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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민초들 입에서 동학 일화 술술…새로운 사실도 발굴 / 이이화

등록 2011-01-26 18:44

1990년대 초 동학농민전쟁 유적지 답사 기행에 나선 필자(오른쪽)가 전남 장성 오룡동 토말마을에서 1894년 황룡전투 당시 신무기인 ‘장태’를 만든 농민군 이춘영의 큰아들 이규익(왼쪽)옹으로부터 장태의 재료인 대나무와 관련한 증언을 듣고 있다.
1990년대 초 동학농민전쟁 유적지 답사 기행에 나선 필자(오른쪽)가 전남 장성 오룡동 토말마을에서 1894년 황룡전투 당시 신무기인 ‘장태’를 만든 농민군 이춘영의 큰아들 이규익(왼쪽)옹으로부터 장태의 재료인 대나무와 관련한 증언을 듣고 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77
1990년대 초 5년 남짓 동학농민전쟁 유적지 답사에서 건진 큰 소득의 하나는 민초들 사이에 면면히 흘러내려온 새로운 증언들이었다.

전봉준 생가가 있는 고창 당촌마을의 노인들은, 평소에 전봉준의 은밀한 행동을 일러주었다. 전봉준은 나들이를 할 적에 혼자 다니지 않고 늘 부하 몇 명을 데리고 다녔다 한다. 전봉준은 밤에 남의 집을 방문했는데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한 사람씩 방으로 들어가면 그 집 주인 말고는 함부로 그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다. 또 부인네들이 밥을 지어 낼 적에도 방 안의 손님들이 산가지를 방 바깥에 내놓으면 그 숫자대로 밥그릇을 담아 냈다고도 한다.

목천(지금 천안시에 속함) 세성산전투는 공주전투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 산에는 농민군의 피가 흘러 계곡의 냇물을 이루었다는 말이 전해지며 이때부터 주민들은 세성산에 주검이 성처럼 쌓였다고 해서 시성산(屍城山)이라 고쳐 부른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또 그 언저리 주민들이 동학을 조롱해서 ‘시천주 조화정 말이 지게 송장 짊어지고 어느 대강 건너가리’(이원표 증언)라는 동요가 있었다고 한다. 또 이곳 농민군 지도자인 이희인의 손자 이호익옹을 만나서는, 조부가 전투에 나가기에 앞서 산소 자리를 미리 잡아두었다고 했으며 과로로 가래톳이 나서 도망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잡혀 처형되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이런 얘기들은 사료에 나오는 정황과 맞아떨어졌다.

청주 모충사에서는 사료에서 빠진 중요한 얘기를 듣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농민군에 희생당한 청주병영의 관군 70여명의 위패를 보관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그곳 집지기는, 당시 관군들이 출동해서 대전 언저리에 있는 강외에서 농민군 친구들을 만나 술을 진탕 얻어먹고 어울려 놀다가 몰살했다고 전해주었다. 관군 한명만이 농민군 친구의 주선으로 겨우 살아 돌아왔다고도 했다. 기록에는 농민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죽었다고 했지만 전투중이었다면 몰살이 되기 어려울 것이니 이 말이 사실일 것이다. 그 뒤 이 집지기는 다시는 이 말을 하지 않았으며, 관군의 후손들로부터 호되게 나무람을 받았다고 일러주었다.

장성전투 지역을 돌아볼 때 ‘이장태’라 불렸던 이춘영의 아들인 이규익(장성 오룡동 토말거주)옹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장태를 만들어 전투에 사용했는데 그 재료인 대나무를 장성 두정리 가정부락의 부호 송씨 댁에서 베어다가 썼다고 일러주었다. 그 모양도 “타원형으로 짚을 뭉쳐 대나무를 곁에 대고 그 밑에 바퀴를 달고 그 뒤에 엎드려 밀고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 관군이 쏘는 총탄이 장태에 박혔다는 것이다. 다른 기록보다 정확한 설명이었다.

논산의 어느 노인당에서는 전봉준이 농민군을 이끌고 계룡산 옆을 지나면서 “닭고기와 개고기를 먹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곧 닭고기는 농민군이 계룡산의 운수를 받고 일어났으니 그 정기를 보존하기 위해 먹지 말라는 것이요, 개고기를 먹으면 사람의 정신을 혼란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전봉준은 농민군의 기율을 잡기 위해 민가에 들어가 함부로 가축도 잡아먹지 못하게 했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또 논산 노성면에 있는 윤증 종가에서는 그 종부의 증언을 들었다. 그는 어느 때 전봉준이 와서 머물 때 사용하다 놓고 갔다고 들었다며 담배함을 보여주었다. 농민군이 공주에서 후퇴할 때 이 집의 사랑채에 불을 질렀으나 곧바로 꺼 보존이 됐다며 불탄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강릉 선교장에서는 농민군 토벌기록 두 가지를 발견했다. 그 집 종부의 협조를 받아 복사를 했는데, 내용을 검토해보니 당시 선교장 주인인 이회원은 강릉부사로 임명되어 농민군을 반격하면서도 보호하려 노력했다. 훗날 한국의 집(코리아하우스)에서 강좌를 열었을 때 내가 선교장의 사례를 소개했더니 그 종부는 감동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강릉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며 들었다. 그는 내게 선교장의 안내비문에 이희원의 일화를 기록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이런 구전 전설과 얽힌 일화들은 바로 구비문학이었고 민중의식을 반영하는 보고였다. 관변이나 점잖은 글쟁이들이 그럴싸하게 적어놓은 기록과는 다른 정서를 자아낸다. 결코 100여년 동안 입을 닫고 살았던 ‘무지렁이’들이 벌이는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또 현장에서는 근대사와 현대사의 모순과 갈등이 얽혀 있는 모습이 곳곳에 나타나 의식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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