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김 교사의 하소연
‘정교사 시험’ 통과해도…대가 거절하자 임용 취소
여러학년 맡겨 업무 과중…동료·학생 교권인정 안해
‘정교사 시험’ 통과해도…대가 거절하자 임용 취소
여러학년 맡겨 업무 과중…동료·학생 교권인정 안해
지난 6일 서울의 한 사립 고교 앞. 수백명의 교원 임용시험 수험생들과 함께 교문을 나서는 김정민(가명·32)씨의 표정은 잔뜩 메말라 있었다. 김씨는 이날 1명을 뽑는 이 학교 영어 정교사 임용 필기시험을 치렀다. 합격하면 이 학교는 김씨의 네번째 일터가 되지만, 시험을 통과하기는 바늘구멍이다.
수도권의 한 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김씨는 영국에서 1년6개월 동안 석사 과정을 밟고, 2008년 초 귀국했다. 그해엔 정교사 채용이 끝나 사립 ㄱ고에서 기간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불안정한 노동조건이었지만 연말에 있을 정교사 시험만 기다리며 꾹 참았다.
김씨는 2008년 12월 사립 ㄴ고 영어 정교사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기쁨은 짧았다. 출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ㄴ고 교장은 “이번에 정교사 발령을 내는 교사도 2년 동안 기간제 생활을 먼저 했다. 당신은 정교사 시험을 통과했으니 1년만 하면 정식 발령을 내주겠다”고 했다. 이미 그해 다른 학교의 정교사 채용은 끝난 상태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두번째 기간제 교사 계약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심화학습반 수업을 마치면 퇴근은 밤 9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한 학년만 가르치는 정교사와 달리 기간제 교사는 여러 학년을 맡아야 해 교재 연구만 2~3배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기간제 교사에게 불만 표출은 금기였다.
2학기 중반께 한 선배 교사가 김씨를 불렀다. 그는 “교무부장에게 가면 내년 발령에 대해 얘기해줄 텐데, 이번 명절 때 부장교사들이 이사장과 교장에게 ‘인사’를 한다더라”라고 귀띔했다. 김씨는 “사립고에 가려면 얼마가 필요하다더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당혹스러웠다. 잠시 고민했지만 그런 식으로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거절의 대가는 컸다. 며칠 뒤 학교 누리집에 영어 정교사 채용 공고가 게시됐다. 김씨는 교장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따졌지만, “1년 기간제를 하면 바로 발령을 낸다고 말하지 않았다. 일단 다시 시험을 보라”며 말을 바꿨다.
가까스로 ㄷ고에 다시 기간제 교사로 채용된 김씨에게 기간제에 대한 차별은 더 아프게 다가왔다. 정교사들은 ‘어차피 1년 있다 갈 사람’으로 취급하며 회의나 회식도 따로 했다. 학부모들은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 열심히 안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했고, 학생들은 교권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학교 낭인’ 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자신과 주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내년에는 교육과정 개편으로 국·영·수 기간제 교사 채용이 더 늘어날 겁니다. 기간제 동료와 한잔할 때면, ‘계약 만료 시점인 2학기 말이 되니 같은 술인데도 더 쓰다’며 서로 자조하곤 합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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