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 강화 방안 어떻게 봐야 하나
고등 ‘한국사’ 필수과목 지정
내년 고교 1학년부터는 필수로
교과서 바뀐 지 얼마나 됐다고
‘역사 교육과정’ 또 개편 예정
고등 ‘한국사’ 필수과목 지정
내년 고교 1학년부터는 필수로
교과서 바뀐 지 얼마나 됐다고
‘역사 교육과정’ 또 개편 예정
지난 4월22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역사교육’ 강화 방안으로 고등학교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내년 고교 1학년부터는 한국사를 필수로 배우게 된다. 이와 함께 초중고 역사 교육과정도 전면 개편된다. 역사교과서 개발을 맡게 된 국사편찬위원회는 올해 안으로 새로운 교과서 집필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자주 바뀌는 교육과정 개편으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새로운 교과서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또 교육과정이 바뀌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쓰인 ‘한국사’ 교과서는 2년도 채 안 돼 폐기될 운명에 놓였다. 내년 고교 1학년까지만 쓰이고 새로운 교과서가 2013년부터 도입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일부 보수 언론과 보수 단체들이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교과서 개편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사 교과서가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지나치게 근현대사 중심으로 기술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은 “한국사 교과서가 만들어진 배경을 잘 모르고 한 발언”이라고 비판한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원래 과목 이름은 ‘역사’였다. 2007 개정 교육과정은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등이 문제가 되자 ‘역사교육’ 강화를 내걸었다. 역사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자국사’ 중심의 역사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과목 이름도 기존의 ‘국사’에서 ‘역사’로 바꿨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2009 개정 교육과정을 서둘러 추진하면서 2007 개정 교육과정은 시행되지도 못했다. 모든 과목이 선택과목이 되면서 ‘역사’ 독립 교과 추진도 무산됐다.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조왕호 대일고 교사는 “교과서가 정부에 따라 바뀌는 것은 우려할 일”이라고 말했다. “2007 개정 교육과정은 역사학계의 오랜 고민을 담은 결과였습니다. 중학교 국사를 고등학교에서도 반복해서 배운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중학교 때는 전근대사 중심의 한국사 통사, 고등학교에서는 한국 근현대사 중심의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들었던 겁니다. 또 세계사적 맥락에서 한국사를 바라보기 위해 과목 이름을 ‘역사’로 정했죠. 하지만 교과부는 학습부담을 줄인다며 ‘한국문화사’ 과목을 없애고 ‘역사’를 ‘한국사’로 이름을 바꿔버렸습니다.”
‘역사’가 ‘한국사’로 이름이 바뀌면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한국 근현대사 단원은 줄고 전근대 단원이 늘게 됐다. 당시 정부는 교과서 집필진이 2년 동안 쓴 교과서 내용을 단 20일 만에 고치라고 했다. 결국 교과서 내용 구성이 바뀌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역사교육의 차별성을 꾀하는 데도 실패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교사와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됐다.
김인기 구로고 교사는 “교육과정이 자주 바뀌면서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과정을 시행하면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충분히 검토한 다음 개편을 시도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은 역사교육에 고민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론과 정부의 입김 때문에 바꾸고 있어요. 학생들이 실험 대상은 아니잖아요. 교사도 하나의 교과서를 여러 번 가르치면서 수업 노하우를 쌓아갑니다. 학생들의 반응을 보면 어떻게 수업을 해야겠다는 감이 생기게 됩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수업이 완성되는 거죠.”
교육과학기술부는 과거 국사 국정교과서를 만들었던 국사편찬위원회에 교과서 개발 주무를 넘겼다. 새로운 집필 기준을 정하기 위해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도 만들어졌다. 조왕호 교사는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검정체제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검정을 통과한 6종의 한국사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를 다시 국정체제로 돌리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일본만 해도 교과서 집필의 자율성이 상당히 보장되어 있어요. 우리가 비판하는 극우 성향의 교과서도 있지만 민중사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교과서도 있어 그 색깔이 다양합니다.”
