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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교육방송 수능출제 70%까지 올리겠다”공교육 포기 선언

등록 2010-03-28 19:57수정 2010-03-28 19:58

정부가 ‘사교육 잡기’에 교육방송을 끌어들였다. 지난 3월11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교육방송 수능강의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연계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업무협약식에서 “현재 30% 수준인 교육방송 강의의 수능 출제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19일, 대통령까지 나섰다. 서울 도곡동 교육방송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교육방송 수능 강의만 받고도 얼마든지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제도로 가자”고 강조했다.
정부가 ‘사교육 잡기’에 교육방송을 끌어들였다. 지난 3월11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교육방송 수능강의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연계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업무협약식에서 “현재 30% 수준인 교육방송 강의의 수능 출제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19일, 대통령까지 나섰다. 서울 도곡동 교육방송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교육방송 수능 강의만 받고도 얼마든지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제도로 가자”고 강조했다.
1년내내 봐야 할 교재 115권
스타 강사 강의만 들어야 할판
학교수업은 ‘뒷방 늙은이’ 전락

수험생 모든 교재 보는건 불가능
학원가 벌써 ‘요점정리’ 기획중
결국 사교육 의존할 수밖에 없어
교육방송 수능강의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 현장은 이 방안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현실적으로 교육방송 강의 수와 교재 수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23일, 교과부는 “본시험 때 교육방송 수능강의 교재 115권에서 문제의 70% 이상이 연계돼 출제된다”고 범위를 좁혔다. 하지만 이 발표만 보더라도 학생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 봐야 할 교재 수는 100여권에 이르고, 교재와 함께 봐야 할 강의도 세 자리 숫자다. 충주고 3년 박래현군은 “방금 뉴스를 보니 100여권 안에서 출제한다고 나름 범위를 좁혔던데 그걸 언제 다 보고 있냐”며 “연계가 어느 수준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이 많은 걸 붙잡을 이유도 없고, 여력도 없다”고 했다.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선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 경감’ 카드로 나온 이번 방안이 사실상 공교육을 무력화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발표 뒤 교육방송은 50여명의 스타강사를 써서 강의 수준을 높이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 종로구 고교의 한 교사는 “사교육이 판치는 때 저소득층에게 균등한 기회를 준다는 뜻에서 사교육 강사를 일정 수준에서 기용할 순 있지만 70%라는 높은 반영률로 연계 출제한다면서 사교육 강사를 대거 등장시키고, 이걸 대부분의 학생이 보게 하는 건 결국 공교육이 졌다는 의미가 아니고 뭐냐”고 했다.

사교육 경감이 현실화할지도 미지수다. 이미 학원가는 교육방송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강남의 한 대형학원 관계자는 “교육방송 수능강의 수가 많은 탓에 핵심 내용을 요점정리한 상품도 구상중”이라고 귀띔했다. 박래현군은 “교육방송은 해설이 어렵단 얘기들이 많이 나왔었는데 이미 학생들 사이에선 교육방송 요점정리 학원 정보도 돌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의 한 고교 교사는 “사교육의 원인이 되는 ‘경쟁체제’를 없애야 할 텐데 왜 교육방송에 사교육을 경감하겠단 문패를 달았는지 우습다”며 “교육방송은 저소득층 등 상대적으로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제공하는 보완재 구실로 남겨둬야 하지 않냐”고 했다.

발표 뒤 의외로 학교 현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전북 익산에 사는 한 여고생은 “오늘도 예전처럼 보충수업 때 틀어놓고 보조교재로 활용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교육방송에서 수능을 어느 정도로 출제한다는 이야기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잠실여고 안연근 진학부장도 “연계 반영률이 높아지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서 부모들 사이에서 말이 많아진 것이지 올해 처음 나온 얘기는 아니다”라며 “몇 퍼센트이건 교육방송은 학교 현장에서 필수로 다 보는 교재로 알고 있고,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학부모들은 ‘교육방송 신화’에 동요하는 분위기다. 교육방송 수능강의와 수능시험의 연계 발표가 있던 주말, 고교생 자녀를 둔 가정에선 교육방송 수능강의와 누리집이 단연 ‘화제’였다. 고3 학부모 박지호(50·경기 고양시 일산)씨는 “딸은 인강을 안 보고 공부하는데 이번엔 대통령까지 나서서 말한 거고, 반영 숫자가 워낙 커서 당장 접속해서 다시 보게 됐다”고 했다. 실제로 교육방송 수능강의 누리집엔 주말에 접속자가 폭주했다. 14일, 수능강의 동시 접속자 수는 1만2743명을 기록해 평소보다 6배로 뛰었다. 피엠피 등을 통해 강의를 수강하는 동영상 내려받기 건수도 13, 14일 이틀간 총 100만938건을 기록했다. 교육방송 유규오 학교교육기획부장은 “전주 대비 134.3%라는 놀라운 증가세”라고 설명했다.

일부 학생들은 유난스런 부모의 반응에 종일 강의만 듣는 ‘강의의 노예’가 될까 걱정스러워한다. 서울 목동의 한 학부모는 “70% 연계 이야기까지 나온 마당에 수능방송은 당연히 봐야 하고, 그렇다면 나머지 30%가 관건인데 이 부분은 사교육에서 채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강원도 춘천의 한 여고 학생은 “언론 보도 뒤 엄마가 하도 난리를 쳐서 새벽부터 교육방송을 보고, 학교 가서는 수업을 듣고, 끝나고는 학원 강의를 들었다가 집에 와선 다시 교육방송을 보고 있다”며 “괜히 우리만 피곤해졌다”고 했다.

한편 이번 안이 나온 뒤 교육방송 내부 역시 술렁이고 있다. 교과부가 지난해 175억원이던 교육방송의 수능사업 지원예산을 올해 262억원으로 50% 이상 올리면서 나머지 다른 분야의 제작비가 깎이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방송의 한 프로듀서는 “262억원은 강사, 스튜디오, 교재, 관련 프리랜서 등에 들이는 비용이고, 기자재 사용료나 내부 인력에게 들어가는 비용 등은 포함이 안 된 것”이라며 “한국교육방송공사법상 교육방송은 학교교육 보완, 평생교육 지원, 민주적 시민교육 발전에 기여하도록 돼 있는데 자칫 사교육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입시 과잉 방송이 되고, 다른 방송은 제작비가 깎일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김승수 교수는 “수능방송을 공교육을 보완하는 취지대로 잘 할 경우엔 학생이 수월하게 공부하도록 하는 구실을 하겠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며 “채널 자체가 ‘수험채널’로 변질되는 건 걱정스러운 부분”이라고 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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