고 강요하는 요구를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대상이다. 고정형의 균일한 교육적 대상이 굴레 안에서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기 생명을 생명답게 가꾸는 주체가 아니다. 기계에게 가해지는 것이 아무리 잔인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폭력이라 부르지 않는다. 가끔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죽지 않을 만큼 맞고 스포츠형 머리도 못하고 다녔다.” 하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것은 군대와 학교를 착각한 것이거나, 독재와 야만의 시대에 교육이라 이름하며 행행해진 것들에 길들여진 기성세대의 트라우마일 뿐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와는 다른 것을 꿈꿀 권리가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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