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
공고 나왔지만 고시합격 수기 읽고 공부
철학·역사학 등 책에 빠져 ‘학문의 길’로
“현 교육제도 감성·상상력 키우는데 한계”
한양대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
철학·역사학 등 책에 빠져 ‘학문의 길’로
“현 교육제도 감성·상상력 키우는데 한계”
한양대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
스스로를 ‘지식생태학자’라 부르는 유영만(49·사진)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는 평범치 않은 청소년기를 보냈다. 남들 쉽게 가는 중학교도 홀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짓느라 1년 늦게 갔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는 서울에 있는 공고에 진학했다.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하던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건 ‘한 권의 책’이었다. <한겨레>는 지난 12일 한양대에서 ‘직선’보다는 ‘곡선’의 삶을 사랑하는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력을 보니 공업고등학교(현 ‘전문계고’)를 나왔다. 고교 시절은 어땠나? “학교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다. 쇳덩어리를 깎고 다듬고 용접하는 일 등이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황이 시작됐다. 그러다 고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충격이 컸다. 현실에 대한 막막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학교에선 별것 아닌 일이 커져 ‘후배 구타 사건’의 주동자가 돼 무기정학을 당했다. 막다른 궁지에 몰리니 ‘혼자 살 수 있을까?’란 두려움보다 ‘혼자 살아야겠다’는 절박함이 더 컸다. 일단 졸업부터 하자고 맘먹었다.” 유 교수의 책 <청춘경영>을 보면 “방황을 해봐야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청년들에게 권했다. 고교 시절로 방황을 끝냈나? “아니다. 당시 공고생들은 용접 기능사 자격증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한국전력공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평택화력발전소 운전 기능공이 됐다. 여기서 대학 나온 사람과 고등학교만 나온 사람에 대한 차별을 경험하게 됐다. 사실 고교 시절 내내 ‘나도 언젠가 대학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사회에 나와 보니 이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입사 1년 후쯤 혼자 술을 마시다 술집 유리창 너머로 서점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책을 읽고 싶은 생각에 서점으로 들어가봤다. 어슬렁거리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란 고시합격 체험수기에 손이 갔다. 책을 훑어보던 중 공고 졸업생이 고시에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이 나온 글을 읽게 됐다. 잠시 멍해졌다. 공고 출신이 고시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로 ‘고시합격’이란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독학으로 고시 패스할 자신은 없어 우선 법대 갈 생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실제 대학 진학 과정에서는 교육공학과를 선택했다.
“애초 사법시험이 목표였기에 당연히 법학과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학력고사(현 ‘수능’)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애초 목표를 너무 높이 설정했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행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는 행정학과를 알아봤다. 이 또한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교육행정고시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당시로선 생소했던 교육공학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방황은 계속됐다. 대학에 들어가면 뭔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별반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장학금 때문에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재미를 못 느꼈다. 이때 같이 공부하던 한 선배가 틈틈이 철학, 역사, 사회학 등 다방면의 책들을 권해줬다. 처음으로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들게 됐다. 무궁무진한 지식의 세상을 경험하고 나니 ‘고시’가 시시해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평생 공부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겠다’ 싶었다. 이후 마음을 다잡고 학문의 길을 걷게 됐다.” 삶에 영향을 미친 책 3권을 꼽는다면? “먼저 이규호 전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앎과 삶>이다. 독일철학의 해설서라 할 수 있는데 앎의 본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삶의 방정식’은 앎(지식)과 삶(행동)이 모두 옳음이라는 가치를 추구할 때 풀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은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와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줬다. 다음으로 이홍우 전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의 <교육의 목적과 난점>이다. 사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교육공학(Educational Technology)은 교육보다 공학(Technology)에 치우친 감이 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보다 교육현장에서 컴퓨터나 인터넷 활용 등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건가에 치중됐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교수님의 책은 교육의 본질에 대해 깊이 알게 해 줬다. 