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노태우 선거포스터 부착 막다 폭행당해 입원 / 박정기

등록 2012-02-13 19:51수정 2012-02-14 09:50

1985년 7월 민통련과 구속자가족협의회(민가협의 전신) 회원들이 ‘양심수 전원석방 촉구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86년 결성된 유가협은 민가협의 협의체로 연대활동에 나섰다. 앞줄 맨 왼쪽부터 백기완·문익환·박형규·계훈제·박계동·인재근·김도연(서 있는 이)씨 등이다. 사진작가 박용수씨
1985년 7월 민통련과 구속자가족협의회(민가협의 전신) 회원들이 ‘양심수 전원석방 촉구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86년 결성된 유가협은 민가협의 협의체로 연대활동에 나섰다. 앞줄 맨 왼쪽부터 백기완·문익환·박형규·계훈제·박계동·인재근·김도연(서 있는 이)씨 등이다. 사진작가 박용수씨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49
유가협의 초대 사무국장을 맡은 조인식(박종만 열사 부인)은 주로 민통련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회원을 모으는 데 주력했다. 미처 연락되지 않은 회원들도 약속한 장소에 가보면 거의 빠짐없이 도착해 있었다. 처음엔 그게 신기할 정도였다. 유가협이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사무국장 인재근이 찾아와 제안했다.

“우리가 효율적으로 투쟁하기 위해 연대해야 합니다. 민가협 안에 유가협이 들어와서 함께 활동하는 게 어떨까요?”

민가협은 구속된 학생과 민주화 인사의 가족들이 만든 단체로 1985년 12월12일 설립되었다. 이들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여러 집회와 시위에 앞장서 활동하고 있었다. 민가협은 양심수 석방과 독재권력에 대한 투쟁을 병행했다.

유가협은 제안을 받아들여 민가협 내에 있는 6개 협의체의 하나로 가입했다. 연대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유가협 창립 1돌 행사가 열릴 무렵 전국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로 들썩였다. 87년 6월 말부터 10월 초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노동자 대투쟁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6월항쟁 당시에는 야근과 밤샘 근무 등으로 적극 가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6·29 선언’ 이후 일시에 꺼진 항쟁의 열기를 노동자들이 이어받았다. ‘노동계의 민주화투쟁’인 노동자 대투쟁은 역사상 최대 규모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전국에서 3250여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했고, 120여만명의 노동자가 공장 안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농성과 시위를 벌였다.

대규모 공단이 있는 부산지역에서는 연일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박정기는 부산의 거리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그는 노동자들과 만나며 노동 현실과 파업의 의미를 깨쳤다. 부산 거리는 그에게 살아있는 배움터였다.

노동자 대투쟁은 6월항쟁과 달리 야당의 무관심과 정부의 탄압으로 서서히 열기가 사그라들었다. 대투쟁 기간 동안 야당은 개헌 협상에 집중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개정 헌법은 10월27일 국민투표를 거쳐 29일 공포되었다.


사실 전두환과 군부 세력이 직선제를 수용한 것은 ‘김대중·김영삼’ 이른바 양김의 분열로 대통령 선거에서 여권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가 수그러들면서 사회는 선거 열기로 달아올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의 관심은 단일화였다. 그러나 두 세력은 대통령 후보 출마를 양보하지 않았고, 후보 단일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김영삼은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고, 김대중은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독자 출마했다.

87년 12월14일 박정기는 부산민가협의 월례회에 참석했다. 회의를 마치고 민가협 회원 11명과 함께 초량동의 정발장군 동상이 있는 작은 공원을 지나칠 때였다. 동상 앞에 선거방송 차량이 있었다. 차량 옆에서 선거운동원인 청년 한 명이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 선거 포스터를 부착하고 있었다. 박정기는 노태우의 얼굴을 보자 분노가 일었다.

“살인마의 포스터를 와 붙이노? 당장 없애그라.”

박정기의 항의를 시작으로 청년과 민가협 회원들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박정기는 더 이상 포스터를 붙이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시비 끝에 청년과 회원들 모두 가까운 초량파출소로 연행됐다. 파출소에 도착해서도 말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파출소 문이 확 열리면서 한 무리의 험상궂은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차량 안에 있던 선거운동원들이 20여명의 청년을 동원해 찾아온 것이다.

이들은 박정기를 발견하자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내질렀다. 박정기가 고꾸라지자 민가협 회원들이 항의했다. 청년들은 민가협 회원들에게도 주먹을 내질렀다. 좁은 파출소 안팎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이가 많은 회원들은 이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경찰관들은 이 모습을 방관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는 목과 어깨 등을 다쳐 급히 인근 병원으로 실려갔다. 사흘 뒤 괴정동에 위치한 병원으로 옮겨 일주일가량 더 치료를 받고서야 퇴원했다. 도망친 가해자의 지명수배 전단이 붙었다. 수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해자가 처자식과 함께 박정기를 찾아왔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생계 때문에 선거운동에 동원된 젊은이였다. 막상 그들의 딱한 형편을 들으니 박정기는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해 주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한겨레 인기기사>

오스트리아 언론 “4대강, 완전히 정신나간짓”
차기 대통령 선호도, 안철수>문재인>박근혜 순
강용석, ‘BW 헐값 인수’ 혐의 안철수 고발
팔순의 일본인, 위안부 소녀상에 무릎꿇다
‘서기호 탈락 후폭풍’ 3년만에 판사회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