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총장-교수들 갈등
이사회서 일방 개정안 의결
올해 학생 4명과 교수 1명의 잇따른 자살 사태를 겪은 대전 카이스트(KAIST)의 공식기구인 대학평의회가 서남표 총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학평의회가 총장의 전횡을 견제할 장치를 두도록 평의회 규정 개정을 요구했으나, 서 총장이 이를 삭제한 규정 개정안을 이사회에 상정해 통과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카이스트 대학평의회 강성호 의장을 비롯한 선출직 평의원인 교수 15명은 22일 성명을 내어 “서 총장이 지난 20일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에 평의회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규정 개정안을 상정했다”며 서 총장의 사과와 규정 개정안 무효화, 조속한 용퇴 결단을 촉구했다.
평의회는 지난달 29일 학교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되 이사회의 의결권을 존중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직제 규정 및 대학평의회 규정의 개정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서 총장은 지난 9일 평의회 개정안이 지난 10월 이사회 결정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평의회 선출직 교수들은 이날 ‘대학평의회 입장’을 따로 내어 “혁신비상위원회를 통해 학교를 바로 세우기 위한 많은 안들이 제안되었지만 총장은 본인 스스로 하였던 약속을 저버리고 시종일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며 “총장의 의도는 비열한 꼼수이고 평의회를 실질적으로 ‘식물 평의회, 보직자 2중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카이스트 대학평의회는 지난달 1일 학교 구성원들의 소통과 의견수렴을 위해 총장이 지명한 교수 10명과 전체 교수 투표로 선출된 15명으로 출범했다. 학생·교수 자살 사건 이후 총장·교수협의회·총학생회 합의로 지난 4월 출범한 혁신비상위원회의 협의와, 서 총장의 국정감사 현장에서의 평의회 구성 수용 등이 바탕이 됐다.
평의회 부의장인 김종득 교수는 “평의회와 총장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서 총장이 이사회에 안을 따로 내 통과시킨 게 문제”라며 “서 총장이 몇년 동안 계속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니까 교수들이 더는 기댈 언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쪽은 “이사회는 지난 10월26일 ‘심의·의결기구’로 적시돼 있는 현 대학평의회 기능을 상위 규정인 직제 규정과 일치하도록 ‘건의·자문기구’로 변경했다”며 “평의회의 요구는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의 결정사항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카이스트에서는 올해 초부터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학사행정과 학교 정책 전반에 대해 서 총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서 총장은 교수·학생들의 제안을 수용해 지난 4월 혁신비상위원회 구성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의결 안건을 모두 수용하고 즉시 실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혁신위가 제안한 안건에 대해 서 총장은 ‘이사회 의결이 필요하다’며 실행을 미뤄 구성원들의 집단 반발을 불렀고, 곽영출 카이스트 학부 총학생회장은 지난 6월 학교본부 앞에서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교수협의회는 지난 9월 전체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뒤 신의 위반, 독선적 리더십 등을 들어 서 총장의 즉각 퇴진을 요구한 바 있다.
대전/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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