특히 교육에선 행동(doing)의 변화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seeing)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했다. 마지막으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강의>를 꼽고 싶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관계론’은 내 학문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상은 ‘개체’로 이뤄진 게 아니라 ‘개체와 개체 사이의 관계’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감옥을 가게 되더라도 나 혼자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나와 관계된 사람들의 아픔도 함께 감옥에 간다는 것이다. 미국 유학 시절 인적자원개발(HRD, Human Resource Development)에 대해 배웠다. 나는 당시 인적자원개발 관련 책들을 ‘쓰레기’라 생각했다. 왜냐면 사람을 ‘자원’으로 생각하고, 개발 또는 착취할 생각이 근간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HRD’를 인간관계개발(HRD, Human Relationship Development)이라 새롭게 정의했다.” 스스로를 ‘지식생태학자’라 부른다. 생소한 말이다. 왜, 어떻게 붙이게 됐나? “최근 ‘지식’ 또는 ‘지식경영’ 등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데 여기엔 오해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정보(information)와 지식(knowledge)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이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 정보는 다량으로 생산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으며,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은 그렇지 않다. 왜냐면 지식은 사람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최고로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사람이 자신의 김치 담그는 비법을 책으로 냈다고 하자. 그 책 속에 들어 있는 대로 따라해도 그 사람이 담그는 김치 맛과는 여전히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손맛’이다. 손맛은 매뉴얼로 전수할 수 없다. 손맛은 오로지 사람과 사람의 접촉, 무수한 시행착오,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서만 체득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남의 ‘정보’를 내 ‘지식’으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육화(肉化) 또는 체화(體化)를 통해서 몸에 새기는 것뿐이다. 삼성인력개발원을 나올 때 그곳 사람들이 내가 5년 동안 몸으로 익힌 ‘지식’을 다 놓고 가라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사용했던 ‘하드디스크’를 놓고 왔을 뿐이다. 지식은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관리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창출하고, 공유할 ‘조직’이다. 나는 이런 조직을 ‘지식숲’이라 부른다. ‘지식숲’인 조직의 문화와 제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지식의 창조·활용·공유 등 선순환 여부가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생태학 관련 책들을 두루 읽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 ‘지식숲’을 어떻게 잘 관리할지 연구하는 ‘지식생태학자’로 부르고 있다.” 최근 관심 갖고 연구하는 분야는 무언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감동과 행동’에 대해서다. 오랫동안 인류는 이성이 감성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왔다. 감성은 감정의 기복에 따라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세상을 이끄는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사람이다. 이성은 결론을 낳지만, 감성은 행동을 낳기 때문이다. 이성보다 감성을, 논리보다 관계를 우위에 둘 때 새로운 깨달음과 상상력이 펼쳐진다. 이런 점에서 현재 제도교육권의 꽉 짜인 프로그램으론 사람들의 감성이나 상상력을 키울 수 없다. 다음으로 , ‘곡선과 직선’에 대해서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모두 곡선에서 나온다. 곡선의 여정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궤적이 성취감을 더욱 크게 해준다. 그러나 불행은 곡선을 직선으로 만들려는 데서 온다. 직선은 효율과 속도를 중시한다. 빨리 갈 수 있지만 행복하지 않다. 현 한국 교육사회의 불행도 ‘명문대, 대기업’과 같은 ‘직선’으로만 달리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본다. 2등은 물론, 1등도 행복하지 않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젊음의 탄생>에서 “360명이 360도의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360명 모두 일등이 될 수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넘버원’ ‘베스트원’이 아니라 ‘온리원’의 독창성을 확증하는 경주”라고 말했다. 돌아가는 곡선의 삶을 살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my way)을 찾아 하는 게 행복하다. 숨겨진 재능(talent)에 재미가 붙어 몰입하게 되면 행복해지고, 이 재능(才能)이 후에 기능(技能)이 되고, 더 나아가 예능(藝能)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 조동영 기자 dycho197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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