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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종철이 꿈꾼 사회…‘다 같이 간고등어 먹는 세상’ / 박정기

등록 2012-02-05 20:39수정 2012-02-05 20:40

1987년 3월3일 부산 사리암에서 열린 ‘박종철군 49재’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이 당시 <동아일보>에 실렸다. 왼쪽부터 어머니 정차순, 누나 박은숙, 아버지 박정기씨, 뒤쪽 안경 쓴 이는 형 박종부씨다. 남매는 막내 ‘철이’의 뜻을 좇아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87년 3월3일 부산 사리암에서 열린 ‘박종철군 49재’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이 당시 <동아일보>에 실렸다. 왼쪽부터 어머니 정차순, 누나 박은숙, 아버지 박정기씨, 뒤쪽 안경 쓴 이는 형 박종부씨다. 남매는 막내 ‘철이’의 뜻을 좇아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43
박종철의 누나 박은숙은 부산 대청동에 있는 메리놀병원에서 6·29 선언 소식을 들었다. 그는 6월28일 시위 도중 하체가 마비되어 병원에 실려왔다. 급성 디스크 증상이었다. 6월항쟁 기간 내내 거리시위에 나섰다가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뉴스를 본 뒤 그는 동생에게 말했다.

“철아, 니도 보고 있지? 니가 원하는 세상이 조금 더 가까워진 거 맞지?”

6월항쟁과 6·29 선언은 민주주의의 시작일 뿐, 그는 동생이 꿈꾸는 세상은 자신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막내는 늘 가족 모두가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바랐다.

동생이 부산에 내려오는 날엔 어머니는 평소보다 정성 가득한 식단을 준비했다. 어느 날인가 밥상 위에 참조기 굴비가 놓여 있을 때였다. 막내는 젓가락을 들다 말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무이, 이거 다 누가 만드나? 노동자들이 만들제? 노동자들이 없으믄 우리가 살 수가 있나?”

“노동자들 없이 우찌 사노?”

“그라지?”

“맞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이런 참조기를 먹을 수 있나?”

“그 사람들 일당으론 못 먹는다.”

“그렇지? 인간은 다 소중한 존재인데 누구는 매일 참조기를 먹고 누구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 문제 있지예?”

“맞다. 맞아. 다 같이 잘 살믄 좋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어머니는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란 세상 말고, 다 같이 간고등어 먹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데이.”

그때 막내의 표정은 어떤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뒤 은숙에게 세상을 바꾸는 일은 ‘다 같이 간고등어 먹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종철은 ‘오빠 같은 동생’이었다. 막내였지만 의젓했다. 그는 어린 시절 ‘공주 대접을 받고 자랐다’고 말했다. 화목한 집안 분위기는 친구들이 언제나 부러워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항상 존댓말을 썼다. 그 시절엔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박정기는 지금도 정차순에게 존댓말을 한다.

어릴 때 아버지의 별명은 ‘땡땡이 아빠’였다. 퇴근 종소리가 땡 하고 울리면 매일 정확한 시간에 집으로 왔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겐 더 바랄 게 없었다. 언젠가 그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같은 여자로서 내가 볼 때 엄마는 복 많은 여자야.”

“내가 무슨 복이 많나? 자식 험하게 잃었는데….”

하지만 정차순은 내심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굴곡 없는 인생이었다. 박정기는 그의 친구들도 한결같이 손꼽는 모범적인 남편이었다. 가사노동은 자신보다 남편이 더 많이 했다. 식사를 마치면 설거지도 늘 남편 몫이었다. 부부싸움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정차순은 막내에게 대학 마치면 부산에서 같이 살자고 말하곤 했다. 동생이 떠난 뒤 은숙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철이 숨결이 묻어 있는 서울에서 살자.”

은숙은 오빠(종부)보다 동생과 더 가까웠다. 동생은 그의 자랑이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외출할 때면 팔짱을 끼곤 했다. 그럴 때면 동생이 투덜거렸다.

“니 와 이라노? 1미터 떨어져서 따라와라.”

동생은 여자애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의 친구들 중에도 여러 명이 동생을 짝사랑했다. 주말이 되면 막내의 여자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잦아 정차순이 나무라곤 했다.

“가시나들아, 전화 좀 그만하그라.”

막내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한 여학생을 사귀었다. 영도구에서 예쁘기로 소문난 학생이었다. 어린 연인은 고3 진급을 앞두고 헤어졌다. 헤어지던 날 동생이 말했다.

“우리 서울대에서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서로 최선을 다해 공부하자.”

아버지를 닮은 동생은 한번 결심하면 흔들리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헤어진 뒤 편지와 전화가 잦았지만 동생은 꿈쩍하지 않았다. 동생이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난 것은 대학에 입학한 뒤였다. 미대에 다니는 여학생의 연락으로 두 사람은 서울대 교정에서 재회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여학생은 남자친구를 다시 만난다는 설렘에 그날따라 한껏 꾸며 입고 나왔다. 빼어난 미모와 옷차림을 보고 종철의 언어학과 친구들이 감탄했다. 하지만 동생은 낯설고 불편해했다.

“니는 그 옷차림이 뭐나? 가난한 민중들은 헝겊 쪼가리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데 부끄럽지도 않나?”

동생이 기대한 것은 소박한 옷차림을 한 운동권 여학생이었을까? 실망한 박종철은 옛 여학생을 냉정하게 돌려보내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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