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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두뇌는 ‘합리’와는 거리가 멀다

등록 2011-10-31 11:43수정 2011-10-31 11:45

<관계의 본심><br>클리포드 나스·코리나 옌 지음<br>방영호 옮김, 푸른숲
<관계의 본심>
클리포드 나스·코리나 옌 지음
방영호 옮김, 푸른숲
[함께하는 교육]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51. 관계의 본심 - 선거를 움직이는 마음의 논리
“수학 점수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수학에서 B학점을 받았는데요, 그쪽은 어때요?”

“고향이 어디세요?”, “제 고향은 춘천인데, 그쪽은 어디서 오셨나요?”

질문들을 비교해 보자. 어느 쪽에 선뜻 대답이 튀어나오는가? 각각의 물음 가운데 두 번째일 것이다. ‘벗는 만큼 친해진다.’ 심리학자 클리포드 나스와 코리나 옌의 말이다. 상대를 알고 싶다면 나부터 먼저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머리는 단순하다. 따지고 묻기보다 두뇌에 심어진 법칙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나스와 옌은 몇 가지 실험을 더 보여준다. 복사기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어떤 이가 새치기하며 묻는다. “먼저 복사해도 될까요?” 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된다며 고개를 젓는다.

이번에는 이유를 들이대며 끼어드는 상황을 보자. “먼저 복사해도 될까요? 제가 많이 급해서 그래요.” 이때는 대부분이 선뜻 앞자리를 내준다. 문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내세울 때다. “먼저 복사해도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복사를 해야 되거든요.”

말도 안 되는 요구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순순히 자리를 비켜준단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두뇌는 합리적인 까닭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따지고 재는 일에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래서 두뇌는 굳이 의심할 이유가 없으면 옳다고 믿어 버린다. ‘전문가의 견해’, ‘전문 기관의 연구 결과’ 등의 말에 홀딱 넘어가는 이유다.

어디 그뿐인가. 두뇌는 ‘자기확증 편향’(self-serving bias)에 빠지곤 한다. 이는 승리는 나의 노력으로, 실패는 상황 탓으로 돌리는 자세를 일컫는다. 예컨대, 시험을 잘 봤다고 해보자. 성적이 좋은 까닭은 내가 머리가 좋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시험을 망쳤다면? 문제가 형편없었거나, 시험 준비에 매달리기 어려웠던 상황 탓이다.

두뇌는 비판하는 사람도 싫어한다. 그럼에도 따져 묻는 사람들을 똑똑하다고 여긴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지적으로는 뛰어나다고 여기는 셈이다. 우리는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만날 때, 삐딱한 질문을 더 많이 던진단다.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소심한 복수’라 하겠다.

두뇌는 ‘흥분’(arousal)에도 약하다. 연애를 예로 들어보자. 짝을 찾는 데는 무척 신중해야 한다. 꼼꼼히 짚어 보아야 할 문제가 하나둘이던가. 하지만 달아오른 심장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곧바로 사랑에 빠져든다. 일단 ‘행동 모드’로 바뀐 두뇌는 섬세한 감각을 잃어버린 채, 감정이 시키는 대로 휘둘린다.

어디 그뿐이던가. 감정이 달아오른 상태에서는 판단도 널을 뛰기 쉽다. 장례식장에서 우스운 전화벨 소리가 퍼졌다 해보자. 갑자기 터진 웃음보는 난감하기만 하다. 그래도 멈추기란 쉽지 않다. 달아오른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널리 일어난다. 흥겨운 축제가 절정에 달할 때, 어처구니없이 ‘폭동’이 일어나기도 하지 않던가.

나스와 옌이 보여주는 두뇌의 모자람은 끝이 없다. 두뇌는 정(情)에도 약하다. 무조건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는 소리다. 스웨덴 사람과 미국 사람에게 방송을 들려주었다. 내용은 스웨덴 관광명소에 대한 설명이었다. 한쪽에서는 미국 사람에게 스웨덴 억양의 영어를, 스웨덴 사람에게는 미국식 발음의 영어를 들려주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스웨덴 사람에게 스웨덴 억양의 영어를, 미국인들에게는 미국 영어의 발음으로 설명을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어느 쪽 설명에 더 호감을 느꼈을까?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발음에 끌렸다. 스웨덴인들은 스웨덴식 영어 어감으로, 미국인들은 미국식 영어로 설명했을 때, 더 많은 신뢰를 보냈다. 고향 사투리를 쓰는 사람에게 더 믿음이 가기 마련 아닌가.

이처럼 두뇌가 내리는 판단은 ‘합리’와는 거리가 멀다. 먼저 다가오는 사람에게, 말 같지 않은 설명에, 우물 안 개구리 식 해석에, 흥분한 감정에, 우리와 친숙한 정도 등등에 끊임없이 휘둘리며 엉뚱한 결론을 내리곤 한다.

나스와 옌이 손가락질하는 두뇌의 단점은 우리의 선거 문화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정치인들은 학연, 지연을 들먹이며 유권자들과 친한 척한다. 어렵고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기도 한다. 듣고 있어도 뭔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럼에도 심오한 무엇이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또한 아쉬운 점을 긁어대며 유권자들을 흥분시킨다. 그리고 ‘누구’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흥분한 마음은 눈앞에 세워진 ‘공공의 적’에 분노를 퍼붓는다. 감정은 전염되기 마련, 한껏 달아오른 군중의 목소리를 따라 자신의 가슴도 부풀어 오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선거가 끝난 지 한참 뒤에나 깨닫기 마련이다. 흥분한 두뇌가 이성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탓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진보와 보수는 한 치의 양보 없는 결전을 벌였다. 선거에서는 두뇌를 혹하게 하는 여러 선전들이 판을 친다. 선거가 치열해질수록 갈등과 혼란도 많아질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장점은 선거 때보다, 당선자가 나온 후에 나타난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는 패자를 ‘응징’하지 않는다. 따뜻하게 손을 내밀며 도움을 요청한다. 패자 또한 승리한 쪽에 축하를 보내며 그들에게 힘을 보탠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시민세력이 민선 서울시장이 된 것은 처음이다. 박원순 시장은 어떤 민주주의를 열어갈지 궁금하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박원순 시장 선출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215만8476표(53.40%)를 얻어 186만7880표(46.21%)에 그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이겼다. 박 후보는 20∼40대 유권자층에서 완승을 거뒀고, 서울 25개 구 가운데 서초, 강남, 송파, 용산구를 제외한 21개 구에서 우세했다. 박 후보는 당선 기자회견에서 “시민은 권력을 이겼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다”며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택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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