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겐 인권이 없다고 합니다. 수험생의 고달픈 생활을 적절하게 잘 표현한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학기 초 학부모 간담회 자료를 보니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의 꽉 짜여진 시간표를 보면서 이 말을 실감했습니다.
제 큰 아들 녀석이 고3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지마자 눈곱도 떼지 않고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습니다. 먹는다는 말보다는 입에 댄다는 말이 맞습니다. 아침이라고 해봤자 밥 한 두 숟가락 뜨거나,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조금 일찍 일어나 먼저 씻고 밥을 먹으라고 하지만, 자기는 아침에 몇 분이라도 더 자는 것이 더 좋답니다. 이렇게 시작한 하루의 일과는 다음 날 밤 2시가 되어서야 끝납니다.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정규수업과 자율학습을 하고, 이후에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2시가 되면 집에 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험 때가 되면 이 시간은 더 연장이 되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침에 아이를 보지 못하면 하루에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근래에 하루에 한번 ‘아들 얼굴보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 녀석이 점심과 저녁을 학교에서 해결하는데, 고등학생의 왕성한 식욕을 채우기는 역부족이지요. 또 단체로 먹는 급식이라는 것이 집에서 먹는 밥과는 달라 쉽게 배가 꺼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내가 11시 넘어 독서실에 간식(주로 우유와 샌드위치 종류)을 가져다주곤 하는데 그것을 제가 하기로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배달(대화가 거의 없음)만 하고 왔는데, 이제는 아들과 몇 마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배달 가기 전 컴퓨터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소식(특히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의 프로축구소식)을 챙겨, 아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인데 인권이 없는 고3이 되다보니, 하는 것(물론 1학기까지는 학교 체육시간에 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인터넷 검색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통분모가 생기니 서로 어색하지 않게 몇 마디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더라구요.
우리 아들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학생들이 이렇게 하고 있을 겁니다. 학교와 학원 또는 학교와 독서실이 그들이 누리는 공간의 전부일 것입니다. 집은 말 그대로 잠만 자는 곳. 이렇게 해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은 소수일 뿐이고, 설사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학생은 더 소수일 것입니다. 입시전쟁도 만만치 않지만 요즘은 취업전쟁이 더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비교적 쉽게 대학에 진학을 하였고 또한 취업걱정을 하지 않은 세대입니다. 지금의 상황과는 천양지차지요. 시대를 잘 태어난 것이지요. 작은 아들 녀석이 또 고1입니다. 아직 큰 아들 만큼은 긴장감이 없는데, 곧 형 따라 가겠지요? 그래서 앞으로 최소 3년간은 배달맨 생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0년을 살아가는 평범한 아버지로서 제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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