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와 적성도 파악해보고, 전문 상담 직업인을 만나 직업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보는 진로 검사 및 상담은 방학 때 해볼만한 훌륭한 체험학습이다. 사진은 백선주·박재성 <아하! 한겨레> 학생기자가 진로 검사 및 상담을 받는 모습. 김청연 기자
계기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뭐지?
“<진로와 직업> 시간? 보잖아.”, “교과서? 첫날 한 번 봤나?” 열에 열, 답은 비슷했다. 지난해 9월부터 ‘진로교육’을 주제로 잡고 사전 취재를 해본 결과, 우리(<아하! 한겨레> 학생기자 7명)에게 돌아온 건 줄곧 ‘냉소적’인 답변뿐이었다. “일 년에 여섯 번 정도 ‘진로의 시간’ 수업을 한다”는 부산 ㄷ중학교의 사례에 잠깐 반색했지만 이 학교 학생은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한 학생이 갖는 잠재력, 다양한 적성은 고려하지 않는 그냥 ‘행사’일 뿐이죠.” 최근 들어 전문 진로상담교사가 있는 학교가 늘고 있지만 학생들은 아직 상담교사를 ‘이성친구 문제를 상담하는 분’ 정도로 여긴다. 이때 취재에 도움을 준 한 친구의 말이 가슴에 콱 박혔다. “입학사정관제가 ‘뜨거운 감자’가 됐지만 나는 이 전형을 준비하는 게 어렵다. 명확한 꿈이 없는 탓이다. 솔직히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채 학원만을 맴돌아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분야에 흥미가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공감백배!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대부분 하는 이 고민을 차분히 들어주고 도움을 줄 사람 어디 없나요?
섭외'어렵게' 고용지원센터를 찾다
진로탐색의 첫 열쇠는 용기와 적극성이다. “고용정보원에선 교사들 대상으로 진로교육 연수 등을 해드리고는 있지만 직접 학생 개개인에게 검사나 상담을 안 해요.” 한 통의 전화가 시작이었다. 다행히 <함께하는 교육>에 직업 관련 칼럼을 쓰는 이랑 연구원(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의 답변엔 반전이 있었다. “…하지만 고용지원센터 쪽을 소개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덕분에 방학을 코앞에 둔 지난 12월23일, 우리들 가운데 두 사람(박재성, 백선주)은 서울 선릉역 근처의 강남고용지원센터를 방문했다. 방문 전날 간략한 ‘진로활동지’를 받고 ‘나’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메일로 활동지를 보내주신 고정민 선생님(강남고용지원센터 취업지원과, 이하 ‘고샘’)이 우리를 반기며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바쁘신 나이인데….”(웃음)
검사와 진단마음·생각에 대한 검사가 뭐야
“둘이 정말 비슷하네요.” ‘혹시나’ 하긴 했는데 ‘역시나’. ‘진로활동지’를 보던 고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고교 2학년, 문과. 학생기자로 활동중. 1학년 때 적성검사 받은 경험이 있음. 잘하는 일은 발표, 사회보기(진행), 글쓰기 등. 희망 직업은 아나운서, 기자, 프로듀서 등 언론 분야. 생김은 전혀 다르지만 둘의 흥미와 장래희망은 거의 일치했다. 기왕이면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이 왔으면 좋았을 거란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과는 두고 봐야 하는 법! 3시 30분에 시작한 직업 흥미검사와 직업 가치관 검사는 학교에서 했던 적성검사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지금부터 검사를 시작하겠습니다”란 방송 대신 고샘의 구체적이고 친절한 설명이 더해졌던 게 기억에 남는다. “특히 두 가지에 유념해주세요. 하나는 이건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여러분 생각이나 마음에 대한 검사니까요. 또 하나는 하나를 두고 너무 오래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상담과 처방'진취형-관습형' 엇갈린 처방 '헉'
“‘남을 위해 봉사한다’랑 ‘자신의 이익보다 사회의 이익을 더 우선시한다’랑 비슷하지 않았어? 어휘만 다르고 내용은 비슷한 질문이 은근히 많더라.” 4시 10분. 검사를 마치고 기억에 남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둘 다 입을 모았다. 10분 뒤 결과지를 갖고 온 고샘은 미소를 머금고 결과지를 펼쳤다. “결과가 재밌어요. 일단, 선주의 흥미를 보면 ‘진취형’이 가장 높고, 다음으론 ‘사회형’이 높아요. 흥미가 비교적 뚜렷합니다. 적합한 분야는 관리, 경영, 언론 쪽이 높고요. 시이오(CEO) 같은 관리자가 잘 맞을 거 같아요. 반면 재성이는 흥미가 뚜렷하지 않아요. 관습형이 가장 높게 나오긴 했는데 다른 유형과 큰 차이는 없네요.” 순간, 환자가 의사에게 묻듯 얼른 되물었다. “그럼, 안 좋은 거예요?”(재성) “이걸 해도 되고, 저걸 해도 되는 친구들 있죠.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특정 분야엔 관심을 안 보이는 경우죠. 하지만 흥미는 노력을 하면 점점 한 분야로 좁혀지게 돼 있어요. 참고로 관습형에게 어울리는 직업은 회계나 사무 분야죠.” “맞아요. 서류 정리 같은 거 잘해요.”(재성) “나는 그런 거 절대 못하는데….”(선주) “그럼 한 사람은 사장, 한 사람은 직원으로 일하면 되겠네.” 고샘의 재치 섞인 한마디에 모두들 웃었다. 직업 가치관 검사 결과도 차이점이 명확하게 보였다. 한 사람(선주)은 ‘타인의 인정’을, 한 사람(재성)은 ‘직업 안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기자가 꿈이었던 우리.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걸 보니 우리가 그동안 너무 제한된 범위 안에서 진로탐색을 하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조언"청소년들, 자신이 뭘 할지 몰라요"
40분쯤 지났을까. 각자의 흥미와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고샘과 우리 사이에 어느새 친근함이 감돌았다. 한국직업정보시스템(know.work.go.kr)에서 진로직업 커리어 상담 업무도 맡고 있는 고샘은 청소년들의 진로 고민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비슷하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있는 거죠.”
5시. 일어나려던 차에 ‘기자 정신’이 발휘됐다. 청소년 독자들이 개인적으로 이런 상담을 받을 순 없을까. 고샘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상담이 이곳의 ‘공식적인 업무’”라고 했다. “자신이 속한 지역의 고용지원센터(www.work.go.kr/jobcenter)에 연락해 진로직업 관련 담당자를 찾으면 됩니다. 모두 무료고요. 단, 취업 업무를 주로 하는 곳이니까 일하시는 분들도 학생들 방문이 익숙하진 않을 겁니다. 혼자보단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함께 가는 게 좋을 거예요.” 센터에선 이밖에도 직업탐색 활동 가운데 하나로 청년층 직업지도 프로그램(CAP+)도 무료로 운영중이라고 한다. 야간자율학습을 빠진 보람이 있었던 하루였다. 받아온 결과지를 보며 직업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고샘의 충고가 떠올랐다. “이 결과를 직업 선택의 결정적인 단서로 사용하는 건 금물입니다. 직업탐색을 위한 출발점 정도로 활용하는 거죠.” 백선주 <아하! 한겨레> 1기 학생기자(서울 명일여고 2)
박재성 <아하! 한겨레> 2기 학생수습기자(서울 구현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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