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대학 서열화는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대학 서열의 정점에 위치한 서울대 들머리에서 학생들이 오가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서울대는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 의과대학 외에는 모두 관악구 봉천동과 신림동 일대의 관악산 아래에 모여 있다. 예전의 서울대는 이렇지 않았다. 시기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으나, 서울의 각 지역에 흩어져 있었고, 수원에도 캠퍼스가 있었다. 먼저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문리대와 법대, 미대가 있었고, 맞은편인 종로구 연건동에 의대와 치대, 약대, 성북구 종암동에 상대, 동대문구 용두동에 사범대, 성북구 공릉동에 공대, 을지로에 음대, 수원에 농대, 수의대 등이었다. 그러나 1975년 박정희 유신 정부 시절, 연건동의 의대, 치대, 약대, 수원의 농대 정도를 제외하고는 몽땅 모아서 관악산 아래로 옮겨버렸다. 뒤에 농대도 관악산 아래로 옮겼다.
지금도 서울 강북 지역에서 차를 타고 서울대를 가려면 한강대교를 건너고 상도터널을 지나고 고개를 두 개 넘어서 가야 한다. 지금 지하철을 타고 가도 한참 걸리는데, 강남 지역이 지금처럼 개발되지 않았던 1970년대에 관악산 아래 서울대는 사실상 서울에서 오지나 다름없었다. 당시 불광동에서 관악 캠퍼스까지 통학에 4~5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서울대 학생들의 고립감은 대단한 것이었다고 한다.
박정희 정부가 이런 곳에 서울대를 옮긴 공식적인 이유는 한강 남쪽(강남) 개발이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는다는 점과 터가 107만평으로 충분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계획되거나 추진된 동숭동·연건동 중심안이 박정희 자신의 반대로 무산된 점이나, 새 캠퍼스 터를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 결정했다는 점 때문에 4대문 안에서 서울대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비공식적인 추정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아마도 원모심려한 박정희로서는 양수겸장으로 관악 캠퍼스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이에 앞서 1960년부터 서울대와 정부에서 서울대 발전을 위한 캠퍼스 통합안이 수차례 제기됐다. 주요 안들은 1. 문리대·법대·의대가 있던 동숭동·연건동(현재 대학로) 중심안, 2. 공과대학이 있던 공릉동 중심안, 3. 농대가 있던 수원 중심안, 4. 시흥, 신갈 등 새 캠퍼스 건설안 등이 있었다. 박정희는 1967년 유력하게 제안된 동숭동·연건동 중심안의 규모가 너무 작다며 무산시킨 뒤 관악골프장 자리를 서울대의 새 캠퍼스 터로 결정하고 1970년 2월16일 최문환 당시 서울대 총장에게 친서를 보내 통보했다.
우리와는 역사도 배경도 다른 런던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의 칼리지들을 보며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서울대를 관악 캠퍼스로 통합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문리대와 법대, 미술대가 종로구 동숭동에, 상대가 성북구 종암동에, 사범대가 동대문구 용두동에, 공대가 성북구 공릉동에, 이학부(기초과학부)가 청량리 또는 신공덕동에, 음악대가 을지로에, 농대가 수원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서울대와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서로 격리·고립되지 않고 함께 숨쉴 수 있지 않았을까? 또 런던의 칼리지들처럼 서울대도 각 단과대들이 하나의 대학에 맞먹을 정도로 규모나 분야를 넓힐 수 있지 않았을까? 또 서울대의 각 단과대학들이 위치했던 서울의 각 지역에는 대학가의 활기와 지성적인 분위기가 가득하지 않았을까? 연세대 앞 신촌이나 이대 앞처럼 술집과 고깃집과 옷집만 많아졌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대도 여러 대학의 연합 형태인 런던대학과 비슷한 역사와 체제를 갖고 있었다. 서울대는 해방 직후인 1946년에 10개의 독립된 대학을 미군정이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을 발표해 하나로 묶어 만든 연합대학이었다. 해방 전 조선 땅에 있던 유일한 종합대학인 경성제국대학을 중심으로 해서 경성법학전문학교, 경성공업전문학교, 경성광산전문학교, 경성사범학교·경성여자사범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여기까지 국·공립), 경성경제전문학교,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경성약학전문학교(사립) 등 모두 10개 대학을 합친 것이다.
