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 서지원(용인 문정중2)양이 2차 오럴 테스트에서 철자를 말하고 있다. 윤선생영어교실 제공
‘미국 스펠링비’ 대회 참관기
어원·단어형성 원리 파악이 핵심
외우는 대신, 분해·조립·유추하라
어원·단어형성 원리 파악이 핵심
외우는 대신, 분해·조립·유추하라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요.”
‘2011년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비’(SNSB, Scripps National Spelling Bee) 챔피언 수칸야 로이(14, 펜실베이니아)양은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단어가 챔피언 단어로 나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며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챔피언 단어는 ‘물결처럼 굽슬굽슬한 머리털을 가진’이란 뜻의 시마트러커스(cymotrichous, having wavy hair). 수칸야는 “C/Y/M/O”까지 철자를 또박또박 말하고 잠시 숨을 돌렸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머지 단어 “T/R/I/C/H/O/U/S”를 정확히 말해 우승을 차지했다. 수칸야가 챔피언으로 결정되자 대회장 안에 있던 3천여명의 관객이 모두 일어서 20여초 동안 큰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올해로 84회째를 맞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영어철자 말하기 대회인 스펠링비는 지난 5월31일(현지시각)부터 6월2일까지 미국 워싱턴 디시(D.C)의 게일로드 내셔널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미국의 각 주와 12개 나라를 대표하는 275명의 스펠러들이 참가해 단어 실력을 뽐냈다. 출제자가 단어를 발음하면 스펠러는 철자를 하나씩 또박또박 말한다. 틀리면 바로 탈락이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으면 챔피언 단어가 제시되고, 그것을 맞히면 우승한다.
결승전에 오른 12명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단어 실력을 겨뤘다. 10라운드를 마치고 남은 5명은 11라운드부터 14라운드까지 완벽하게 단어를 맞혔다. 대회장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난해에도 ‘top 5’ 안에 들었던 조애나 예(14, 오클라호마)양은 “난 그냥 이 팽팽함을 깰 최초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며 “우리 다섯명을 공동 챔피언으로 할 순 없을까란 생각까지 했다”고 당시의 긴장됐던 마음을 밝혔다. 조애나는 20라운드에서 출제위원인 자크 베일리에게 “지쳤습니까?”(tired?)라고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보였으나 갈루베(galoubet, 남부 프랑스 프로방스지방의 민속악기)를 ‘galubey’로 잘못 답해 아쉽게 탈락했다.
15라운드에서 팽팽한 긴장을 깨고 다코타 존스(14, 미시시피)군이 탈락하자 대회 처음으로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며 격려했다. 다코타는 베일리 교수가 정답을 말해주자 큰소리로 “감사합니다”(thank you)라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윤선생영어교실의 박준서 상무는 “한국에선 참가자가 탈락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곳에선 탈락자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작별파티 행사까지 참여한다”며 “우리가 이 대회에서 배워야 할 점은 규칙을 준수하고, 경쟁보다는 하나의 축제로 대회를 즐기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대표 서지원(용인 문정중2)양도 2008, 2009년에 이어 세번째로 참가했다. 서양은 지난 2월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가 주관하고, 윤선생영어교실이 후원한 ‘2011 내셔널 스펠링비’ 한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스펠링비 출전권을 획득한 바 있다. 서양은 토익 최연소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됐던 순수 국내파 영어 영재다. 서양은 지필시험에서 22점(2008년 19점, 2009년 21점)을 얻어 준결승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자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오럴(oral) 테스트에서도 마들렌(madeleine, 작은 카스텔라의 일종), 이카이너덤(echinoderm, 극피동물)을 연거푸 맞혔으나 지필과 오럴 테스트 합산 점수가 준결승 커트라인 29점에 1점 모자라 아쉽게 탈락했다. 서양은 “준결승에 진출하지 못해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만족한다”며 “‘파닉스’(phonics, 글자의 음가를 익힌 뒤 단어를 분해·조합해 발음 규칙을 적용·이해하는 것)와 ‘어원별 형성원리’ 위주로 공부해 도움이 많이 됐다”고 밝혔다. 서양은 규칙을 벗어나는 단어를 정리하는 식으로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서양이 정리한 노트엔 웹스터사전(신국제3판)을 정독하며 정리한 ‘규칙에서 벗어난 단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스펠링비 출제위원이자 버몬트대학 고전학 교수인 자크 베일리 교수는 “원어민이 아닌 학생이 참가한 것 자체가 눈에 띄는 일”이라며 “매년 3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데, 그중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은 손에 꼽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펠링비 미국 최종결선의 챔피언이 되려면 약 3만개의 단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며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학생들의 도전 정신과 높은 영어 수준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런데 스펠링비 예선과 본선에서 제시하는 단어들은 미국 성인들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 수십만 단어를 암기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스펠러들은 이런 단어들을 어떻게 다 맞힐 수 있을까? 베일리 교수는 “스펠링비는 단순한 암기력 시합이 아니라 정의, 품사, 어원, 발음 등을 종합하는 응용력 시합”이라며 “스펠링비 챔피언들도 우승 뒤 인터뷰에서 자신이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경험적 추측(educated guess)으로 단어를 조합해 맞혔다고 밝힌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회에서 스펠러는 철자를 말하기에 앞서 몇 번이라도 다시 발음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Would you repeat the word please?). 