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국회 바른정치실천연구회 소속 의원들의 초청 강사로 일본 쓰시마 기행에 나선 필자와 일행이 덕혜옹주가 살았던 쓰시마 도주의 고택 앞에서 함께했다. 왼쪽부터 신기남·정동영·정동채·천정배·송영길·이미경·임종석·이종걸·이강래 의원과 필자.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91
2001년 1월 2박3일 일정으로 국회 바른정치실천연구회 회원들과 쓰시마 기행을 다녀왔다. 신기남 회장을 비롯해 이강래·이미경·천정배·송영길·이종걸·임종석·정동영·정동채 의원과 김형식 비서관 등이었다. 나는 ‘한일관계 정립을 위한 한일역사탐방’이라 내건 이 기행에 초청 강사로 합류했다. 부산에서 쓰시마로 가는 배표를 구할 수 없어서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로 가서 1박을 하면서 주변 유적을 돌아보았다. 그런 다음 후쿠오카에서 다시 쓰시마로 가는 간이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관광을 목적으로 온 게 아니었지만 틈을 내서 쓰시마 일대를 돌아보았다.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끌려가 1931년 쓰시마섬 도주의 후예인 다케유키와 강제결혼해서 십여년간 살았던 저택을 둘러보았고, 최익현이 일본군에 잡혀 와서 아사한 곳에 세운 추모탑도 둘러보았으며, 조선통신사의 흔적도 찾아보았다.
일행은 저녁에 조선통신사를 비롯한 한-일 교류에 얽힌 내 강의를 듣고 나서 토론회를 열었다. 그 토론회의 주제는 어떻게 바른 정치를 펼 수 있나, 다음 대선에는 누구를 추대할 것인가 등이었다. 나는 ‘노무현을 밀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올 무렵 좀더 자유스럽게 얘기하라는 뜻에서 자리를 떠주었다. 그들은 아주 진지했다.
돌아올 때는 배편을 이용했는데, 정작 내 본강의는 부산 자갈치시장 횟집에서 이루어졌다. 서울행 비행기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자갈치시장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짬이었다.
의원들의 요청으로 ‘정조의 개혁’을 주제로 삼았다. 나는 정조가 보수세력의 완강한 방해를 무릅쓰고 신분 차별 및 노비 처우 개선, 부정부패 척결, 인권 신장 등 많은 개혁을 이룬 사실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이 강의를 귀담아들으면서 대단히 감동한 인상을 지었다. 훗날 정동영 의원은 내가 쓴 <정조의 나라 만들기> 책자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해 개혁정책에 시사를 주고자 했다.
그해 여름에는 다시 중국기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쓰시마 때 참여했던 이강래·이미경·정동채 의원이 빠진 대신 추미애 의원이 합류해서 모두 9명이었다. 6월7일 오전 10시발 시안행 아시아나항공기는 탑승한 지 2시간30분쯤 지나 시안공항에 내려주었다. 예전 신라의 승려와 청년들이 당나라 유학에 나설 때는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산둥반도에 상륙한 다음 걸어서 산시성 시안까지 오는 데 꼬박 6개월쯤 걸렸다는데, 신기하달 정도였다.
아무튼 우리 일행은 시안(서안)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성곽을 외면한 채 북쪽 옌안(연안)으로 내달아 7시간 만에 도착했다. 옌안은 중국 팔로군의 혁명 근거지였으나 중국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후진 지역이었다.
옌안의 거리 곳곳에는 중국 공산당의 혁명을 강조하는 ‘옌안 정신’을 표어로 내걸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팔로군 유적은 두 군데만 돌아보기로 합의했다. 곧 숙소인 옌안빈관 옆에 있는 봉황산 구지(舊址)와 옌안혁명기념관 두 곳을 돌아보고 조선혁명군정학교가 있었던 나가평 마을로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안내원은 나가평 이야기를 처음 들어서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연변 출신의 조선족인데도 도대체 이곳의 조선독립동맹이나 조선의용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시안을 찾아오는 남쪽 사람들은 거의 진시황 유적이나 신라 승려들이 활동했던 사찰을 돌아볼 뿐이라는 것이다.
원래 조선의용대는 난징 등 최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일본군이 우한을 점령한 뒤 국공갈등이 심화하자 41년 한쪽은 임시정부 산하로, 한쪽은 북상하여 팔로군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태항산 지구에서 활동하다 42년 조선독립동맹을 결성하고 그 산하에 조선의용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했다. 43년 일본의 공세가 강화되자 마오쩌둥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후방인 옌안으로 이동하게 했다. 그에 따라 44년 초 옌안으로 온 조선의용군들은 태항산 지구에 두었던 조선혁명군정학교를 나가평으로 옮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비록 팔로군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행사 때면 반드시 태극기를 내걸어 자주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역사학자
역사학자 이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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