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석(사진 오른쪽)씨와 큰딸 거울이(가명·왼쪽)
[함께하는 교육]
‘물려줄 게 없는 부모는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라’ 저자 한희석씨
가난으로 학원 못 보낸 아빠의 사연
믿음·정성으로 자녀 공부전략 세워줘
딸, “‘힘든 환경’ 면죄부 삼지 말아야”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났다. 아빠는 실직자가 됐다. 엄마는 남대문시장 의류가게 점원이었다. 월급은 한 달에 80만 원. 아빠 나이 마흔둘에 취직은 쉽지 않았다. 동네 사람 소개로 막노동을 시작했다. 일이 서툴러 한 달에 잘해야 고작 40만 원 안팎을 손에 쥐고 살았다. 글재주가 좋아 무협소설 쓰는 일을 병행했지만 아빠는 여전히 ‘가난한 아빠’였다. 마침 중학교 입학을 1년 앞두고 내민 큰딸 성적표는 삶을 더 고단하게 했다. 중학교 1학년 입학 뒤 아이는 반에서 27등을 했다. 글과 술밖에 모르던 아빠는 큰딸의 공부 코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7년 뒤 큰딸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아빠는 2010년 서울시교육청에서 주최하는 ‘사교육 없는 자녀교육 성공사례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얼마 전, <물려줄 게 없는 부모는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라>(명진출판)라는 책을 냈다. 가난한 아빠 한희석(48·사진 오른쪽)씨와 큰딸 거울이(가명·왼쪽)가 이룬 기적을 보며 사람들은 공부 비법을 궁금해한다. 아빠나 딸이나 뭐라고 콕 집어 말할 비법은 없다. 역설적이게도 어려운 환경 자체가 거울이를 공부로 이끈 밑바탕이었다. 아빠는 어려운 상황을 숨기지 않았다.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되돌아오는 등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거울이 손을 잡고 성당을 찾았다. “가면서 힘든 현실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어린애가 뭘 알겠습니까. 아빠가 그런 속내를 계속 얘기하니까 어렵다, 아빠가 힘들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아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울리게 하고, 엄마 아빠의 삶을 제대로 보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거울이가 장녀잖아요. 그런 입장도 자극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거울이 생각도 아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울이는 “일단, 아이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깨닫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부모님들만 교육에 안달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이 스스로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해요. 저도 공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가 중1 첫 중간고사를 보고 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가정환경이 어렵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는 게 공부로 이끄는 밑바탕이 됐죠.” 어려운 환경에서 아빠는 아빠가 아니라 감독으로 변신했다. 어릴 때 공부를 끔찍이 싫어한 아빠였지만 유명 선수만이 유명 감독이 된다는 법은 없었다. “감독한테 필요한 건 운동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선수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제대로 보느냐죠. 개인적으로 신문선씨를 좋아합니다. 선수가 왜 헛발질을 하는지, 왜 둔탁한 플레이가 나오는지를 다 아시더라구요. 저도 거울이의 상태를 제대로, 객관적으로 파악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은 선수와 한편이어야 한다. 자녀가 부모를 적으로 여기게 되면서 일어나는 감정싸움을 하다 보면 시간만 버리기 쉽다. 한씨는 “아이한테 부모가 아이와 마음의 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아이들 세계와 친해지려고 했다”고 했다. 아이들의 언어를 알기 위해 지하철 등을 탈 때마다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좋아하던 술을 끊고 피자와 떡볶이, 아이스크림 등 아이들 먹거리에도 맛을 들였다. “다행히 거울이는 아빠의 노력을 알아주는 아이였어요. 말이 없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아빠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고 있었죠.” 한씨 말에 거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요. 아빠가 항상 저를 믿어주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부모 코치한테 조건 없는 신뢰만 필요한 건 아니다. 전략과 연기도 필요하다. 한씨는 주변 사람들을 취재원 삼아 정보를 얻고 전략을 세워나갔다. “제가 인생을 오래 살지 않았고,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저보다 오래 살았거나 잘 성장한 분들의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뉴욕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조카는 “선생님을 귀찮게 하라”는 아주 평범한 얘기를 해줬다. 아빠는 평범한 조언을 거울이한테 맞는 전략으로 바꿔 나갔다. “모르는 게 생기면 곧바로 선생님을 뒤쫓아가서 귀찮게 하라고 했죠. 근데 거울이가 숫기가 없다 보니 물어보지도 않고 물어봤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직접 학교로 전화를 해서 아이가 진짜 질문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거울이는 뭔가 하나를 집요하게 파고들 줄 아는 아이였어요. 한번 질문을 시작하니까 선생님들이 ‘뭘 이렇게까지 하나’ 생각하실 정도로 열심히 질문을 하더군요.” 어느 날 아빠는 거울이한테 일등 하는 친구의 교과서를 빌려오라는 주문도 했다. 일등의 교과서에는 받아쓰기 식으로 필기를 한 게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메모를 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거울이는 “그전까지는 필기하는 방법을 잘 몰랐는데 친구 메모를 바탕으로 제 방식대로 메모를 시작해봤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제 메모의 70% 이상은 선생님한테 질문할 내용들로 채워졌어요. 궁금한 게 생기면 메모했다가 바로 선생님을 찾아가서 해결했죠. 그게 제가 문제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풀도록 도와준 것 같아요.”