하지만 ‘좌편향’이라고 보는 6종의 한국사 교과서는 모두 현 정부가 구성한 검정위원들의 검정을 받은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내용 감수도 받았기 때문에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곧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난 2008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논란을 겪으며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조 교사는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실증을 기반으로 쓰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역사교육을 강화한다면서 실질적인 내용은 전혀 바뀐 게 없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역사 수업 시수는 오히려 102시간에서 85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또 한 과목의 수업을 특정 학기나 학년에 몰아서 배우는 ‘집중이수제’ 실시로 역사교육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경기 고양시 행신고에 다니는 김정민(16)군은 “한국사를 일주일에 6시간씩 1학기에 몰아서 배우다 보니 중간고사 시험범위가 200페이지가 넘었다”며 “꾸준한 역사 공부를 하기도 힘들고 역사를 이해하기보단 외우기에 급급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의 기본 틀이 유지되는 한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실효를 거두기는 힘들어 보인다. 학교 선생님들도 역사수업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일주일에 4~6시간의 수업을 매번 새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수업 진도에 쫓기다 보니 새로운 형태의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다. 경기 성남시 분당고 신동하 교사는 “역사교육 강화 방안이 발표됐지만 학교 현장은 달라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 “1학기와 2학기로 한국사를 배우는 반을 나눠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학습 태도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게 현실이죠. 역사교육을 강화한다면 수업 시수를 늘려줘야 하는데 여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더군요.” 교과서를 개편하고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고 역사교육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이념을 강화하기 위한 역사교육 강화 방안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우선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웃나라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것만이 역사교육의 목적은 아니다. 신동하 교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궁극적으로는 교훈을 얻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인기 교사는 “학생들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사고력을 역사교육을 통해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때도 사관의 역사 기록은 왕도 보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왕이 죽고 난 뒤에야 역사책이 나왔습니다. 일종의 권력 감시 장치였던 셈이죠. 역사가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다면 역사학자나 역사교사에게 맡겨야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해선 안 되죠.”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하지만 ‘좌편향’이라고 보는 6종의 한국사 교과서는 모두 현 정부가 구성한 검정위원들의 검정을 받은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내용 감수도 받았기 때문에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곧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난 2008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논란을 겪으며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조 교사는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실증을 기반으로 쓰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역사교육을 강화한다면서 실질적인 내용은 전혀 바뀐 게 없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역사 수업 시수는 오히려 102시간에서 85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또 한 과목의 수업을 특정 학기나 학년에 몰아서 배우는 ‘집중이수제’ 실시로 역사교육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경기 고양시 행신고에 다니는 김정민(16)군은 “한국사를 일주일에 6시간씩 1학기에 몰아서 배우다 보니 중간고사 시험범위가 200페이지가 넘었다”며 “꾸준한 역사 공부를 하기도 힘들고 역사를 이해하기보단 외우기에 급급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의 기본 틀이 유지되는 한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실효를 거두기는 힘들어 보인다. 학교 선생님들도 역사수업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일주일에 4~6시간의 수업을 매번 새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수업 진도에 쫓기다 보니 새로운 형태의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다. 경기 성남시 분당고 신동하 교사는 “역사교육 강화 방안이 발표됐지만 학교 현장은 달라질 것이 없다”고 말했다. “1학기와 2학기로 한국사를 배우는 반을 나눠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학습 태도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게 현실이죠. 역사교육을 강화한다면 수업 시수를 늘려줘야 하는데 여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더군요.” 교과서를 개편하고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고 역사교육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이념을 강화하기 위한 역사교육 강화 방안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우선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웃나라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것만이 역사교육의 목적은 아니다. 신동하 교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궁극적으로는 교훈을 얻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인기 교사는 “학생들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사고력을 역사교육을 통해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때도 사관의 역사 기록은 왕도 보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왕이 죽고 난 뒤에야 역사책이 나왔습니다. 일종의 권력 감시 장치였던 셈이죠. 역사가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다면 역사학자나 역사교사에게 맡겨야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해선 안 되죠.”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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