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고 이옥식 교장
한가람고 이옥식 교장
스포츠댄스 등 학생들이 교과목 선택해 공부
“국사·세계사 함께 가르치는 교재 개발해야”
스포츠댄스 등 학생들이 교과목 선택해 공부
“국사·세계사 함께 가르치는 교재 개발해야”
올해 개교한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율고)는 고교 입시 지형에서 ‘뜨거운 감자’다.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자율뿐 아니라, 제한적이지만 학생 선발권을 갖게 돼 기존 외고와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학교가 다양해졌다고 반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학 입시 경쟁도 버거운 상황에서, 고교 입시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한겨레>는 지난달 31일 서울시 양천구 목동의 ‘자율고’ 한가람고에서 이옥식(52·사진) 교장을 만났다. 한가람고는 지난해 서울 지역 자율고 가운데 가장 높은 9:1의 입학 경쟁률을 보였다. 또 지난해 11월 한 교육업체가 재학생 및 졸업생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 지역 고교만족도 조사 결과 5점 만점에 4.3점을 받아 서울과학고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그는 “1997년 개교 이래 꾸준히 차별화를 시도해 온 학생 중심 교육과정 운영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인정과 신뢰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 어머니가 재단이사장으로 계셨던 영등포여상(현 서울영상고) 수학교사가 됐다. 평교사로 10년 정도 일한 그는 1990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학교 경영을 맡게 됐다. 1991년부터 교장 직무대리, 1994년부터는 교장직을 맡고 있다. 이른 나이에 교장 직무를 맡게 됐다. “교장 직무를 맡은 첫해(1991년) 신입생이 정원 미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지난 10년 동안 통계와 사회 변화를 꼼꼼히 살펴봤다.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학령기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또 예전과 다르게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수도 급감했다. 컴퓨터 보급 확산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전산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상 졸업생들을 많이 뽑던 은행들이 대졸 출신자들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총체적 위기라 생각했다. 그래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기존 상업과를 시대 추세에 맞춰 정보처리과, 사무자동화과 등으로 바꾸고, 학급 수도 단계적으로 줄여갔다. 교과목 수도 단위 수 통합 등으로 23개에서 12개로 줄여나갔다. 상용영어 등 새로운 교과도 도입했다. 그러나 두 가지는 바꾸기 힘들었다. 교과서와 교사의 마인드였다. 두 경우 모두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1996년 새로운 학교를 꿈꾸게 됐다. 그게 오늘날 한가람고다.” 한가람고는 1997년 개교 첫해부터 통합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기마다 교원평가를 실시하는 등 선진적인 교육정책들을 누구보다 빨리 도입해 운영해 왔다. 언제, 어떻게 이런 통찰을 얻게 됐나? “1980년대 후반 남편을 따라 미국에 2년 정도 머문 적이 있다. 당시 첫째가 미국에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여러 사정으로 아이는 평소엔 한국 학교를 다니다 방학 땐 미국 학교를 다니게 됐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올라가던 때부터는 한국 학교만 다니게 됐다. 그러자 아이는 ‘한국 학교엔 안 가겠다’고 떼를 쓰고 울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한국 학교와 미국 학교가 어떻게 다르기에 아이가 이럴까’ 싶었다. 그래서 미국 학교의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 방식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먼저 미국 학교에선 교사들이 ‘나는 선생’이라며 군림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들의 마인드가 달랐다. 저녁 7시 이후 자연스러운 사친회(Parent-Teacher Association) 모임도 부러웠다. 무엇보다 교육과정을 학생들 처지에서 운영하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이 힘들어하면 과목 수를 줄이기도 하고, 학생들이 원한다면 해당 교과를 개설하기도 했다. 그래서 96년 말 새로운 학교를 구상하면서 학생의 학습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그 핵심에 놓았다. 당시 학교 운영 관련 법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했다. 다행히 당시 서울시교육감의 지원으로 ‘통합교육과정 시범학교’로 선정돼 꿈꾸던 학교를 설립할 수 있게 됐다.” 학교 누리집엔 개교 이래 성과로 ‘학생이 필요로 하는 교과목을 스스로 선택해 공부할 수 있는 선택형 교육과정 완성’을 제일 먼저 소개했다. 그리고 향후 비전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교육과정을 만들 것’이라 말했다. 