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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입시에 불리한 인문·사회·기초과학 과목 ‘휘청’

등록 2010-09-12 16:50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한 장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한 장면
지구과학·지리·윤리 등 학생 기피 불보듯
특정과목 편중 심화로 전인교육 무색해져
교육현장 ‘수능 개편안’ 비판 목청

이번 수능 개편안에 따라 사회탐구는 11개의 시험 과목이 6개로 통합되고 과학탐구는 8개에서 4개로 줄어들게 됐다. 현재는 사회·과학탐구영역에서 최대 4과목까지 응시할 수 있지만, 개편안에 따라 각각 1과목만 선택할 수 있다. 제2외국어·한문 영역은 수능에서 제외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사회·과학 탐구영역 담당 교사들은 수능 개편안이 ‘개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분당 이매고 전미란 지구과학 교사는 “과학탐구 과목 가운데 3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과반인 네 반 모두 화학과 생물을 택한다”며 “주요 대학의 의·치대를 가기 위해서 지구과학은 잘 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전 교사는 “어느 정도 인원이 모여야 수업을 개설할 수 있는데 지구과학은 한 반만 운영된다”며 “생물과 화학을 가장 많이 택하고 물리, 지구과학 순”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사는 지구과학이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보니 앞으로는 과목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났다. 지구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적으면 관련 학과도 위기에 놓일 수 있다. 전 교사는 “천문학이나 기상학에 관심 있는 학생도 많은데, 학교에서 개설해 주지 않으면 배우고 싶어도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이 흔들리면서 국가 연구기관 인력의 공백도 불가피해질 것이다. 전 교사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Ⅰ을 모두 필수로 배우게 하고, 3학년 때 자기가 관심 있는 과학 과목의 Ⅱ과정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학에 대한 기초지식도 쌓을 수 있고 자기 적성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시에 유리한 과목만 따라가는 이기적인 교육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2014학년도 수능 개편안에 따라 국영수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이 예상되고 있다. 사회와 과학탐구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관련 교과목은 더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2014학년도 수능 개편안에 따라 국영수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이 예상되고 있다. 사회와 과학탐구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관련 교과목은 더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선택과목 수는 축소됐지만 학습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도 아니다. 이미 2012학년도부터 사회·과학 탐구영역의 최대 응시 과목 수가 각각 3과목으로 줄어들었다. 2014학년도 수능에서는 1과목을 택할 수 있지만,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Ⅰ,Ⅱ가 하나로 통합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2과목을 공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남서고 임진 생물 교사는 “2014학년도 수능 개편안에 따라 탐구영역은 20문항 30분에서 40문항 60분으로 늘어났다”며 “생물Ⅰ,Ⅱ를 모두 공부해야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만큼 학습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 교사는 “지금과 같은 제도에서 인문계 학생은 과학 과목을 더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며 “특정 과목에 편중된 교육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회탐구 과목은 설 자리가 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인문교육의 기본 토대가 흔들리면서 전인교육도 무색해질 전망이다. 분당고 신동하 역사 교사는 “국영수가 도구과목이라면, 사회 과목은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는 기초지식을 쌓게 한다”며 “국영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토론 수업이 가능한 게 사회 과목인데 이런 기회조차 더 줄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교과모임연합 진영효 의장(상암중 교사)은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쌓아야 할 역량을 균형있게 배워야 하는데 탐구과목 축소로 학생들의 사고력과 지적 호기심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사회 과목은 한 학기에 하나씩만 배울 수 있다. 한 학기에 국영수를 기본으로 8개 이하의 과목을 편성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신 교사는 “큰 학교는 반을 나눠서 사회 과목을 편성할 수 있지만 작은 학교의 경우 교사가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가르쳐야 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들간의 소통이 중요한데, 사회 담당 교사의 경우 담임을 맡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담임을 맡더라도 학생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반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제대로 알기가 힘들 것이다. 박찬구 서울대 교수(한국윤리학회 부회장)는 “학교 현장의 문제점을 고려하지 않고 졸속으로 밀어붙인 교육과정 탓에 학교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집중이수제로 전학을 온 학생이 배워야 할 교과를 이미 끝낸 학교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탐구와 마찬가지로 사회탐구도 특정 과목에 몰릴 우려가 크다. 지리나 윤리 등은 2과목 이상을 공부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 2014학년도 수능 개편안은 수험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와 과학탐구는 두 차례 시험에서 다른 과목을 택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두 번의 시험 점수 가운데 좋은 점수를 제출하게 한다면 점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단일 과목에 집중할 것이다. 서울 ㄷ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대학에서도 사회·과학탐구를 잘하는 학생이 필요한데 탐구영역의 비중을 지나치게 줄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회, 과학 과목에 대한 기초지식 부족이 대학 교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지원하는 학과나 단과대별로 필요한 교과목을 이수하게 하거나 입시에서 가산점을 준다면 고교 교육이 지금과 같이 왜곡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영수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과목을 배우면서 기초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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