당시 미군정은 연희, 보성, 이화, 혜화 등 사립 전문학교들은 모두 그대로 두고 국·공립 대학들은 억지로 묶어 하나로 통합하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을 발표했고, 즉시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운동’(국대안 파동)이 일어나게 된다. 만약 당시 미군정이 이들 국·공립 대학을 각자 하나의 대학으로 발전하도록 뒀다면 서울은 지금처럼 사립대학 중심이 아니라, 국·공립 중심이거나 적어도 국·공립과 사립이 공존하는 대학 체제를 갖췄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국의 명문 대학 대부분이 사립대학이고 사립대학들이 대학 교육을 주도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거나 완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서울에는 런던에서처럼 최소 10개의 국·공립 대학이 공존하며 발전하는 체제를 갖췄을 수도 있다. 서울대학교의 개교 연도와 관련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서울대는 스스로의 개교 연도를 국대안이 나온 1946년 10월로 잡고 있으나, 냉정하게 보면 서울대학교의 중추가 된 경성제국대학의 개교 시기인 1924년으로 잡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가장 길게 잡는다면 의과대학의 모태가 된 국립의학교가 생긴 1899년으로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대학교는 1946년을 고집하고 있다. 서울대학의 시작이 대한제국이나 일제 때가 아니라 미군정 시기에 있으면 더 좋은 일인가?
또 한 가지, 서울대학교의 역사와 관련한 큰 아쉬움은 1946년 국대안이 발표되는 시점에 조선 때의 최고 국립대학인 성균관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이때 성균관이 문리대의 한 부분으로 포함됐더라면 서울대학교의 정통성과 역사가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성균관이 포함됐더라면 지금처럼 서울대학교를 경성제대의 후신으로 일축해 버리기 어려웠을 것이고, 개교 시기도 1946년이 아니라,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이 개성에서 개교한 992년이나 성균관으로 개칭한 1308년으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 현재의 성균관대학교는 개성에 있던 성균관이 서울 명륜동에서 새로 문을 연 1398년으로 개교 연도를 잡고 있다.
국자감의 개교 연도인 992년은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여겨지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1088년 개교)보다 100년 가량 더 오래된 것이다. 성균관이 서울대에 포함되지 않은 결정은 역사와 정통성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참으로 아쉬운 결정이었다. 성균관의 적통을 이은 성균관대학교가 삼성 재단의 사립대학이 된 점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만약 지금이라도 서울대의 15개 대학(자유전공 학부 제외)과 7개 전문대학원을 전문화화하고 독립된 22개 대학과 대학원으로 분리해 발전시키면 어떨까? 자유전공 학부를 제외한 15개 대학은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간호대학, 경영대학, 공과대학, 농업생명과학대학, 미술대학, 법과대학, 사범대학, 생활과학대학, 수의과대학, 약학대학, 음악대학, 의과대학이며, 7개 전문대학원은 보건대학원, 행정대학원, 환경대학원, 국제대학원, 치의학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이다. 대부분 대학과 대학원이 독립해도 좋을 정도로 전문화해 있다. 그 대학들의 캠퍼스도 그 성격에 따라 서울 도심으로 옮기거나 지방으로 옮기거나 현재의 관악 캠퍼스에 남기는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대학들이 처음에는 규모가 작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련 분야도 넓히고 교수, 학생의 규모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사회과학대학은 서울사회과학대학이나 국립사회과학대학으로 개편해서 서울 도심에 자리잡는다면 좋을 것이다. 마치 영국의 런던경제대학이 그렇듯 사회과학의 센터 노릇을 하고 사회과학계의 학자, 교수들은 물론이고, 국내외에서 국제, 정치, 사회 등의 저명한 인물들을 초청해서 학술 강연과 공개 강연을 함께 열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현장에 나와 연구하기도 좋을 것이고, 이들 학생들의 논쟁이 주변 술집과 찻집, 음식점에서 심심치 않게 들릴 것이다. 