어떻게 다른가? “한가람고는 개교 때부터 이과 학생이 문과 과목을, 문과 학생이 이과 과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미래엔 ‘통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후 학생들이 원하고,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긴 스포츠댄스, 영상미술, 합창합주 등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해 운영해 왔다. 현재 한가람고는 학생들의 다양한 시간표를 수용하기 위해 모든 교과를 ‘교과교실제’로 운영하고 있다. 대학처럼 학생들이 해당 교실을 찾아 수업을 듣는 것이다. 2009년 현재 한가람고 한 학년 328명 학생들의 시간표는 132가지나 된다. 그러나 이런 ‘선택형 교육과정’은 하드웨어의 완성일 뿐이다. 제대로 된 통합적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선 이에 걸맞은 소프트웨어, 즉 교재 개발이 필수다. 예를 들면 국사 따로 세계사 따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해 배울 수도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선 교사들이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있다.” 교원평가는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제도 정착에 어려움은 없었나? “사실 교원평가는 영등포여상 교장직을 맡으면서부터 시행했다. 당시 4000여명의 학생 가운데 10%를 표본으로 뽑아 교사의 학습지도 및 생활지도에 대해 평가하도록 했다. 평가가 낮은 경우는 대부분 학생을 함부로 대하는 교사들이었다. 평가가 정착된 이후 학생을 함부로 대하는 교사들이 줄기 시작했다. 한가람고는 좀 다르다. 교사들을 내가 직접 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원평가는 곧 나에 대한 평가가 된다. 다행히 대부분의 교사가 5점 만점에 4점 이상을 받을 정도로 학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특히 평가 항목 가운데 ‘선생님은 편애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한다’가 매번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게 뿌듯하다. 교원평가가 잘 정착되기 위해선 이 제도가 교사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교사를 위하는 것임을 먼저 설득해야 한다. 국가 단위 전시성 행정이 아닌, 학교 단위 자율에 대한 책무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재 상대평가에 의한 인센티브 차등지급 제도는 현장에서 시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한가람고는 일단 정부에서 요구하는 대로 상대평가를 실시한다. 이후 수업만족도가 3.5 이상이면 무조건 한 등급씩 올려준다. 이에 대한 인센티브는 재단에서 보조해 준다.” 한가람고가 꿈꾸는 것 가운데 하나가 ‘건실한 사학’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많은 사람들이 ‘사학 재단=비리의 온상’이라 여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한국적 상황이 그 배경에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 사학들은 학교 운영으로 돈 벌기 힘들다. 사학들 스스로 사학의 존재이유를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존재이유가 ‘돈’이 아닌 ‘명예’라면 그에 걸맞게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고 본다. 한가람고엔 학교 운영위원회를 제외한 어떠한 학부모 조직이나 모임이 없다. 학교장부터 모든 교사는 촌지 거부 서약서를 작성했다. 또 학교발전기금을 학급별로 일률적으로 할당 모금하거나, 다수로부터 걷어 학급 혹은 학년 대표 명의로 기탁하는 것 또한 금지돼 있다. 물론 개별적으로 학교발전기금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액수가 크지 않다. 2006년엔 약 7000만원, 2007년엔 약 4000만원, 그리고 2008년엔 약 2300만원이 들어왔을 뿐이다. 이 돈은 모두 학교교육활동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 구입에 썼다. 앞으로는 시설보다 학생활동을 지원하는 데 적극 사용할 생각이다. 학교발전기금을 포함한 학교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을 누리집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자율고가 외고에 이어 ‘제2의 귀족학교’가 될 것이라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신입생들을 조사해 보니 중식과 석식 지원 대상자 학생이 지난해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오히려 ‘친서민’ 학교가 됐다(웃음). 또 지난해와는 달리 과도한 사교육을 받은 학생도 많이 줄었다. 그래서 교사들의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학생들 또한 성적이 입학 초기엔 중하위권이었는데 최근 평가에선 중상위권으로 올라섰다. 성실하고 동기부여가 잘됐기 때문이라 본다. 솔직히 ‘이미 우수한’ 아이들에 대한 욕심은 없다. 다만 공부할 자세가 안 된 상태로 학교에 온 아이들을 보면 답답하다. 면접 등을 통해 이런 아이들은 걸러내고 싶은 마음은 있다.” 글·사진 조동영 기자 dycho197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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