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도 상위권 한정…성적따라 알짜-예비-잉여
[학교 성적순 차별 확산] 일반고 학생 줄세우기 백태
우수반 폐쇄적 운영 하고 신발장 배정도 등수 따라
학생간 반목 극심…인권위 “평등권 침해” 시정권고
고교선택제·일제고사 성적공개에 학교 “별 수 없다”
*알짜:1~50등 / 예비:51~100등 / 잉여:100등 밖
우수반 폐쇄적 운영 하고 신발장 배정도 등수 따라
학생간 반목 극심…인권위 “평등권 침해” 시정권고
고교선택제·일제고사 성적공개에 학교 “별 수 없다”
*알짜:1~50등 / 예비:51~100등 / 잉여:100등 밖
성적을 잣대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1등 지상주의 문화’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확대와 고교선택제 도입,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일제고사 성적 공개 등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정책이 잇따라 시행된 탓이 크다.
■ 성적순 반 편성 서울 강남지역의 사립 일반계고 ㅅ고는 지난해부터 ‘글로벌 리더반’이라는 성적 우수자반을 만들었다. 올해는 1학년과 2학년 전체 열 반 가운데 각각 네 반과 세 반을 글로벌 리더반으로 편성했고, 1학년 334명 가운데 160여명, 2학년 373명 가운데 120여명의 학생을 이 반에 배치했다. 분류 기준은 ‘성적 60%, 야간 자율학습 출석점수 30%, 교사 추천점수 10%’였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아이들은 글로벌 리더반을 ‘글리반’, 기타 반을 ‘비글반’이라고 나눠 부르고 있고, 비글반 학생들 사이에선 ‘우리는 학생도 아니냐’는 자조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석 달 동안 정규수업이 끝난 뒤 경영과 경제, 과학 등을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외부 강사를 초빙해 글로벌 리더반 학생 중심으로 수강신청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학부모들이 “글로벌 리더반에 배치된 과학 교사가 못 가르치니 교체해달라”고 요구해, 학교 쪽이 이를 수용하기도 했다.
이 학교의 2학년 학생은 “비글반 아이들은 글리반 아이들을 글로벌 쓰레기의 줄임말인 ‘글레기’라고 부르며 비하한다”며 “사회에선 공부뿐만 아니라 인성 함양도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학교에선 성적 중심으로 차별하고 있어 학교가 싫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학생은 “3학년 때라도 글리반에 들어가려면 학원을 더 다녀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서울 북부지역의 일반계고 ㅈ고 역시 ‘성적 우수 특별반’을 만들어 정규수업이 끝난 뒤, 이 학생들만을 위한 영어·수학 심화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 또 별도의 야간 자율학습실인 ‘면학실’을 두고, 내신성적이 15% 안에 드는 학생 가운데 50명만 추려내 이용하게 하고 있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면학실 앞의 운동화를 넣는 신발장도 성적순에 따라 배치를 해뒀다”며 “나는 면학실을 이용하고 있지만, 우리만 특혜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고 말했다.
서울의 ㄱ고가 운영하는 자율학습실의 경우, 성적순으로 자리를 배치해 오른쪽은 한 등이 높은 친구가, 왼쪽은 한 등이 낮은 친구가 앉게 돼 있다.
또 전교 10등 안쪽의 최상위 학생들이 앉는 책상은 더 넓고 사물함도 달려 있다. 과천의 한 학교는 “교육방송을 들으라”며 30등 이상의 학생 책상에만 컴퓨터를 설치해 주고 있다.
■ 기숙사도, 토론대회도… 경기도에 있는 일반계고 ㅇ고에서는 1~3학년 전교생 1800명 가운데 150명을 기숙사생으로 뽑으면서 ‘모의고사 60%, 내신 40%, 원거리 가산점 +2%’ 기준을 적용했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지역 명문으로 불리는 학교이기 때문에 버스로 1시간 이상 이동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은데, 기숙사를 성적순으로 배정하기 때문에 원거리 혜택을 받는 학생이 150명 가운데 9명밖에 없다”며 “기숙사가 부족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기준이 왜 성적이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의 자사고인 ㅇ고에서는 1~3학년 학생을 각각 30명씩 뽑아 ‘심화반’을 운영하면서, 해마다 ‘토론 캠프 대회’를 열어 심화반 학생들만 참석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학교 쪽은 심화반 학생 30명 대부분에게 상을 주지만, 심화반에 들지 못한 학생들은 참여 기회조차 없다.
■ “명백한 평등권 침해” 학교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속적으로 “평등권 침해”라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인권위는 2008년 5월 강원도 10개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국·영·수 성적 기준 ‘성적 우수자반’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생들에게 차별적인 분리교육을 행하는 것으로, 헌법 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 행위”로 규정하고 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같은해 2월 부산의 한 고교가 성적 우수자들에게만 야간 자율학습 공간인 ‘정독실’을 제공한 것을 두고도 “평등권을 침해한 차별 행위”라며 역시 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선 우수 학생을 선점하는 자사고가 늘어나고, 고교선택제가 도입되면서 어쩔 수 없이 우수 학생 중심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 ㅅ고 교장은 글로벌 리더반을 운영하는 까닭에 대해 “지난해부터 고교선택제로 학생들의 학교 선택이 가능해졌는데, 정작 학부모들 사이에선 ‘일반계고는 학습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여론이 팽배해 있다”며 “강남지역에서도 최하위권으로, ‘기피 학교’로 지목된 적이 있는 우리 학교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선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 순위 등 학교를 성적순으로 줄세우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우리 학교에선 잘해야 서울 중상위권 대학밖에 못 간다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라며 “수준별 이동수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글로벌 리더반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 “정부·지자체·언론 모두가 공범” 교육계에서는 자사고 증가와 고교선택제 외에 △교육과학기술부의 수능 성적 공개 △일제고사 실시 및 성적 공개 △명문대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고교 서열을 매기는 언론 보도 △교과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학력 우수 학교 중심 예산 편성과 특혜 지원 등을 ‘성적에 따른 차별’이 일상화하는 원인으로 꼽고 있다.
동훈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교과부는 일제고사 등의 성적을 높이는 학교와 지역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있고,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학교별 서울대 입학자 수와 수능 성적을 노골적으로 공개하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에선 지역 홍보를 위해 성적 우수 학생에게만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성적으로 차별하는 행위를 조심스러워했지만, 이번 정부 들어서는 아예 드러내 놓고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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