참 단단해 보이는 거울이는 학원에 못 다닌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 “솔직히 제 성적이 안 나오는 이유는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이지 학원에 안 다녀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할 만큼 다 했으면 모르겠는데 아직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남들 다 보내는 학원을 못 보내는 아빠 마음은 또 달랐다. “지인들한테 교육에 대해 자주 물었는데 교육에서만큼은 학원이 절대적인 답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많이 절망했죠. 아이 처지에서 말은 안 하지만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습니다.” 대신 아빠는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돈 들이지 않고 공부를 돕는 방법들을 찾아갔다. 남들처럼 큰돈을 들여 외국 어학연수를 보내주진 못하지만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전시, 공연 정보를 찾아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시사, 역사, 사회를 만날 수 있게 해줬다. 관점이 다른 두 신문의 칼럼을 직접 오려주며 읽게 했고, 필요한 책 목록을 적어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아빠의 정성은 거울이가 논술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아빠표 교육만의 장점도 있었다. 거울이는 “친구들 엄마를 통해 추측해보면 엄마들이 공부에 관심을 가지실 때는 점수에 연연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점수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으세요. 큰 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먼저 연구하시더라구요.” 거울이 말에 한씨가 피식 웃었다. “사실 일자무식인 저희 부부가 성적표 보는 눈이 있겠습니까. 고3 가면 수능 모의평가 성적표가 나오잖아요. 솔직히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구요.(웃음)” 한씨는 공부 코치로서 아직 갈 길이 멀다. 올해는 둘째딸이 고3이고, 그 밑으로 중학생 막내아들도 있다. 한씨는 “아이마다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전략도 다 다르게 짜야겠지만 그래도 원칙은 있다”고 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면 우를 범하죠. 공부라는 마라톤을 하고 있을 때는 어깨 한번 다독여주면서 지켜봐주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물론 그것보다 중요한 게 부모가 아이를 믿어주고 있고, 아이도 부모를 신뢰한다는 믿음입니다. 거울이는 아빠 얘기를 스펀지처럼 흡수할 줄 아는 고마운 딸이었죠.” 곧 수시철이다. 고3 후배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거울이의 조언은 “자신과 싸우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울이는 “학원에 못 가서, 환경이 어려워서 등의 이유는 다 핑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역사 선생님이 ‘최악의 환경은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어요. 학생들이 자기 이외의 것으로 면죄부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hanedui.com
믿음·정성으로 자녀 공부전략 세워줘
딸, “‘힘든 환경’ 면죄부 삼지 말아야”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났다. 아빠는 실직자가 됐다. 엄마는 남대문시장 의류가게 점원이었다. 월급은 한 달에 80만 원. 아빠 나이 마흔둘에 취직은 쉽지 않았다. 동네 사람 소개로 막노동을 시작했다. 일이 서툴러 한 달에 잘해야 고작 40만 원 안팎을 손에 쥐고 살았다. 글재주가 좋아 무협소설 쓰는 일을 병행했지만 아빠는 여전히 ‘가난한 아빠’였다. 마침 중학교 입학을 1년 앞두고 내민 큰딸 성적표는 삶을 더 고단하게 했다. 중학교 1학년 입학 뒤 아이는 반에서 27등을 했다. 글과 술밖에 모르던 아빠는 큰딸의 공부 코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7년 뒤 큰딸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아빠는 2010년 서울시교육청에서 주최하는 ‘사교육 없는 자녀교육 성공사례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얼마 전, <물려줄 게 없는 부모는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라>(명진출판)라는 책을 냈다. 가난한 아빠 한희석(48·사진 오른쪽)씨와 큰딸 거울이(가명·왼쪽)가 이룬 기적을 보며 사람들은 공부 비법을 궁금해한다. 아빠나 딸이나 뭐라고 콕 집어 말할 비법은 없다. 역설적이게도 어려운 환경 자체가 거울이를 공부로 이끈 밑바탕이었다. 아빠는 어려운 상황을 숨기지 않았다.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되돌아오는 등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거울이 손을 잡고 성당을 찾았다. “가면서 힘든 현실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어린애가 뭘 알겠습니까. 아빠가 그런 속내를 계속 얘기하니까 어렵다, 아빠가 힘들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아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울리게 하고, 엄마 아빠의 삶을 제대로 보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거울이가 장녀잖아요. 그런 입장도 자극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거울이 생각도 아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울이는 “일단, 아이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깨닫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부모님들만 교육에 안달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이 스스로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해요. 저도 공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가 중1 첫 중간고사를 보고 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가정환경이 어렵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는 게 공부로 이끄는 밑바탕이 됐죠.” 어려운 환경에서 아빠는 아빠가 아니라 감독으로 변신했다. 