이것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가치와 매력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가 22개의 새로운 국립 명문대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 대학은 각자의 분야에서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 가운데 하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더 타임스> 세계대학 평가에서 포스텍이 28위, 카이스트가 79위로 109위의 서울대를 앞섰다. 분산된 서울대의 각 단과대학들이 전문성과 규모를 함께 키우면 한국에 지금보다 더 많은 세계적 명문대학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이 가운데 일부를 지방으로 옮겨 지역 사이의 균형적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현재 지방에 있는 명문대로는 대전의 카이스트와 포항의 포스텍이 있지만, 22개 대학·대학원 가운데 절반 가량을 지방으로 옮긴다면 각 지역에도 특색 있는 명문대가 하나둘씩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서울대를 분산했을 때 좋은 결과만 예상되는 것은 아니다. <더 타임스>의 세계대학 평가에서 단과대학 규모에 가까운 런던경제대학이 종합대학 규모에 가까운 UCL에 크게 밀리듯 분산된 서울대의 각 단과대학은 ‘규모의 대학’을 이루지 못해 대학평가에서 순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 대학의 규모는 대학의 연구 성과의 규모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분산되기만 하고 충분히 성장하지 못해 사립대학인 연세대나 고려대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떠오를 우려도 있다. 혹시라도 서울대를 분산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런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 22개의 국립대학들이 성장하고 발전해서 자리잡으면 그 뒤에는 정진상 경상대 교수나 진보 정당에서 주장하는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통합네트워크에 대한 우려 가운데 하나가 현재 상황에서 국·공립대를 통합하면 대학교육의 주도권을 완전히 사립 명문대학에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조국 서울대 교수가 함께 펴낸 책 <진보집권플랜>을 보니, 조 교수는 서울대를 2개로 쪼개는 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대를 발전적으로 분산하자는 것이 나만의 잠꼬대는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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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동의 옛 서울대 본부 건물. 김규원 기자
현재도 대학로 연건동에 남아있는 서울대 의대 본부. 김규원 기자
당시 미군정은 연희, 보성, 이화, 혜화 등 사립 전문학교들은 모두 그대로 두고 국·공립 대학들은 억지로 묶어 하나로 통합하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을 발표했고, 즉시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운동’(국대안 파동)이 일어나게 된다. 만약 당시 미군정이 이들 국·공립 대학을 각자 하나의 대학으로 발전하도록 뒀다면 서울은 지금처럼 사립대학 중심이 아니라, 국·공립 중심이거나 적어도 국·공립과 사립이 공존하는 대학 체제를 갖췄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국의 명문 대학 대부분이 사립대학이고 사립대학들이 대학 교육을 주도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거나 완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서울에는 런던에서처럼 최소 10개의 국·공립 대학이 공존하며 발전하는 체제를 갖췄을 수도 있다. 서울대학교의 개교 연도와 관련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서울대는 스스로의 개교 연도를 국대안이 나온 1946년 10월로 잡고 있으나, 냉정하게 보면 서울대학교의 중추가 된 경성제국대학의 개교 시기인 1924년으로 잡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가장 길게 잡는다면 의과대학의 모태가 된 국립의학교가 생긴 1899년으로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대학교는 1946년을 고집하고 있다. 서울대학의 시작이 대한제국이나 일제 때가 아니라 미군정 시기에 있으면 더 좋은 일인가?
옛 서울대 자리인 마로니에 공원에 남아 있는 동숭동 캠퍼스 모형. 김규원 기자
고려와 조선의 최고 대학, 성균관의 명륜당. 김규원 기자
굴절된 역사로 인해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 되지 못한 성균관 대성전. 김규원 기자
국내 최고 수준의 과학 중심 대학인 카이스트. Yoo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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