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하늘/카이스트 2년
잇단 자살과 학내 갈등이 휩쓸고 간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좀 봄이 오는 듯하다. ‘진리의 전당은 여기 없다’는 대자보가 있던 자리에 공개채용 포스터가 붙고, 취재진 수십명이 밤을 지새던 자리는 다시 학생들이 타고 온 스쿠터의 차지다. 문제를 진단하는 게시물이 하루에 1백개 넘게 올라오던 학내 인터넷 게시판도 이제는 ‘밥이 맛이 없다’ ‘도서관에 자리가 없다’는 글들이 몇 개씩 올라올 뿐이다.
분위기도 밝아지고 분규의 흔적도 사라진 교정이지만 핵심 쟁점에 관해서는 아직 바뀐 내용이 없다. 카이스트 사태가 남긴 과제에 대해 대학과 교육계의 치열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먼저, 목표에 대한 수단의 과잉이다. 서남표 총장의 ‘공부하는 학생, 연구하는 교수’라는 목표는 큰 지지를 얻었다. 징벌적 등록금, 전면 영어강의, 재수강 제한과 연차초과 억제 등의 수단을 쏟아내자,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럴수록 규제는 늘어가고 국민은 환호하는 순환구조가 계속됐다. 학생집회를 하고 대자보가 붙었으며 과도한 개혁에 반대하는 설문 결과도 발표되었지만 ‘개혁에는 항상 반대자가 있으며, 고통 없는 개혁은 없다’며 일축했다. 일본어마저 영어로 강의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이를 지적하는 여론은 드물었다.
독선적 대학운영에 짓눌린 민주적 절차도 문제다. 심의기구는 자문기구로 격하되었고, 대학 본관에는 간언하는 교수들이 사라졌다. 한 평교수는 “종신교수직을 아직 받지 않은 입장에서 정책을 비판하기는 두렵다”고 말하고, 학생들은 “(재작년 학교의 학생 고소 사태처럼) 이런 말 했다가 총장님께 고소당하는 거 아니야”라는 뼈 있는 농담을 한다. 이사회는 총장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이사진 일색이다.
서 총장이 강조하는 대학 경쟁력 강화의 근거도 의문이다. 카이스트는 국제화 지수, 논문 등재, 사회적 평판을 높이려 온갖 제도를 신설했다. 그러는 사이에 사제 관계는 단절되고 동아리 지원자는 급감했다. 중간고사 성적이 좋지 않아 차등 수업료를 내게 된 친구들이 진단서를 끊어 휴학하고, 과학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를 잃은 이들은 돈이나 벌자며 의사·변호사·금융투자사 등으로 진로를 틀었다. 이것이 진정 경쟁력 강화인가.
지난달 출범한 혁신비상위원회는 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함을 인정하고, 질식한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소생시켜 획기적인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카이스트 사태는 이 시대의 공통된 반성이자 고민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대학 모두는 ‘카이스트’다.
손하늘/카이스트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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