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고3 아들 얼굴 보기위해 배달맨이 되다

등록 2010-04-23 11:35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겐 인권이 없다고 합니다. 수험생의 고달픈 생활을 적절하게 잘 표현한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학기 초 학부모 간담회 자료를 보니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의 꽉 짜여진 시간표를 보면서 이 말을 실감했습니다.

제 큰 아들 녀석이 고3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지마자 눈곱도 떼지 않고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습니다. 먹는다는 말보다는 입에 댄다는 말이 맞습니다. 아침이라고 해봤자 밥 한 두 숟가락 뜨거나,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는 것이 전부입니다. 조금 일찍 일어나 먼저 씻고 밥을 먹으라고 하지만, 자기는 아침에 몇 분이라도 더 자는 것이 더 좋답니다. 이렇게 시작한 하루의 일과는 다음 날 밤 2시가 되어서야 끝납니다.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학교에서 정규수업과 자율학습을 하고, 이후에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2시가 되면 집에 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험 때가 되면 이 시간은 더 연장이 되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침에 아이를 보지 못하면 하루에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근래에 하루에 한번 ‘아들 얼굴보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 녀석이 점심과 저녁을 학교에서 해결하는데, 고등학생의 왕성한 식욕을 채우기는 역부족이지요. 또 단체로 먹는 급식이라는 것이 집에서 먹는 밥과는 달라 쉽게 배가 꺼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내가 11시 넘어 독서실에 간식(주로 우유와 샌드위치 종류)을 가져다주곤 하는데 그것을 제가 하기로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배달(대화가 거의 없음)만 하고 왔는데, 이제는 아들과 몇 마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배달 가기 전 컴퓨터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소식(특히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의 프로축구소식)을 챙겨, 아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인데 인권이 없는 고3이 되다보니, 하는 것(물론 1학기까지는 학교 체육시간에 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인터넷 검색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통분모가 생기니 서로 어색하지 않게 몇 마디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더라구요.

우리 아들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학생들이 이렇게 하고 있을 겁니다. 학교와 학원 또는 학교와 독서실이 그들이 누리는 공간의 전부일 것입니다. 집은 말 그대로 잠만 자는 곳. 이렇게 해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은 소수일 뿐이고, 설사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학생은 더 소수일 것입니다. 입시전쟁도 만만치 않지만 요즘은 취업전쟁이 더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비교적 쉽게 대학에 진학을 하였고 또한 취업걱정을 하지 않은 세대입니다. 지금의 상황과는 천양지차지요. 시대를 잘 태어난 것이지요. 작은 아들 녀석이 또 고1입니다. 아직 큰 아들 만큼은 긴장감이 없는데, 곧 형 따라 가겠지요? 그래서 앞으로 최소 3년간은 배달맨 생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0년을 살아가는 평범한 아버지로서 제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