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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찾아서] 교도관들이 점령한 법정…의자·모자 던지며 분노 / 박정기

등록 2012-02-07 20:29수정 2012-02-07 20:30

1987년 5월29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은폐한 경찰간부 박처원 치안감(왼쪽부터), 유정방·박원택 경감이 추가 구속된 데 이어 88년 1월15일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총지휘한 사실이 드러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구속수감됐다. 해방 이후 서북청년단 세력이 주도해온 경찰 공안수사 인맥의 물갈이가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1987년 5월29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은폐한 경찰간부 박처원 치안감(왼쪽부터), 유정방·박원택 경감이 추가 구속된 데 이어 88년 1월15일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총지휘한 사실이 드러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구속수감됐다. 해방 이후 서북청년단 세력이 주도해온 경찰 공안수사 인맥의 물갈이가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45
1987년 7월4일 오전 10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1심 선고공판이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에서 열렸다. 재판정엔 100여명의 교도관이 입장했다. 이들이 앞자리 대부분을 차지했고, 방청객과 재판부 사이엔 분리대가 가로놓였다. 많은 사람들이 법정에 들어가지 못했다. 박정기는 교도관들 사이에 앉았다. 법정 주변엔 경찰 4개 중대가 경비를 폈다. 법원 앞에도, 법정 안에도 경찰과 교도관들이 도열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재판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법원 마당에서 집회를 열고 시위를 했다.

법정엔 방청객 100여명, 내외신 기자 70여명이 들어차 있었다. 방청객의 다수였던 민가협 어머니들은 재판부가 입장하자마자 일어나 항의했다.

“아무리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이 법정에서는 질서 있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재판장의 말에 방청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공정한 재판이라고 했소? 방청객들 자리를 저놈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지금 이 재판이 공정합니까?”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하자 방청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장이 소리쳤다.

“소란 피우는 자들 모두 퇴정시켜!”

분노한 박정기는 자리를 박차고 법대를 향해 뛰쳐나갔다. 그의 눈엔 보이는 것이 없었다. 방청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법대를 향해 몰려갔다. 교도관들이 방청객들을 가로막았다. 방청객들은 교도관들의 모자를 빼앗아 법대에 내던졌다. 박정기는 분리대를 뛰어넘었다. 교도관들이 그를 막아섰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는 의자며 교도관의 모자며 잡히는 대로 내던졌다.


박정기는 검찰관석에 달려들어 마이크를 잡아들고 검사를 노려본 뒤, 검사 앞의 책상 위를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법원 경위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법정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법정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재판부는 휴정을 선언하고 쫓기듯 밖으로 빠져나갔다. 검사와 고문 수사관들도 도망쳐 나갔다. 법정을 장악한 방청객들은 구호를 외쳤다.

“독재 타도!” “박종철을 살려내라!”

이날 민가협 회원 4명이 교도관들과 싸우다 실신해 쓰러졌다. 쓰러진 회원들은 한일병원으로 옮겼다. 상황이 진정된 뒤 판사들이 다시 입정해 판결문 낭독을 생략하고 형량을 선고했다. 조한경·강진규는 징역 15년, 반금곤 경장은 징역 8년, 황정웅 경위는 징역 7년, 이정호 경장은 징역 5년이었다.

박정기는 앞서 6월17일 열린 첫 공판 때 고문경관들에 대한 한가닥 동정심을 거둬야 했다. 그는 진짜 범인은 전두환과 최고 권력자들이고, 고문경관들은 명령을 따르는 자들로, 어쩌면 이들도 피해자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반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해온 대공 수사의 업적을 자랑하며 재판부의 선처를 요구했다.

“빨갱이들을 잡는 우리의 역할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억울합니다.”

“수사관들의 의욕이 지나쳐서 벌어진 일입니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 실수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진술을 들을 때 박정기는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에서 만났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왜 따지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가슴에 대못이 되어 박혔다. 그 기억을 떠올리니 분노를 가눌 수 없었다.

항소심에선 조한경 징역 10년, 강진규 징역 8년, 황정웅 5년, 반금곤 6년, 이정호 3년이 선고되었다. 1심보다 형량이 낮게 선고되자 박정기는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이게 재판이오? 재판할 가치도 없는 이 공판을 때려치우시오!”

88년 2월 대법원에선 2심의 형량 그대로 확정 판결했다. 1년1개월 만의 속전속결 재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형량을 채우지 않고 가석방되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88년 1월 박종철 1주기를 즈음해 부검의 황적준 박사의 일기장이 공개되면서 강민창 치안본부장도 재판에 회부됐다.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사건의 축소·은폐를 지휘한 강 치안본부장은 기소 뒤 5년5개월 만인 93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으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앞서 87년 5월18일 김승훈 신부의 폭로 이후 추가 수사로 구속됐던 박처원 대공수사 5과장은 93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유정방·박원택 경정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가운데 고문을 지휘한 박처원은 그 뒤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다시 불구속 기소되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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