어릴 때 공부를 끔찍이 싫어한 아빠였지만 유명 선수만이 유명 감독이 된다는 법은 없었다. “감독한테 필요한 건 운동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선수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제대로 보느냐죠. 개인적으로 신문선씨를 좋아합니다. 선수가 왜 헛발질을 하는지, 왜 둔탁한 플레이가 나오는지를 다 아시더라구요. 저도 거울이의 상태를 제대로, 객관적으로 파악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은 선수와 한편이어야 한다. 자녀가 부모를 적으로 여기게 되면서 일어나는 감정싸움을 하다 보면 시간만 버리기 쉽다. 한씨는 “아이한테 부모가 아이와 마음의 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아이들 세계와 친해지려고 했다”고 했다. 아이들의 언어를 알기 위해 지하철 등을 탈 때마다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좋아하던 술을 끊고 피자와 떡볶이, 아이스크림 등 아이들 먹거리에도 맛을 들였다. “다행히 거울이는 아빠의 노력을 알아주는 아이였어요. 말이 없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아빠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고 있었죠.” 한씨 말에 거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요. 아빠가 항상 저를 믿어주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부모 코치한테 조건 없는 신뢰만 필요한 건 아니다. 전략과 연기도 필요하다. 한씨는 주변 사람들을 취재원 삼아 정보를 얻고 전략을 세워나갔다. “제가 인생을 오래 살지 않았고,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저보다 오래 살았거나 잘 성장한 분들의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뉴욕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조카는 “선생님을 귀찮게 하라”는 아주 평범한 얘기를 해줬다. 아빠는 평범한 조언을 거울이한테 맞는 전략으로 바꿔 나갔다. “모르는 게 생기면 곧바로 선생님을 뒤쫓아가서 귀찮게 하라고 했죠. 근데 거울이가 숫기가 없다 보니 물어보지도 않고 물어봤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직접 학교로 전화를 해서 아이가 진짜 질문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거울이는 뭔가 하나를 집요하게 파고들 줄 아는 아이였어요. 한번 질문을 시작하니까 선생님들이 ‘뭘 이렇게까지 하나’ 생각하실 정도로 열심히 질문을 하더군요.” 어느 날 아빠는 거울이한테 일등 하는 친구의 교과서를 빌려오라는 주문도 했다. 일등의 교과서에는 받아쓰기 식으로 필기를 한 게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메모를 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거울이는 “그전까지는 필기하는 방법을 잘 몰랐는데 친구 메모를 바탕으로 제 방식대로 메모를 시작해봤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제 메모의 70% 이상은 선생님한테 질문할 내용들로 채워졌어요. 궁금한 게 생기면 메모했다가 바로 선생님을 찾아가서 해결했죠. 그게 제가 문제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풀도록 도와준 것 같아요.”
참 단단해 보이는 거울이는 학원에 못 다닌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 “솔직히 제 성적이 안 나오는 이유는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이지 학원에 안 다녀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할 만큼 다 했으면 모르겠는데 아직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남들 다 보내는 학원을 못 보내는 아빠 마음은 또 달랐다. “지인들한테 교육에 대해 자주 물었는데 교육에서만큼은 학원이 절대적인 답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많이 절망했죠. 아이 처지에서 말은 안 하지만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습니다.” 대신 아빠는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돈 들이지 않고 공부를 돕는 방법들을 찾아갔다. 남들처럼 큰돈을 들여 외국 어학연수를 보내주진 못하지만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전시, 공연 정보를 찾아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시사, 역사, 사회를 만날 수 있게 해줬다. 관점이 다른 두 신문의 칼럼을 직접 오려주며 읽게 했고, 필요한 책 목록을 적어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아빠의 정성은 거울이가 논술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아빠표 교육만의 장점도 있었다. 거울이는 “친구들 엄마를 통해 추측해보면 엄마들이 공부에 관심을 가지실 때는 점수에 연연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점수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으세요. 큰 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먼저 연구하시더라구요.” 거울이 말에 한씨가 피식 웃었다. “사실 일자무식인 저희 부부가 성적표 보는 눈이 있겠습니까. 고3 가면 수능 모의평가 성적표가 나오잖아요. 솔직히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구요.(웃음)” 한씨는 공부 코치로서 아직 갈 길이 멀다. 올해는 둘째딸이 고3이고, 그 밑으로 중학생 막내아들도 있다. 한씨는 “아이마다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전략도 다 다르게 짜야겠지만 그래도 원칙은 있다”고 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면 우를 범하죠. 공부라는 마라톤을 하고 있을 때는 어깨 한번 다독여주면서 지켜봐주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물론 그것보다 중요한 게 부모가 아이를 믿어주고 있고, 아이도 부모를 신뢰한다는 믿음입니다. 거울이는 아빠 얘기를 스펀지처럼 흡수할 줄 아는 고마운 딸이었죠.” 곧 수시철이다. 고3 후배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거울이의 조언은 “자신과 싸우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울이는 “학원에 못 가서, 환경이 어려워서 등의 이유는 다 핑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역사 선생님이 ‘최악의 환경은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어요. 학생들이 자기 이외의 것으로 면죄부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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