또 뜻(Would you give me the definition please?), 어원(May I have the origin please?), 품사(What part of speech is it?), 예문(Would you use it in a sentence please?), 다른 발음법이 있는지(Is there any alternate pronunciation?)도 함께 물어볼 수 있어 생소한 단어가 나와도 이미 알고 있던 단어를 분해·조립해 맞힐 수 있다. 준우승을 차지한 캐나다 대표 로라 뉴콤(12)양도 어원과 단어의 형성원리를 파악해 답을 맞힌 경우다. 로라는 단어가 제시되면 몇 번이고 다시 발음해 줄 것을 요청한 뒤 뜻과 어원을 묻고 한참을 고민했다. 대회가 끝난 뒤 로라는 “나는 단어를 외우지 않았기 때문에 생소한 단어들이 출제되면 접두사와 접미사로 분해한 뒤 알고 있던 단어에서 유추하는 과정을 거쳤다”며 “예를 들면 사이칼러지(psychology, 심리학)는 사이킥(psychic, 정신의) 또는 사이코(psycho, 아주 이상하게 폭력적인 정신병자)의 접두사에서 철자를 얻고, 에티말러지(etymology, 어원학)의 접미사에서 나머지 철자의 힌트를 얻어 조립했다”고 밝혔다. 베일리 교수는 “(철자를 정확하게 맞히기 위해선) 정의나 품사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고, 예문을 들으면서 발음이 유사한 다른 단어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각 언어의 고유한 철자 방식이나 유형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어원을 알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치 한자를 이해하면 한글 어휘를 늘릴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들도 어원을 알면 생소한 단어도 경험적 추측으로 유추해 맞힐 수 있는 것과 같다. 박준서 상무는 “스펠링비는 전세계 영어 영재들이 모여 교류·화합하는 축제”란 점을 강조했는데, 대회가 끝난 뒤 메릴랜드 볼룸에서 열린 작별파티(farewell party)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스펠러들은 홀 안에서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한데 어우러졌고, 홀 밖에선 전자우편 주소와 사인을 교환했다. 특히 마지막 5명 안에 들어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로라와 조애나가 서로 얼싸안으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워싱턴/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
수칸야 로이 양이 ‘2011 미국 스펠링비’에서 우승컵을 들고 활짝 웃었다. 정종법 기자
스펠링비 출제위원이자 버몬트대학 고전학 교수인 자크 베일리 교수는 “원어민이 아닌 학생이 참가한 것 자체가 눈에 띄는 일”이라며 “매년 3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데, 그중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은 손에 꼽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펠링비 미국 최종결선의 챔피언이 되려면 약 3만개의 단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며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학생들의 도전 정신과 높은 영어 수준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런데 스펠링비 예선과 본선에서 제시하는 단어들은 미국 성인들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 수십만 단어를 암기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스펠러들은 이런 단어들을 어떻게 다 맞힐 수 있을까? 베일리 교수는 “스펠링비는 단순한 암기력 시합이 아니라 정의, 품사, 어원, 발음 등을 종합하는 응용력 시합”이라며 “스펠링비 챔피언들도 우승 뒤 인터뷰에서 자신이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경험적 추측(educated guess)으로 단어를 조합해 맞혔다고 밝힌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회에서 스펠러는 철자를 말하기에 앞서 몇 번이라도 다시 발음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Would you repeat the word please?). 또 뜻(Would you give me the definition please?), 어원(May I have the origin please?), 품사(What part of speech is it?), 예문(Would you use it in a sentence please?), 다른 발음법이 있는지(Is there any alternate pronunciation?)도 함께 물어볼 수 있어 생소한 단어가 나와도 이미 알고 있던 단어를 분해·조립해 맞힐 수 있다. 준우승을 차지한 캐나다 대표 로라 뉴콤(12)양도 어원과 단어의 형성원리를 파악해 답을 맞힌 경우다. 로라는 단어가 제시되면 몇 번이고 다시 발음해 줄 것을 요청한 뒤 뜻과 어원을 묻고 한참을 고민했다. 대회가 끝난 뒤 로라는 “나는 단어를 외우지 않았기 때문에 생소한 단어들이 출제되면 접두사와 접미사로 분해한 뒤 알고 있던 단어에서 유추하는 과정을 거쳤다”며 “예를 들면 사이칼러지(psychology, 심리학)는 사이킥(psychic, 정신의) 또는 사이코(psycho, 아주 이상하게 폭력적인 정신병자)의 접두사에서 철자를 얻고, 에티말러지(etymology, 어원학)의 접미사에서 나머지 철자의 힌트를 얻어 조립했다”고 밝혔다. 베일리 교수는 “(철자를 정확하게 맞히기 위해선) 정의나 품사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고, 예문을 들으면서 발음이 유사한 다른 단어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각 언어의 고유한 철자 방식이나 유형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어원을 알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마치 한자를 이해하면 한글 어휘를 늘릴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들도 어원을 알면 생소한 단어도 경험적 추측으로 유추해 맞힐 수 있는 것과 같다. 박준서 상무는 “스펠링비는 전세계 영어 영재들이 모여 교류·화합하는 축제”란 점을 강조했는데, 대회가 끝난 뒤 메릴랜드 볼룸에서 열린 작별파티(farewell party)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스펠러들은 홀 안에서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한데 어우러졌고, 홀 밖에선 전자우편 주소와 사인을 교환했다. 특히 마지막 5명 안에 들어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로라와 조애나가 서로 얼싸안으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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